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끓이는 물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주인공들의 진한 사랑 이야기
요리를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애틋하게 담은 영화 <프렌치 수프>, 내용 전개에 따라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맥락으로 음식을 통해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요리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가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역시 음식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소설인데, 이 책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넘어서서 요리를 한 사람의 감정이 먹는 사람에게 그대로 발현이 되어 비현실적으로 표현이 되는, 즉 작가의 한계가 없는 상상력이 연금술처럼 빚어내는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풍부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관능적인 작품이다.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통해 티타와 페드로가 내밀하게 주고받는 뜨거운 감정들이 헤르트루디스에게 폭발적으로 발현이 되는 장면 (3월 레시피), ”하객들 모두 너무나 즐거운 모습이었다. 이번 결혼식과 불미스러웠던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는 하객들 모두가 체해서 난리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정반대로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를 입에 넣는 순간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을 느끼는 대신, 헤르트루디스가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p.253)
이 책의 구성과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무척 독특하다. 일 년 열두 달 열두 가지의 레시피를 통해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 이야기를 절묘하게 풀어냈다.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은 주인공 티타가 인생의 무게로 인해 어깨가 짓눌릴 때마다 음식을 만들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요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눌러 담는 티타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면서 공감능력을 발휘한다. 부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티타는 음식을 통해 페드로에 대한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담는다.
“티타는 그날 밤 이후 페드로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단념해야만 했다. 미래의 형부를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티타는 어떻게든 페드로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잠을 자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다...나차는 많은 경험을 통해 티타가 맛난 크리스마스파이를 먹는 동안에는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위가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티타는 배가 고파서 허전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그 느낌은 시리도록 고통스러운 오한에 가까웠다. 티타는 그 거북한 추위부터 몰아내야 했다.” (p.27)
이 책의 번역가님이 역자 후기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먼저 한국에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책 제목도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책 전반에 걸쳐 끓어오르는 강렬한 감정들이 표현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번역된 책 제목이 주인공들의 감정 상태를 전혀 담지 못하고 있다. 원제목인 <Coma agua para chocolate>는 스페인어의 관용어구로 직역하면 ‘초콜릿을 끓이는 물처럼 끓어오르는 상태’ 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원제가 중탕으로 끓이는 초콜릿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주인공들의 감정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내밀하고 진한 감정들, 관능, 욕망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티타가 노래 부르면서 젖은 손을 장단에 맞춰 흔들며 질냄비 위로 물방울을 튀겨서 ‘춤추게’ 하는 동안...”(p.14), 6월 성냥반죽 레시피, “에스페란사는 알렉스의 눈길이 자기 몸에 닿는 순간 마치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넣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티타에게 말했다.”(p.249),
이 책은 판타지가 아닌데도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한계가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나차는 티타가 부엌 식탁과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엄청난 눈물 급류에 떠밀려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p.12), 2월과 3월 레시피, ”고독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긴긴밤에 떴던 커다란 담요를 찾아 뒤집어쓰기 위해 티타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그 담요는 3만 제곱미터나 되는 농장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다.“(p.257)
마치 중국, 인도 영화 등에서나 볼 법한 과장된 표현들인데도 전혀 거슬리지가 않다.
오히려 이러한 표현들 덕분에 이 소설이 결코 밝다고는 할 수가 없는 상당히 폭력적인 데도 그 폭력성을 많이 희석시켜 주었다.
”티타는 질리도록 매를 맞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세상인 부엌에서 다시는 언니들하고 놀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1월 레시피 중에서), ”결혼식 날 밤 마마 엘레나가 티타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던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그렇게 심하게 맞은 적은 없을 정도였다. 티타는 멍든 상처 때문에 2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2월 레시피 중에서), “마마 엘레나는 티타에게 다가와 나무 주걱으로 티타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좋아. 미친년처럼 굴겠다면 정신 병원에 보내 주지. 이 집에 미친 사람은 살 수 없어!”(5월 레시피 중에서), 7월 레시피 중에서 p. 138, 8월 레시피 중에서 p. 168
주인공 티타의 집안은 대대로 막내 딸이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마마 엘레나는 막내 딸 티타에게 청혼을 하러 온 페드로에게 티타는 집안의 대물림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며 대신에 큰 딸 로사우라와는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페드로가 마마 엘레나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는 절대 결혼할 수 없고, 그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는 길밖에 없다면 아버지 역시 저와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요?”(p. 23), “반드시 행복할 거라 확신합니다. 이 결혼을 통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걸 비로소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당신 곁에 있는 것입니다.”(p.45)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마마 엘레나에게 방임 당하고 언어, 정서, 신체적인 폭력에 정신까지 지배당했던 티타는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매우 안정적인 성격을 지닌 남자 존 브라운에게서는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에 또 다르게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페드로에게는 언제나 강렬한 도파민이 분출된다.
“티타에게 페드로의 말은 다 꺼져 가던 불씨를 활활 되살아나게 하는 시원한 바람과도 같았다.(p.45)
소설 속에 나오는 집안의 대물림이 어쩐지 유교 문화권인 한국과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실제 멕시코의 가정문화가 어떠한지를 검색했다. 소설처럼 실제 멕시코 가정문화가 매우 가부장적이라고 나왔다. 그리고 막내딸이 대물림을 받는다는 내용은 없었으나 가족 우선주의에, 자식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어쨌든 소설 속에 나오는 티타의 가족은 가족 중심이기는 한데, 상당히 아름답지가 않다는 점이다.
마마 엘레나는 표면적으로는 로사우라를 예뻐하는 듯 했지만 결론은 자식을 사랑한 엄마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마마 엘레나의 결정으로 인해 둘째 딸 헤르트루디스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행해졌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요리를 통해서만 표현하고 늘 주눅 들어있었던 티타는 이러한 집안의 관습을 깨려고 시도한다. 로사우라가 집안의 대물림을 에스페란사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티타는 언니와 싸워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그리고 조카인 에스페란사만큼은 집안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p.124)
티타에게 그 불꽃은 페드로였다.
티타와 페드로가 기나긴 시간 동안 주고받았던 서로에 대한 감정 그리고 주인공 티타를 둘러싼 인물들의 본질을 꿰뚫는 묘사를 통해 작가는 어쩌면 관능적인 표현을 빗대어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즉 현실 세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거 같은
인간의 삶을 통찰한 것이고, '티타'라는 한 여인의 인생 스토리를 가지치기 하듯이 뻗어나가는 상상력과 연금술처럼 빚어낸 언어를 통해 인간이 사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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