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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이 성장하면서 만난 소설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by 아트 서연

원작보다는 발레, 오페라가 친숙했던 <(예브게니) 오네긴>. 작가님의 명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원작에는 손이 안 갔다. 여기에는 문학작품을 원래 잘 안 읽는 나의 성향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1년 전 “발레 작품 원작 읽기 프로젝트”를 세우고 나서야 아주 오랜만에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예브게니 오네긴>은 맨 마지막으로 밀렸다. 작가님의 명성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작가님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의 형식이 결합한 ‘운문소설’이라고 하기에 평소 ‘시’와도 안 친한 나는 걱정을 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금세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원작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른 것이 눈에 보였다. 이 책은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상당히 달라서 작가님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발레와 오페라에서는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가 주요 스토리이지만 사실은 재창조된 예술작품들이 푸슈킨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다 담아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대에 유행했던 모든 예술사조, 문화의 흐름을 온갖 비유법으로 사용하면서 풍자와 조소 등으로 촌철살인을 날리면서 그 안에 낭만과 유머를 뒤섞어 놓았다. 게다가 작가님 자신이 마치 손오공처럼 분신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 손오공 모습으로 책 속에 등장한다. 화자로 등장한 작가님이 때로는 오네긴의 친구로 등장하기도 하고, 타티아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마인드맵처럼 확산되는 아이디어와 백과사전같은 지식들로 당대 허례허식에 빠졌던 러시아 귀족들을 향해 정곡을 찌르고, 오네긴을 향해 경멸과 협오의 시선을 보낸다. “이 작가님 뭐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님에 대한 호기심 Up!, 호감도가 200% 상승했다.


작가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책을 읽으니 오네긴은 작가님의 분신처럼도 보였다. 작품 초반에는 이렇게 작가님의 그림자같은 오네긴이 책 속의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가님의 시선은 타티아나에게 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푸슈킨이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인 ‘렌스끼’와 ‘타티아나’를 상당히 사랑스러워했다는 점이다. 특히 작가님이 ‘타티아나’라는 캐릭터를 정말 아끼고 사랑스러워했는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책의 중심은 오네긴이 아니라 타티아나에게로 옮겨진다. 그러니까 <예브게니 오네긴>의 실질 주인공은 오네긴이 아니라 타티아나인 것이다. ‘타티아나의 성장소설‘로도 보이는 이 작품은 타티아나의 내면이 성숙할수록 작가님이 타티아나에게 빙의한다.


프로메테우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셨던 푸슈킨은 어린 시절부터 반항기가 있으셨던 것 같다. 원래도 푸슈킨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관심도 없었던데다 특유의 반항기 때문에 푸슈킨에게 더욱 냉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도 신에게서 불을 훔칠 생각을 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그렇게 다방면의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지식들을 습득한다. 그리고 그렇게 훔친 불을 독창적인 풍자로 정치시를 지어 당대에 지식인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이 어떠한가! 신에게서 불을 훔쳐서 인간들에게 전달했으니 당연히 윗사람한테 찍힌다. 그래서 오랜 세월 유배생활도 하는 등 삶의 굴곡을 겪기도 했던 작가님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디오니소스로 자주 변신해 아주 향락적인 생활도 하셨다.(여기서 반전 포인트) 어쩌면 작품 속에서 디오니소스처럼 나오는 오네긴은 작가님의 그림자를 투사한 캐릭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이 마지막으로 향해갈수록 작가님은 타티아나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이내 타티아나로 변신하신다. 당대 러시아 귀족들의 가식과 허례허식에 촌철살인을 날리신 작가님은 자신이 사랑했던 러시아의 모든 것을 타티아나를 통해 표현하신다.



그러니까 작가님의 이상향을 타티아나를 통해 표현하신 것이고, 사실은 작가님은 이상을 꿈꾸셨던 아폴론이였던 것이다.


때로는 프로메테우스였다가 때로는 디오니소스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아폴론이었던 알렉산드르 푸슈킨 자체가 좋아졌다. 제가 작가님 자체가 통째로 좋아졌어요. 앞으로도 작가님을 그대로 좋아할게요.



덧붙임) 만남에도 때가 있다고 문학작품에도 인연이 있다. 이제서야 만난 인연이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은 차라리 지금 만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내면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만났기에 오늘에서야 만난 인연이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타티아나와 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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