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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

by 아트 서연


영상물에서만 봤던 연극기법을 실제로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조명과 커튼을 이용한 장면전환, 2막의 타블로 기법, 아르망이 마르그리트가 남긴 편지를 읽고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면서 한밤중에 파리로 질주하는 장면, 3막에서 아르망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미술 작품의 오브제처럼 마르그리트의 유품들이 무대 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 물건들이 곧 경매에서 팔리면서 하나씩 무대 뒤편으로 나간다.
그리고 곧이어 "마농과 데 그리외의 공연 무대가 시작되는 극장으로 장면전환이 된다. 연극같은 장면전환을 보면서 '이런게 드라먀 발레구나'를 실감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원들 이번 공연에 영혼을 갈아넣은 듯 하다. 너무 너무 잘했다. 그 동안 클래식 발레, 낭만발레 작품에서는 갇혀있었던 무용수들의 끼를 이 작품을 통해 폭팔적으로 분출한 듯 하다.


프류당스 역의 박슬기 발레리나 완전히 찰떡같이 소화했다. 슬기리나의 인스타를 보면 일상생활이 예능 비슷하신 부분들이 있던데, 평소의 개그 소질을 연기로 다 표현한 듯 하다.


무엇보다도 마농 역의 김별리나를 보고 엄청 놀랐다. 타락한 마농 그 자체였다. 대놓고 유혹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타락해진 마농, 마르그리트의 내면을 표현하거나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 역할, 죽어가는 마농까지 끼와 재능이 어마어마하던데. 오늘 김별리나의 춤을 처음 봤는데, 정말 단번에 각인되었을 정도로 강렬했다.


오늘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역의 조연재 발레리나. 소설 속 마르그리트를 보는 줄 알았다. 사실 마르그리트 역이 연기하기가 힘들다. 순수한 듯 타락한 듯, 아르망을 끌어당기는 듯 훅 밀어내는 듯, 아르망한테 잡힐 듯 안 잡힐 듯 정말 복잡미묘한 캐릭터다. 한마디로 길고양이같은 캐릭터다. 그래서 관록있는 발레리나들이 주로 이 역을 맡았던 이유이다. 그런데 연재리나가 그 감정선을 다 표현했다. 퍼플 파드 되에서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미묘한 심리전, 순수한 어린아이같은 모습에서 넘나드는 요염함, 아르망의 가학적인 괴롭힘도 참고 견디면서 순수했던 사랑을 지키려는 모습, 가장 복잡한 감정신이 많이 들어가있는 블랙 파드 되까지 연재리나의 몰입에 나도 빠져들었고 마음이 촉촉해졌다. 연재리나 자체가 남다른 깊이의 감정선을 지닌 발레리나 같았다. 칭찬해주고 싶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발레리나이다.


아르망 역의 변성완 발레리노는 1, 2막보다는 3막에서 폭팔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영상물로 봤을때는 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아르망 역 자체가 체력소모가 심한 배역이라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다. 마르그리트를 리프트해서 빙글빙글 돌고, 마르그리트 손을 잡고 뛰어다니고를 반복, 분노에 사로잡혀서 한밤중에 파리로 질주하고 또 질주하고 또 질주해야 하는 아르망 역은 어지간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힘들 듯 하다.


전반적으로 감동받은 공연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직관하면서 이토록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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