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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카멜리아 레이디> 이야기

by 아트 서연



고전발레는 틀을 지켜야 해서 힘들고 드라마 발레는 발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이 한계에는 무용수들의 배우같은 연기력과 음악에 대한 이해가 따라와야 그것을 뛰어넘을 수가 있다. 즉 무용수의 해당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몰입, 그리고 작품에 사용된 음악을 얼마나 역할과 춤에 녹여서 캐릭터 그 자체로 표현했는지가 중요한 게 드라마 발레이다.


드라마 발레에서 음악은 매우 중요하다. 발레작품을 위한 발레음악이 아닌 애초에 발레와는 아무 상관없이 작곡되었던 연주회용 음악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을 구상할 때에 그 작품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음악을 골라야하는 안무가의 센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무가가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조예가 깊어야한다.


존 노이마이어가 <카멜리아 레이디>를 구상했을 당시 발레 피아니스트와 의논해서 선택했던 음악이 바로 쇼팽의 피아노곡들이었던 것이다. 쇼팽의 곡들을 이 작품의 음악으로 선택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쇼팽의 음악들이 전반적으로 뭔가 사연있게 들리거나 연애편지나 연애시 비슷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쇼팽이 살았던 시기와 소설 속 작품의 시대가 거의 비슷할 뿐만 아니라 쇼팽 역시 파리의 멋쟁이였고 댄디족으로서 살롱에서 피아노 연주하기를 무척 좋아했던 작곡가였다. 마르그리트 고티에처럼 살롱 문화를 주도했던 실제 코르티잔들도 있었기 때문에 쇼팽의 음악만으로도 소설 속 배경과 시대상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카멜리아 레이디>에 사용된 쇼팽의 음악들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심리를 묘사하거나 가끔은 관객들이 비극적인 몰입감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이 되도록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쇼팽의 음악들이 대화하는 것처럼 들렸다. 특히 1막의 퍼플 파드 되에서 사용된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과 2막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아버지의 파드 되에 사용된 전주곡 17번이 그렇다. 두 파드 되 모두 인물들이 팽팽하게 감정 대립하면서 대화하는 듯한 판토마임과 춤은 마치 소설에 나오는 내용들을 거의 그대로 묘사했기에 그 느낌은 정말 생생하다.


그렇기에 어제 2막에서 조연재 발레리나와 아르망의 아버지 역으로 나왔던 이재우 발레리노의 춤은 정말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다. 순수한 사랑을 지키고 싶어서, 다시는 코르티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르망의 아버지에게 애원하고 몸부림치는 연재리나의 연기에 나도 그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면서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하지만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당연히 냉정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한편으로는 마르그리트를 가련하게 생각하는 이재우 리노의 연기가 정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연재리나가 발레를 정말 늦게 시작했는데도 입단한지 7년만에 수석 무용수까지 초고속으로 승급한 상당히 드물고 희귀한 케이스이다. 게다가 한국인 대다수가 좋아하는 러시아 발레 체형이 아니다. 연재리나의 발레 체형은 거의 유럽, 프랑스 발레리나 느낌이 난다. 그래서 어제의 공연은 연재리나가 더욱 유니크하게 보였다.


게다가 이제 나이가 서른살밖에 안 된 발레리나가 이제 막 수석 무용수가 되어서 맡은 주역이 마르그리트 고티에 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칭찬해주고 싶었다.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다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어떠한 근원적인 슬픔, 처연함이 묻어나와 보는 내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예술작품 속의 캐릭터이지만 참 안쓰럽고 애잔하고 슬픈 캐릭터를 연재리나가 혼신의 춤과 연기로 캐릭터의 모든 것을 다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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