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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08. 2023

운명처럼 끌린 강렬한 사랑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로열 발레단의 안무가들은 주로 고전이나 문학 작품에서 혁신을 찾았다. 지금의 영국 발레의 초석을 다져놓은 프레데릭 애쉬튼은 이미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를 창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뒤이어 발레 역사에서 최초의 전막 발레이자 잊혀졌던 <고집쟁이 딸>을 재안무해서 매력적이면서도 영국적인 정취가 묻어나는 희극 발레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우아하면서도 활기찬 폴드브라와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스텝이 특징인 애쉬튼의 안무는 무대 위에 올라오면 놀랍게도 기품있는 춤선으로 바뀐다. 거의 모든 춤선을 세련되고 부드럽게 만들었던 애쉬튼은 자신의 뮤즈들인 마고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를 위해 드라마 발레를 만들었다.


애쉬튼이 각색한 작품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으로 항상 옷에 동백꽃을 달고 다녀서 동백꽃 아가씨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소설 <동백꽃 아가씨>였다.  그러나 애쉬튼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고 소설 속에 두 주인공인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사랑 이야기만을 압축해 약 40분이 조금 안 되는 단막극으로 각색했다.


작품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로 무용 음악으로 사용하기 위해 두 번의 편곡과정을 거쳤다. 기존의 클래식곡을 발레 음악으로 사용할 경우 원곡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편곡 및 관현악곡의 경우 오케스트레이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당시 로열 오페라하우스 지휘자였던 존 란치베리가 이 작업을 했다.


1963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마고 폰테인이 마르그리트 역에, 소련에서 서방으로 이제 막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가 아르망역에, 마이클 솜스가 아르망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다. 훗날 루돌프 누레예프가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미친 네 사람(애쉬튼, 폰테인, 자신, 의상 담당 바튼)이 모여서 만든 즉흥적인 작품이었다. 마고(폰테인)는 묵묵히 견뎠지만 나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고 회고했다.

왼쪽부터 루돌프 누레예프, 마고 폰테인, 프레데릭 애쉬튼



이 작품을 만든 애쉬튼은 오직 프리마 발레리나 앱솔루타인 마고 폰테인만 추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공연되지 못했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 실비 길렘, 알렉산드라 페리 등 세계적인 발레리나들이 공연을 하면서 부활했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타마라 로호도 이 작품을 공연했으며 국내에서는 2013년 LG 아트센터에서 초연을 했다.

작품 속에서 마고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



국내 초연 당시 김주원이 마르그리트 역에, 김현웅이 아르망 역에, 전설의 발레리노 이렉 무하메도프가 아르망의 아버지 역으로 나왔었고, 조재혁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실황으로 연주를 했다. 그 날 많은 발레 애호가들이 이 공연을 관람했는데,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초연했던 날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 사진 속 김주원 발레리나의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사용하고 있다.



코르티잔과 젊은 귀족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꽃 아가씨>. 40분이 안 되는 단막극으로 원작에서 액기스만 뽑아내 각색한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발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침대 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마르그리트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곧 빨간 드레스로 화려하게 차려 입은 마르그리트가 파티에서 귀족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면으로 전환이 되는데 이 부분에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가 연상이 된다. 그 때 마르그리트의 운명의 상대인 아르망이 힘차게 등장을 하고 둘은 운명처럼 강렬하게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면서 둘의 변화무쌍한 사랑이 시작이 된다.

운명처럼 마르그리트(제나이다 야노프스키) 앞에 힘차게 등장하는 아르망(페데리코 보넬리), 로열 발레단


원작의 내용을 상당히 축약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다른 발레 작품들과는 달리 디베르티스망(캐릭터 댄스)과 코르 드 발레(군무)가 전혀 안 나온다. 가끔씩 두 주인공들의 들러리처럼 무대 배경에 병풍처럼 서 있을 뿐이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에만 집중 묘사해서인지 두 주인공의 모습이 리스트의 격정적인 선율을 타고 유난히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마르그리트(타마라 로호)와 아르망(세르게이 폴루닌).


영상 속 발레리노는 과거 로열 발레단 수석 무용수였고, 한때 천재 발레리노로 불리웠던 발레계의 반항아 세르게이 폴루닌이다. 마르그리트 역을 맡은 발레리나는 스페인 출신의 타마라 로호로 영국 발레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원래는 영국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였으나 로열 발레단예술감독 앤서니 도웰의 요청으로 로열 발레단에 입단하여 2000~2012년까지  로열 발레단을 대표하는 간판급 스타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에스메랄다와 카르멘으로 세계 무용가상인 브누아 드 라 다스를 수상했다. 2012년부터는 행정가로 변신하여 영국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예술감독이 되었다. 망해가는 영국 국립발레단에서 타마라 로호에게 도움을 요청을 해서 타마라 로호가 영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변신했던 것인데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타마라 로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행정력으로 영국 국립발레단원들의 기량을 높이고 작품성까지 높여 발레단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2022년까지 영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업의 CEO처럼 레단의 재정상태와 재무관리까지 잘 관리해서 발레단을 이끌어나갔던 인물로 송이 자자했다.


https://naver.me/G2xUnpKm


작품 속에서 병풍처럼 서 있는 발레리노들의 헤어스타일이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와 비슷하다.


낭만주의 시대의 슈퍼스타 프란츠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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