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운 니콜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면서 전 유럽인들을 전율시켰고 수많은 음악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19세기 바이올린의 신이었던 파가니니는 자신이 작곡한 <24개의 카프리스>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넓은 음역대,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스타카토, 현을 튕기는 피치카토, 3개음을 동시에 긁는 트리플 스톱, 휘파람 소리를 내는 하모닉스 주법, 악마의 트릴 등 온갖 어려운 바이올린 연주법을 다 집어넣어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어려워하는 바이올린 곡을 작곡을 했고, 파가니니의 곡을 들은 피아니스트들은 여기에 크게 자극을 받았다.
외젠 들라크루아, 파가니니, 1832
특히 19세기 최고의 슈퍼스타 프란츠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곡을 듣고 감동을 받아 자신도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을 작곡해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요하네스 브람스 역시 파가니니의 곡을 바탕으로 난해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했으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도 강렬하고 화려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작곡했다.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S. 141> 중에서 ‘라캄파넬라’ 악보
파가니니에 의해 비르투오소 시대의 서막이 열리면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렵고 현란한 곡으로 무장한 비르투오소들이 계속 등장했다. 20세기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요제프 요아힘(19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조카딸 옐리 다라니의 연주를 듣고 최대한 어려운 테크닉을 모두 넣어 가능한한 접근하기가 어려운 바이올린곡 <치간느>를 작곡했다. 라벨의 친구 엘렌 주르당 모랑주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들으면서 치간느를 작곡한 라벨은 주르당 모랑주 부인에게 음악이 너무 어려워 소수의 연주자들이 아니면 쉽게 연주할 수 없겠다는 말을 듣고 “그러니까 더 잘 되었더군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저를 죽이려고 덤벼들지는 않을테니까요.”라고 되받아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라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마추어, 평범한 프로 연주자라면 치간느로 허비할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곡은 테크닉적인 난해함에 있어 사라사테, 비네야프스키, 심지어 파가니니와 같은 거장급 바이올리니스트 – 작곡가들의 작품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
발레에서도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특히 대부분의 취미 발레인들이 시간을 허비할 일이 거의 없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현란한 초절기교들이 있다. 이러한 초절기교들은 비르투오소 무용수들이 발레 작품 특히 클래식 발레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그랑 파드 되(2인무) 또는 그랑 파드 트루아(3인무)’에서 총 망라해서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무용수들이 초절정에 이르른 발레 테크닉으로 무대를 장악하면서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그 동안에 무용수 자신들이 연마한 모든 기교과 기량을 과시하면서 뽐내는 ‘그랑 파드 되(또는 그랑 파드 트루아)’에 나오는 초절기교들은 무용수 자신들도 춤추는 내내 경지에 도달한 희열을 느낄 것이고, 지켜보는 관객들도 무용수들의 압도적인 기량에 흥분이 되면서 감정이 최고조가 되는 부분이다.
발레 애호가들이 열광을 하면서 기립박수를 하게 되는 발레의 초절기교들은 남녀 주역무용수들의 아다지오가 끝나고 이어지는 남자 무용수의 독무, 여자 무용수의 독무에서 주역 무용수들은 각각 리듬을 타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현란한 기교와 함께 춤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점점 고조된 무대 분위기와 함께 투르 앙레르, 그랑제테 앙투르낭, 마네주, 32번의 푸에테 등의 곡예와 같은 발레 테크닉은 피날레인 ‘코다’에서 폭팔한다.
우아한 춤선에 내재된 열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발레 무용수들은 매일같이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한다. 상상 이상으로 그 노력과 훈련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길인지 짐작하기에 무대 위에서 화려하고 강렬하게 타오르자마자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춤선들이 언제나 소중하다.
Anastasia Matvienko and Tonino Scatolino in Le Corsaire
발레 <해적, Le Corsaire> 중 ‘그랑 파드 트루아(3인무)’의 영상물에서 노예 알리의 현란한 발레리노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용수철처럼 공중으로 튀어오르면서 회전한 후 착지하는 동작인 투르 앙레르와 두다리를 동시에 공중으로 던지면서 회전하는 그랑제테 앙투르낭, 쿠페 주테 앙투르낭 앙 마네주(줄여서 주테앙 마네주, 무대 위를 둥글게 돌면서 회전하는 동작) 등 발레리노로서 보여줄 수 있는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남성미를 한껏 발산하는 베리에이션이다.
메도라 역의 발레리나가 보여주는 32번의 푸에테 역시 매우 어려운 동작이다. 푸에테의 사전적인 의미는 스탠딩 레그로 신체를 지탱하고 워킹 레그로 채찍질을 하듯이 휘두르면서 회전을 한다는 뜻인데, 이 회전 동작을 자세히 보면 발레리나가 워킹레그로 앙레르라는 동작을 하면서 회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앙레르’는 대부분의 취미 발레인들도 배우는 동작으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닌 동작 같지만 직접 동작을 하는 사람은 지옥을 맛보는 순간이다. 마치 내가 마리오네트 인형이 된 것처럼 누가 내 머리를 뽑고 있는 느낌으로 몸에 중심축을 세운 후 호흡은 계속 천상에 닿으려는 것처럼 위로 위로 끌어올리는 풀업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관절부터 바깥쪽으로 돌린 턴아웃 상태에서 허벅지 뒷근육의 힘으로 90도 각도로 다리를 들어올려 무릎부터 발끝을 앙드당(내회전), 앙디올(외회전)을 하는 앙레르 동작은 너무나도 힘들어 자꾸만 손으로 바를 꽉 잡고 스탠딩 레그를 짓누르게 된다. 이 동작을 선생님들이 알려주실 때에 완벽하게 턴아웃을 하면 고관절의 뼈가 골반에 걸치는 느낌이 난다고 설명해주시는데, 일단 턴아웃을 하기 위해서는 고관절이 열리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서 매트 스트레칭을 할 때에 나비자세와 개구리 자세를 항상 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미 관절과 근육이 굳을대로 굳은 대부분의 성인들은 고관절이 열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바 동작 특히 앙레르 동작을 할 때에 너무 힘들어 스탠딩 레그에 체중을 실으면서 손으로 바를 짓누르게 되니 어느 날 보다못한 선생님이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바를 짓누르면 안되요. 발레바가 발레리노 손이라고 생각하고 살포시 그 위에 얹는 느낌으로 올리기만 하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취미 발레인들이 배울 수 있는 동작부터 비르투오소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초절정의 현란한 발레 테크닉까지 발레 동작들은 다 하나같이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럼에도 발레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도 발레는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더욱 빠져든다. 오랜 기간동안 끈기와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배워야 하는 발레는 그만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예술성이 가미된 빡센 근력 운동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의 선이 서서히 아름답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스마트폰 중독처럼발레의 강렬한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모든 발레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다른 운동도 많이 해봤지만 발레만한게 없어.”
예전에 BBC에서 제작한 <빛을 그린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인상주의 태동부터 늙은 모네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까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인생을 따라가는 영화였는데, 다 하나같이 인생을 그림에 올인한 그림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발레도 삶이 발레를 위해 구성될 정도로 올인하면서 인내심과 성실함으로 만들어 나가는 예술이다. 발레에 대한 열정 하나로 시작한 취미 발레는 수업 시간마다 발레에 적합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스트레칭으로 근육과 관절을 부드럽게 만들고, 바 동작을 배우면서 발레에 필요한 테크닉을 연마하고 음악적인 표현력을 배운다. 그렇게 어느 날 내게 다가온 발레는 내 인생의 일부분을 갈아 넣으면서 열정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