1권 음악의 요소들 중에서 대담 15
<음악의 기쁨> 시리즈는 프랑스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롤랑 마누엘과 피아니스트인 나디아 티그린, 각 대담의 주제별로 초대손님으로 등장하는 전문가가 3년간 라디오 프랑스에서 음악에 관해 대담형식으로 나누었던 내용들을 엮은 책이다. 티그린이 애호가,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음악에 관해 궁금해 할 것 같은 내용들을 질문을 하면 마누엘이 음악학자로서 음악에 관한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처럼 내용이 알차면서도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워서 접근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와 형식, 각 악기별, 장르별, 시대에 따라 흐름을 주도했던 음악 사조들과 작곡가들이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이 시리즈를 다 읽는다면 서양음악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글자가 너무 작다. 하지만 책 내용이 정말 좋아 1권에 이어 3권을 샀고, 2권은 장바구니에 담았다. 고민끝에 이 책들은 인명사전, 백과사전처럼 활용하기로 했다.
"슈베르트의 천재성은 자연스레 우러나는 아이의 마음에 따라 미소에서 눈물로 넘어갔지요.", "리트는 노래의 특수한 한 장르, 게르만 고유의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 없으니 원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지칭하는 수밖에 없죠. 리트는 루터파 교회 코랄만큼이나 독일 음악에서 본질적이고 특수한 요소에요."
<음악의 기쁨 3>, p. 27~28
글자가 작다고 해서 이렇게 좋은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음악의 기쁨 1>은 '음악은 무엇으로 하는가?', '우리는 왜 음악을 하는가?'로 시작한다. 음악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의 시학>과도 내용이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게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마누엘의 친구이기도 해서 이 책 전반에 걸쳐 마누엘이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에 관해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종종 인용하기도 했다.
아래는 대담 15 - 오페라발레와 무용곡 내용들을 발췌 및 요약한 내용들이다.
프랑스 발레사에서 최초의 전막발레인 <왕비의 발레 코미크>를 언급한 마누엘은 이 작품에 대해 춤을 시와 음악으로 결합한 궁정발레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16세기 궁정발레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이야기들이 이미지로 상상이 되면서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게 정말 그림처럼 설명을 했다. 이후 작곡가 륄리는 궁정발레에서 쌓은 경험들을 잘 살려 발레에 정연한 형식을 부여한다. 륄리에 힘입어 무용은 프랑스 오페라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륄리의 오페라 구조는 발레안무의 대가 장 노베르까지 약 한 세기동안 이어진다.
작곡가 라모에 대한 언급도 했다. "서곡과 고정 형식의 춤(알망드, 미뉴에트 등)은 그 구조를 교향악과 실내악에도 부여하게 되죠. 이 음악들은 춤에서 태어났고 더러 그렇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위대한 안무가 노베르는 춤과 춤 사이를 표현력 넘치는 판토마임으로 연결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음악은 제 영역을 잃어버렸다. 마누엘은 "작곡가는 안무가의 지시를 따라야 했습니다. 발레 로망티크 태동기의 시정은 대충 그랬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초대손님인 조르주 오리크는 "발레 로망티크에서 음악이 그리 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안무가들의 독단적인 태도나 그들이 작곡가들에게 부과했던 여러 가지 제약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에 아돌프 아당과 들리브처럼 뛰어난 발레음악 작곡가들도 있었지만 나는 오리크가 설명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발레음악사상 역대 최대로 다작한 작곡가 세자르 푸니의 음악과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떠올렸다. 발레 작품 내용의 전개와 안무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나열하기만 한 푸니의 음악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프티파의 입김이 너무 많이 들어간 차이코프스키의 <잠미녀>는 작곡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풍부한 상상력이 들어간 발레음악들은 마누엘의 표현대로 조형적인 상상력이 있다."그는 일반적인 리듬과는 전혀 다른, 안무적인 리듬 감각이 아주 각별한 음악가죠."
한편 발레뤼스를 이끌고 파리에 등장한 디아길레프는 그동안의 발레음악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출발했다. 오리크는 "언뜻 봐서는 춤과 어울리지 않는 교향곡 등을 발레를 위해 편곡하는 작업을 했으니까요.", "춤을 고려하지 않은 음악이 춤에 무조건 맞춰주는 음악보다 더 좋다는 사실을 모두가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리하여 발레음악가가 안무가의 요구사항을 숙지할 필요가 없으며 안무를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형식들을 접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안무가도 안무가대로 전통적인 발레음악 이외의 음악들에 맞춰 춤을 추게 됐고요.","디아길레프는 작곡가들을 옭아매는 고삐를 놓아버림으로써 19세기 발레음악을 경직시켰던 제약들을 많이 풀어줬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춤과 춤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얘길 했었잖아요? 그 고리들이 점점 느슨해지다가 <봄의 제전>에 이르면 아예 사라져버리죠." 라고 설명했다.
마누엘 역시 스트라빈스키처럼 음악의 교의, 교조, 관습을 강조한다. "관습 없이는 예술도 안 되는 겁니다. 예술의 자유와 용기는 관습의 한계를 통해서 잘 드러나죠."
"힘은 제약에서 태어나 자유로 인해 죽는다."는 다빈치의 말처럼 무용과 발레음악 역시 각 시대별로 체계적인 사고를 가진 개혁가들이 등장해 관습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음악적 상상력을 발휘해 발레작품의 수준과 발레음악의 위상을 높였다면 디아길레프는 본격적으로 물꼬를 텄다. 디아길레프는 마치 후대의 발레안무가들과 작곡가들에게 "너희들 이렇게 만들어도 돼."라고 말한 듯 하다. 포킨, 니진스키, 발란신 등의 걸출한 안무가들과 라벨,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등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음악가들을 품었고, 때로는 샤갈, 피카소와 같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도 협업했던 디아길레프의 정신은 20세기를 지나 오늘날의 발레의 흐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