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란신이 안무한 <호두까기 인형>은 마린스키와 비교했을 때 큰 틀은 비슷하나 세부적인 사항과 느낌들이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1막에서는 다른 발레단에서는 없는 바이올린니스트가 연주하는 카텐차가 연주되고 2막에서는 배치한 모음곡 순서가 다르며 연주된 음악의 이미지와 템포의 변화도 다른 발레단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2막의 전개에서도 어린 클라라가 오빠 프리츠와 동화나라를 여행한다는 내용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클라라가 사탕요정이 되는 마린스키 버전과 마리가 호두 왕자와 결혼하는 볼쇼이 버전과도 차이가 있다.
매년 연말이면 거의 모든 발레단에서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은 처음에는 황실 소유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나 수많은 안무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편곡을 했다. 따라서 <호두까기 인형>도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다양한 편곡 버전이 있으니 취향 따라 골라보면 되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니버설 발레단은 마린스키 버전에 유병헌 예술감독의 개정 안무를 사용하고 있고,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버전을 사용하고 있는데, 어차피 작품 사용권을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작품이니 이제 러시아 버전은 국내에서는 그만 보고 싶고 로얄 발레단이나 발란신 버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데 발란신 작품들은 저작권 사용에 매우 깐깐하고 만약에 작품을 빌려와도 발란신 협회에서 파견된 발레 마스터가 전수하는 발란신 메소드를 배워야하기 때문에 발란신 작품을 빌려오는 게 쉽지가 않다고 한다.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했던 <주얼스> 도 그렇게 배워서 공연을 한 거라고 한다.
사실 발란신 메소드는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 메소드라고 하기에도 참 애매모호하다. 발란신은 발레 클래스 자체가 작품에 쓰일 안무였고, 실제 공연에서 실수했거나 부족했던 점을 발레 클래스에서 꼭 짚어보고 수정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발란신은 어디까지나 안무가이지 발레 선생님이 아니다. 게다가 즉흥적으로도 보이는 발란신의 춤들은 다른 메소드와는 달리 이론이나 교본이 따로 없었는데, 발란신을 따르던 발레 무용가들이 발란신 사후에 녹화된 영상물 자료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고 철저히 베일에 감추고 있으니 오히려 발란신의 뜻과는 상반되는 미국 무용가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올린 영상은 발란신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으로 다른 발레단보다 유난히 유아방 느낌이 난다. 이럴까봐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신 작곡가는 작품 의뢰를 받고 그토록 고민하셨나보다. 너무 동화적인데다 동심을 그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다고 하는데, 나는 작곡가가 역시 스토리텔링의 대가이고 어린이들을 사랑하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상을 보면 다른 발레단보다도 더 어리고 더 많은 인원수의 어린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만큼 발란신 안무의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어린이 무용수들은 잠깐 출연하고 마는 것이 아닌 작품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때까지 출연하기 때문에 역할들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
뮤지컬에서 출연할 아역배우를 캐스팅하는 만큼이나 기준이 까다로운게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이다. 춤을 잘 춰야하는 것은 물론 키와 체중을 보며 엄격하게 심사하고 작품 공연이 끝날 때까지 출연할 어린이들이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아야한다. 어린이들을 케어하는 부모들도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고생이다. 특히 발란신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유난히 나이가 어려보여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들이 놀고 싶은 거 참아가면서 연습에 매진했을테니 발레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지도하는 발레 교사도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소통할 줄 알아야 작품 연습도 원활히 진행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너무 유아방 분위기여서 처음에는 감상을 망설였는데 작품 곳곳에 발란신의 장난끼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감상했다. 너무 까부는 아들한테 "그만 좀 까불어."하는 듯한 엄마의 발레 마임에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객석에서 들린다.
감상을 마친 후의 느낌은 다 보길 잘했다는 점이다. 원작인 동화보다도 더 동화같고 판타지같은 발란신의 <호두까기 인형>은 발란신이 원작의 스토리텔링과 신고전주의 발레를 결합하여 뛰어난 상상력과 안무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재창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