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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04. 2023

엇갈린 사랑의 비극

드라마 발레의 수작 <오네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안무가 존 크랑코가 발레에 연극을 넣어 만든 작품들이 대박을 치면서 이름없던 발레단이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급부상했다. 마이더스 손이었던 그는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대성공을 했다. 그가 안무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초연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작품으로 드라마 발레의 고전이다.


발레 작품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낭만주의 시대에 발레 작품에서 나름대로 섬세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추려고 노력을 했으며 무용수들의 동작에 인물들의 감정선을 넣어 극적인 연출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신비로운 요정이나 초자연적인 정령과 인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대중들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에 이내 식상해하면서 낭만주의 발레는 역사속에서 저물어갔다.


그 뒤 발레의 역사는 인물들의 감정 표현보다는 비르투오소가 초절기교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클래식 발레와 여기에 더 나아가 발레 작품에서 스토리를 제거하는 안무가들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로열 발레단의 무용수였던 존 크랑코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를 맡게 되면서 발레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르와 작품들이 탄생했다.


20세기 발레는 다양성을 시도하는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발레에서 줄거리를 없애려고 했는데, 오히려 존 크랑코는 고전 문학에서 발레의 미학을 찾았다. 그는 이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위해 만들었던 첫 드라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박을 친 상태였다. 그 다음 작품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에 도전을 했는데, 이 작품이 드라마 발레의 신화가 되었다.



안무 : 존 크랑코

음악 : 차이코프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교향곡 4번’등의 관현악곡, ’사계‘ 중 뱃노래 등

초연 : 196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구성 : 3막     

등장인물

오네긴 : 귀족 청년이면서 세상 모든 일을 경멸하는 인물

타티아나 : 오네긴을 사랑하는 티없이 맑고 순수한 아가씨

올가 : 타티아나의 여동생이면서 렌스키의 약혼녀

렌스키 : 올가의 약혼자이자 오네긴의 친구

라리나 부인 : 타티아나와 올가의 어머니

유모

그레민 공작 : 미래의 타티아나의 남편

줄거리

세상 모든 일에 냉랭한 사교계의 방탕한 주인공 오네긴은 백부의 유산을 물려받고자 시골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친구인 렌스키와 그의 약혼녀 올가를 만난다. 렌스키와 올가는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책을 좋아하는 소녀 타티아나는 렌스키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사랑에 빠진 타티아나는 밤새 편지를 쓰다가 잠이 든다. 잠이 든 타티아나의 꿈 속에서 오네긴이 그녀의 방에 있는 큰 거울에 비친다.(러시아에서 유행하던 거울점으로 거울에 비친 사람이 미래의 배우자라고 믿었다.) 타티아나는 편지로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오네긴은 타티아나를 차갑게 외면한다. 한편 무료함을 느낀 오네긴은 올가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에 화가 난 렌스키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일리야 레핀, <오네긴과 렌스킨의 결투>


타티아나와 올가는 두 사람의 결투를 막으려 했지만 막지 못했고, 결국 오네긴과의 결투로 렌스킨은 생을 마감한다. 친구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 오네긴은 결국 영지를 떠난다. 몇 년 뒤 사교계에 돌아온 오네긴은 그 곳에서 귀부인이 된 타티아나를 알아보고 놀란다. 시골 아가씨였던 타티아나가 아름답고 우아한 귀부인으로 피어난 모습에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 매혹된다. 편지를 보내 타티아나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는 오네긴에게 타티아나는 잠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과거에 오네긴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타티아나도 오네긴의 편지를 찢어버리고 현재를 선택한다.


존 크랑코는 이 작품을 안무하면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예브게니 오네긴>을 발레 음악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오페라가 너무도 유명해서 오페라의 음악을 편곡해 발레 음악으로 사용하면 발레 작품이 오페라의 명성에 가려질 것을 우려해 차이코프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나 ’교향곡 4번‘과 같은 관현악곡들과 ’사계‘ 중 뱃노래와 같은 소품곡들을 발레 음악으로 사용했다. 또 오페라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발레 작품의 이름을 ’예브게니‘는 빼고 <오네긴>이라고 정한 것을 보면 존 크랑코가 차이코프스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로열발레단, <오네긴>에서 타티아나 역을 맡은 나탈리아 오시포바


이후 비평가들로부터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에 나오는 폴로네이즈 정도는 발레 음악으로 사용했어도 될 뻔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발레 <오네긴>을 감상해보면 발레 작품에 사용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들이 원래 연주용 음악으로 작곡되었음에도 주인공들의 시리도록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이코프스키의 우수어린 시정과 함께 주인공들의 엇갈린 사랑은 격정으로 휘몰아치고 오네긴의 뒤늦은 구애에 타티아나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감상자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여전히 오네긴을 사랑하지만 결국 현재를 선택하는 타티아나의 모습은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것처럼 생생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오네긴 (로베르토 볼레)과 타티아나 (Maria Eichwald)



연극같은 드라마 발레

드라마 발레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무용수들도 연극배우처럼 연기를 하게 되었다. 대사가 없는 드라마 발레는 음악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을 타면서 마치 현실 속의 인물들처럼 생생하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발레의 기본은 지키면서도 춤선의 틀을 깬 드라마 발레는 파드 되도 매우 격정적이다.


오늘날의 발레 무용수들은 때로는 정령이 되어 호숫가 위를 가볍게 동동동 떠다니기도 하고 곧 다음 작품에서는 줄거리가 없는 춤선을 음악으로 표현을 해야 하고 바로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화끈한 스페인의 감성을 보여줘야 하고 또 다음 작품에서는 사랑의 격랑을 타고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연말에는 어린이들에게 동심을 심어주는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등 배우들 못지않은 포커페이스를 갖추고 있어야 춤을 출 수 있는 시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드라마 발레의 고전

1965년에 만들어진 발레 <오네긴>은 지금도 발레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고수들이 듣는 오페라 작품들이 있듯이 발레 작품에도 그러한 작품들이 있다. 특히 <오네긴>은 발레의 기본적인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고수의 관문으로 들어가는 발레 작품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귀부인이 된 타티아나(마리아넬라 누네즈)에게 구애를 하는 오네긴(Thiago Soares)


발레 <오네긴>

https://naver.me/xQ8x0qx7

https://naver.me/5UrZk2aa

라 스칼라 발레단과 로열 발레단의 협연

오네긴 역의 로베르토 볼레와 타티아나 역의 마리아넬라 누네즈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처음 관람했을 때의 감동과 여운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래전에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그 날의 인상과 카타르시스는 지금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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