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못다한 <예브게닌 오네긴> 이야기

by 아트 서연

어린 시절부터 천방지축 신나게 놀았던 오네긴은 다 자라고 나니 어른인 척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학식을 과시하거나 사실 라틴어를 잘 모르지만 시구 몇 줄 외우면서 잘 아는 척 하거나 아담 스미스에 푹 빠져(?) 경제학자처럼 유식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은 공부에는 소질이 전혀 없었던 오네긴은 순진한 아가씨들과 밀당하고 밀회하면서 그녀들의 혼을 쏙 빼놓는 데에는 선수였다. 바람둥이 유부녀들의 마음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연애 고수인 오네긴은 타고난 쾌락주의자이다.


타고난 연애 고수인 오네긴의 패션 감각은 어떠할까.

“최신 유행의 모범적인 추종자가

옷을 입었다 벗었다 다시 입는

한적한 내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볼까?”

끝없는 변덕을 만족시키기 위해

...(중략)

오락과 사치와 유행하는 호사를 위해

발명해 내는 모든 것

이 모든 것이 열여덟 살 난 청년 철학가의

내실을 장식해 주었다.“ (p.25~26)


그런데 이렇게 향락에 빠져 디오니소스처럼 살아도 현실감각만큼은 무척 뛰어나 먼 친척 아저씨가 남긴 유산을 한 몫 단단히 챙기는 등 자기 실속은 다 챙겨가면서 논다.


이런 오네긴에게 타티아나는 자신의 도파민을 자극하지 않는 그저 재미없는 아가씨로 보였다. 그래서 타티아나의 연애편지에 오네긴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어차피 결혼을 안 할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거절하는 것이 더 낫다는 오네긴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타티아나의 영명축일에 참석한 오네긴은 타티아나와 마주친다. 난색을 표하는 타티아나의 표정을 보고 오네긴은 짜증이 나 묘한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 렌스끼의 약혼녀 올가를 낚아채 마치 둘이 연인이 된 것처럼 춤을 추는데...이건 역지사지가 안 되고 공감능력까지 없는 오네긴과 또다른 쾌락주의자 올가가 크게 실수한 거다. 이 둘을 지켜본 타티아나와 렌스끼. 타티아나는 마음속에 질투가 일렁여도 그 마음을 꾹꾹 누르며 그저 지켜만 본다.


그러나 렌스끼는 진짜로 분노한다. 분노한 렌스끼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오네긴은 결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결국 렌스끼는 오네긴의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이 흘러 어느 무도회장에서 타티아나를 발견한 오네긴.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 보이는 그 귀부인이 바로 타티아나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도파민이 마구 분출된 오네긴. 자신이 그제서야 타티아나를 사랑하게 된 줄 알고 매일 타티아나에게 눈도장을 찍고 연애편지까지 마구 보낸다.



그러나 오네긴은 타티아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귀부인으로 바뀐 타티아나의 겉모습을 보고 자신의 도파민이 분출되었을 뿐이다. 도파민 중독자인 오네긴은 그저 화려하게 바뀐 타티아나의 외모만 보았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성숙해져서 진짜 어른이 된 타티아나가 오네긴의 눈에는 안 보였던 것이다.


타티아나는 여전히 오네긴을 사랑하고 있었으나 지금 여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나는 타티아나가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그 둘이 결이 전혀 다르다. 타티아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