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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29. 2023

클라우스 메켈레 & 오슬로 필하모닉

북유럽의 휴머니즘과 판타지

유튜브로 예습했을 때 얀센의 짙고 빽빽한 음색이 한결같이 부드러워서 핀란드의 차가운 서정미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메켈레&오슬로 필하모닉과의 조화가 어떨지 내내 호기심반, 기대반이었다.


재닌 얀센의 연주 동영상들을 찾아서 들을 때마다 연주자의 개성보다는 실내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너무 따스해서 이제까지 들어왔던 다른 연주자들의 해석과는 달라 한동안은 의구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맑고 투명해서 찬공기가 가득한 자연 경관만이 핀란드의 낭만을 표현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북유럽 미술 중에 아늑한 실내 공간에서 잔잔한 일상을 보내는 그림들이 많다는 게 떠올랐다. 칼 라르손의 따스하고 행복한 그림들까지도.


이렇게 생각하니 재닌 얀센의 연주 해석이 개성 있으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왔다. 팽팽하게 긴장감도는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서 훈훈하게 올라오는 따스하고 여유로운 소리. 마치 밖은 눈보라가 치고 기온 차이 때문에 창문에는 서리가 생겼더라도 밖의 온도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실내는 아늑하고 따뜻해서 얇은 옷을 입고 여유롭게 묵직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 얀센의 연주는 그런 연주였다.


그러면서도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뛰어난 테크닉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두루 갖추어서 이런 면모까지 타고난 재능으로 보였다. 재닌 얀센과 메켈레&오슬로 필하모닉과의 협연은 상반된 기온 차이로 인한 대립이 아니라 북유럽의 차갑고도 투명한 대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휴머니즘이었다.



클라우스 메켈레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참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 "나이 어린 천재 지휘자", "노장들에게 지휘봉을 흔드는 젊은 지휘자".  어제 무대 위를 걸어나오는 모습을 본 순간 그 수식어들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젊은 지휘자의 모습에서 온유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느꼈다.


음반에서 느꼈던 감동이 실황에서도 이어질까 내내 기대했었는데, 어제 공연은 그 이상이었다.


메켈레의 뛰어난 악기 표현력이 곡의 공간감을 확장시키고 색채감을 더해서 다채로웠고 곡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오케스트라 음향의 극적인 연출은 자연스레 북유럽 신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특히 2악장에서 어둡고 황량하게 울려퍼지는 바순의 소리가 음반에서보다 훨씬 선명하게 들렸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장중한 현의 물결과 강타하는 타악기 소리, 음향에 입체감을 부여하면서 차갑게 빛나는 관악기의 음색은 극적으로 반전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악기의 음색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젊은 지휘자의 지휘봉에서 펼쳐진 입체적인 사운드와 극적인 반전, 신비스러운 오로라가 교차하는 장엄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매력이 가득찬 판타지의 세계. 순간 젊은 지휘자는 마법사처럼 보였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요정들처럼 보였다.



재닌 얀센의 연주 실력도 좋았지만 바이올린 자체의 악기 소리도 참 고혹적이고 윤기 있었다. 스트라바디우스라고 하던데, 몇 백년 묵은 깊은 장맛!같은 소리였다.


클라우스 메켈레는 서 있는 것 자체가 음악이었다. 탁월한 연주 해석으로 시벨리우스의 작품의 분위기와 의도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로 이끌어내면서 관객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할 줄 아는 지휘자였다.



프로그램

1부 

장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47

앙코르곡 : J. S. Bach - Sonata for Violin solo No. 3 in C major, BWV 1005, III. Largo


2부

장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D장조, op. 43

앙코르곡 : King Christian ll Suite op. 27, 'Mus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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