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브랜드의 발레 사랑
1924년에 발표한 발레 뤼스의 작품 <푸른 기차>와 처음으로 발레와 인연을 맺은 가브리엘 샤넬은 이후에도 발레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단순함은 진정한 우아함의 핵심이다."는 평소 자신의 패션 철학을 발레 의상에도 접목을 시켰다.
샤넬이 추구한 단순함과 편리성은 오늘날 패션의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샤넬이 살았던 시대에는 파격 그 자체였다. 당시 유럽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너무 조이는 바람에 체형이 기형이 되는 것은 물론 장기 파열까지 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개미 허리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면서 치마를 풍선처럼 부풀렸으나 대신에 수반된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실신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기절방'이 따로 있었다고 하니 그 독특한 공간에는 코르셋으로 인해 실신한 여성이 편히 기댈 수 있는 카우치가 있었고 코르셋을 벗겨줄 여자 하녀와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코르셋을 착용하면서 불편한 일상 을 지내던 시대에 코코 사넬은 과도한 장식을 떼버리고, 일상은 물론 건강까지 위협하는 코르셋까지 던져버렸다. 그리고 남성복에 주로 사용했던 편리한 소재들을 여성복에도 넣기 시작했다.
샤넬은 이와 같은 평소의 패션 철학을 발레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무용수의 움직임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튜튜를 디자인했을 때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클래식 튜튜를 버리고 대신에 무용수가 움직일 때에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단순화해 튜튜를 제작했다.
코코 샤넬 이후에도 "샤넬" 브랜드와 발레의 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샤넬 브랜드는 2018년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후원하면서 매년 시즌 오프닝 갈라 공연의 의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샤넬"이라는 고급 브랜드는 '발레'의 우아한 이미지를 광고 및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발레 역시 명품 브랜드를 입음으로써 고급 이미지를 이어나가고 있어서 그야말로 "패션을 입은 발레, 발레를 입은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https://youtu.be/etq_g5h8xw8?si=h3ZiCd7b79AHL6j8
게다가 2021년에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뚜왈 박세은 발레리나가 샤넬이 디자인한 무대 의상을 입고 시즌 오프닝 갈라 공연 무대에 올랐으니 매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한국인 출신인 발레리나가 패션과 발레로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로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https://youtu.be/zq3c8UY-ec8?si=2AHH2AXE872hGsKO
한편 가브리엘 샤넬의 이야기를 발레 작품으로 만들어 2019년에 초연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발레 <모당스>이다.
제목의 Modanse는 패션을 뜻하는 mode에 춤을 뜻하는 danse를 합친 합성어로 제목만 봐도 패션을 입고 추는 발레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코코 샤넬 역을 맡은 것 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샤넬 패션 하우스에서 디자인한 무대 의상을 입은 자하로바의 모습은 그야말로 샤넬의 모습과 닮아있다. 코코 사넬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우아함에 더해 자하로바의 얼음 공주같은 이미지는 더욱 매혹적인 시너지를 발산해 보는 사람들을 압도시킨다.
https://youtu.be/JLw-UeE1sJ4?si=jsvGGKfkf2smBAgm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만들어내는 작품마다 파격적이고 창의적이어서 언제나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21세기의 핫한 발레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그는 고전적인 플롯을 선택해 자신만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백설공주>를 발표하여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프렐조카주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대상으로 한 잔혹동화 <백설공주>를 탄생시키면서 여기에 오트 쿠튀르라는 패션까지 가미했다. 이 독보적인 안무가는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를 만나 무대의상을 디자인해 줄 것을 부탁했다.
무대 의상 디자인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 고티에는 자신이 발레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데, 오히려 각 캐릭터의 개성과 특징을 의상으로 멋지고 창조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까지 합세해 작품 속 캐릭터들은 의상과 함께 더욱 생생하고 눈을 뗄 수 없을만큼 매혹적인 인물들로 창조되었다.
https://youtu.be/I6xZaGFcrbI?si=LYb1Jf2MgGpR2uM5
https://youtu.be/y2f3ys-pwrI?si=uO4FzHshA2g0Yuac
20세기부터 발레는 다양성을 시도하면서 발레 의상도 함께 변화했다. 실험정신이 강한 안무가들 덕분에 발레 의상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발레는 창의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낭만주의, 고전주의 발레는 여전히 전통을 지키고 있지만 그 외의 창작되고 있는 발레 작품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발레 의상도 새로운 스타일이 계속 나오고 있고, 20세기에 샤넬과 발레가 만난 것처럼 21세기에도 유명 패션디자이너나 고급 브랜드가 발레와 협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발레 애호가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떠한 창의적인 발레 작품에서 기발한 발레 의상을 만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크다.
* 참고 및 인용한 문헌 *
<그림 속 드레스 이야기>, 이정아 지음, J&jj
<튜튜, 욕망을 입다>, 정한아 지음, FLOORWOR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