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D.384는 평소에는 1악장과 3악장을 제일 좋아했다. 특히 3악장은 나랑 미러링하는 듯한 악장이어서 천진난만한 동심을 얼마만큼 잘 표현했는지에 따라 잘한 연주라고 생각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오늘 공연에서는 2악장이 그토록 심장을 서서히 옥죄이면서 가슴이 저미듯이 아픈 여운을 남겼다.
첫 곡에서는 한 음 한 음 깨끗하게 우아한 연주를 들려줬다면 두번째 곡부터는 과감하게 거친 음과 선명한 음색을 넘나들면서 원시적인 매력이 가득한 춤곡을 매혹적으로 들려주었다. 시벨리우스의 춤곡 Op.106은 정말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발레음악을 작곡했던 작곡가들의 다른 곡에서 느껴왔던 춤곡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이 곡은 작품 전반에 깔린 우울한 서정미와 원시적인 형태의 춤곡의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면서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곡이다.
리스트의 슈베르트 비엔나의 밤에 의한 왈츠 카프리스 S.427/6에서부터 피아노 반주가 아쉬웠다. 인모니니님의 연주는 화려하고 섹시한데, 피아노 반주가 바이올린 연주의 테크닉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감수성을 못따라간다는 느낌을 전반적으로 받았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마장조 Op.80과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116에서는 작품 전반에 깔린 고독한 정서 속에서 포카리스웨트같은 청량함과 드라마틱한 격정이 오고 갔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천진난만한 동심과 이방인같은 고독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즐거운 듯 슬픈 듯, 행복한 듯 우울한 듯 복잡미묘한 감성선을 빚어내는 슈베르트 음악들은 삶에서 오는 '고독'을 초연한 작곡가의 모습이 느껴진다.
시벨리우스의 곡 역시 작품 전반에 깔린 우울감 안에서 크리스탈처럼 맑은 기운과 드라마틱한 감정선이 넘나든다. 일조량이 짧고 겨울이 길어서 멜라토닌 부족으로 오는 저각성 정서와 광활하면서도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신비스러운 핀란드의 자연이 느껴지는 곡들에서 고독하고 우울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삶 자체로 받아들이는, 별 일없으면 그게 행복한 거라고, 그게 바로 휘게, 라곰이라는 북유럽의 정서가 느껴졌다.
양인모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이 테크닉을 과시하기보다 오히려 제어하면서 음악 그 자체를 섬세하게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혹적인 봄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본공연의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의 론도 브릴란테 나단조 D.895을 연주하던 모습은 아름답게 새겨져서 두고두고 여운이 남을 듯 하다.
앙코르때 어떤 분이 "사랑해요!"하고 외쳤더니 양인모 연주자님이 씩 웃으셨다. 실황에서는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를 보게 되는구나.
1부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장조 D.384"
시벨리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전원 춤곡 Op.106"
리스트 "슈베르트 비엔나의 밤에 의한 왈츠 카프리스 S.427/6(오이스트라흐 편곡)
2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마장조 Op.80"
시벨리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116
슈베르트 "론도 브릴란테 나단조, D.895"
앙코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