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손열음. 그녀가 보고 싶었다.
2020년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클라라 주미강과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무산되어 그녀를 볼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그게 내내 마음 한 켠에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런데 올 봄의 초입 어느날엔가 그녀가 아람누리에서 공연을 한다는 문자가 고양문화재단에서 날아오는 게 아닌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리사이틀이었는데, 연주되는 곡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그녀가 보고 싶어 재빠르게 예매를 했었다. (평소 행동이 느린 나는 티켓팅하는 순간에는 동작이 빨라진다.)
그래서 살까말까 망설였었던 그녀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도 구매해 예습도 했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맑고 명료한 소리를 내기 위해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선택하는 대다수의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그녀는 부드럽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 뷔젠도르퍼 피아노로 연주 녹음을 했다. 이제까지의 맑고 또랑또랑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음색에 익숙해있었던 나는 뷔젠도르퍼의 오르간같은 음색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녀의 장난기 넘치는 리듬 감각이 재미있어서 이내 그녀만의 독특한 해석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콘서트홀에서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를 했기 때문에 음반으로 들었을 때와는 소리가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소리가 넓고 크게 전달된 순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특유의 아기자기한 매력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모차르트 시대에는 피아노가 이제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대라 베토벤 음악처럼 깊고 풍성하고 웅장한 소리를 내기는 힘들었다. 건반수도 64개 밖에 안되었으니 한정된 음역안에서 작곡을 해야했을 터. 게다가 낭만주의 음악처럼 개인의 감성을 중시하는 것이 아닌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음악이었으니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조성을 철저히 지켜 작곡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담하고 예쁜 음악이 나온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 시대에는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히 모차르트 음악, 특히 피아노 소나타는 아늑한 공간에서 소수의 친밀한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들어야 그 특유의 예쁘고 아름다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날이었다.
무엇보다도 손열음은 테크닉이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보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들처럼 화려하게 건반 위를 누비는 게 어울리는 연주자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내고 리사이틀을 한 것은 모차르트나 바흐 음악이 연주자들에게는 일종의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것과 같은 작곡가들이기 때문이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들이 화려하게 건반 위를 수놓고 나면 언제나 연주하고 싶어하는 작곡가들이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들이다. 그만큼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은 악보를 봤을 때는 쉬워보이나 쉬운 음악들이 아닌 것이다.
그 날 공연은 본식보다 디저트가 더 좋았다. 아니 훨씬 좋았다. 매우 기교적인 앙코르 곡을 연주하는 순간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게 손열음이지!" 세 곡의 앙코르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기립박수를 했다.
어쨌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손열음 피아니스트를 봐서 여한이 없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다면 화려한 비르투오소로서의 손열음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