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바라본 발레 세계관 <물리의 쁠리에>
책의 부제가 '과학자가 보는 발레 세상'인 <물리의 쁠리에>는 발레를 취미로 배우신 공대 교수님이 바라본 발레 세계관이다. 덕분에 그 동안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알게 되어 사고가 확장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일반 취미발레인들은 댄스 플로어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이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 뿐 그 이상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작가는 과학자답게 탄성을 확보하기 위해 끼워넣는 재료들과 설치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그렇게 설치된 플로어가 무용수의 운동량을 받아내는 원리를 물리학적으로 설명을 한다. 하지만 최고의 탄성 플로어는 발레의 가장 기본 동작인 '쁠리에'로 귀결이 된다. 지금까지 무용 선생님들한테 도약 전에 용수철처럼 사용하는 동작이라고 설명을 들어왔던 '쁠리에'라는 동작에 과학적인 원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쁠리에'를 매번 또다른 과학용어와 연결시켜서 이 책 전반에 걸쳐 또다른 과학적인 원리로 설명을 한다. 도약하기 전에 디딤판처럼 사용하는 천연 플로어 '쁠리에'는 부상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동작을 수행할 때 무게 중심 이동을 '중력과 내가 추는 빠 드 두'에 비유를 하고, 기중기의 원리에 적용을 하거나 뇌가소성을 활성화하는 프랭클린 심상훈련법을 예시로 든다.
제일 재미있었던 챕터는 롱드 장브 아떼르를 달의 공전에 비유한 것과 고유 수용성 감각이다. 덕분에 나름 호기심 많은 나는 발레 수업시간에 롱드 장브 아떼르를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반원이 '원'인지 '타원'인지 보려고 했고, 고유 수용성 감각 챕터에서는 오랜만에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무용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면서 했던 유명한 말을 떠올렸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순도 100% 문과생인 나는 이 책의 출판사에서 펴 낸 발레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늦게 구입했다. 하지만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바 워크 할 때에 2번 플리에에서 파쎄 동작을 할 때에 중심 이동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이 이 책 덕분에 더욱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발레 영상물을 감상할 때에도 같은 아라베스크 자세이지만 낭만발레와 고전발레의 무게 중심 즉 지젤과 사탕요정 아라베스크의 차이점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작가의 유머감각에 빵 터지기도 했다.
"발레 선생님은 호랑이를 알려주고 싶겠지만 선생님도 살아온 삶이 있다 보니 호피 무늬 바지라고 이야기하게 되고, 분명 선생님이 호피 무늬 바지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성인발레 수강생들은 검은 가죽 바지라고 듣고 나서는 검은 가죽 바지가 불러내는 기억 중 하나를 호출해 락가수 김경호를 떠올리게 됩니다. 결국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은 호랑이, 나는 김경호인 것이죠."(p. 13) 작가는 웹툰 <나빌레라>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런 예시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났다.
제일 공감이 갔던 챕터는 역시 "17. 탐닉 - 도파민은 발레 호르몬"이다. 발레에 빠지도록 관여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몸을 극한으로 쓰는데도 그것을 잊고 오히려 발레를 더욱 탐닉하게 만드는 '베타 엔돌핀', 그리고 함께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 관한 설명들은 취미발레인으로써 가장 눈이 번쩍 뜨이는 챕터였다.
"도파민은 정말 발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발레를 시작하면 도파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보이는 발레 중독 현상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서 정말 기뻤다. 발레의 늪에 빠지게 하는 도파민을 '발레 호르몬'이라고 비유하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나의 발레 덕질은 영원하리...'
"이렇듯 탐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뇌와 탐닉을 더 추구하고자 하는 뇌가 싸우게 되지만 사실 싸움의 승부는 이미 나 있습니다. 당연히 발레의 승리죠."(p. 148)
"발레를 통해 도파민이 주는 행복감과 베타 엔돌핀이 주는 행복감의 미묘한 차이마저 느낄 수 있는 호르몬 미식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p.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