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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와 유머의 조합

발레 Concerto

by 아트 서연

죽음과 광기, 비극과 관능에 집착했던 영국의 20세기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의 작품들은 유난히 격랑에 휘몰아치는 격정적이고 어두운 느낌의 작품들이 많은 것이 큰 특징이다. 그래서 맥밀란이 왜 이런 작품들을 창작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신 학자들이 있다. 분석 결과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차곡차곡 쌓인 전쟁에 대한 공포와 기억의 상처들이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확실히 맥밀란이 만든 작품들은 범상치가 않다. 죽어서도 이어지지 않는 두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광기어린 황태자가 권총으로 자살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마이얼링>, 한 여인의 욕망과 사랑을 파란만장하게 그려낸 <마농>,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이야기 <아나스타샤>...

http://brunch.co.kr/brunchbook/artseo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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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어두운 것에 유독 끌렸던 맥밀란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도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맥밀란이 몸담고 있었던 로열 발레단에서는 말러의 음악이 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았다. 그러자 맥밀란은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 존 크랑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존 크랑코는 맥밀란의 요청을 받아들여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공연 결과가 대성공을 거두자 그제서야 로열 발레단에서도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렸다.


불멸의 대지 위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여자, 남자, 죽음으로 표현한 맥밀란의 <대지의 노래>는 염세적이면서도 허무한 느낌을 주는 말러의 음악을 춤으로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지의 노래> 중 마지막 악장인 '고별'에서 현세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며 꺼져가는 생명으로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부분을 고전 발레 테크닉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근육과 동작을 사용하여 춤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발레의 상승 에너지 대신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동양적인 춤사위를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https://youtu.be/NzRPL07lgpk?si=FkEIYDxuaNq-rjuO


수많은 안무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된 발레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맥밀란의 버전만큼은 보기 불편하다는 평가를 하는 애호가들이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되도록 본능적이고 집착이 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동작들이 처절해서 아름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안무가의 개그 본능을 봐버렸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 유머에 빵 터졌고 그날부터 나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에게 반해버렸다.


오늘 소개하는 맥밀란의 추상 발레 작품 <Concerto>도 어찌나 깜찍하고 발랄한지, 처절한 비극 발레를 만드셨던 안무가님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주 유쾌하고 장난기가 넘치는 발레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전 악장을 추상 발레로 만든 이 작품은 음악의 분위기를 춤으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부성애가 강했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사랑하는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를 위해 작곡한 이 곡은 실제로 아들에게 헌정되었다. 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아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훗날 소련의 유명한 지휘자가 된 막심 쇼스타코비치는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 곡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초연했다.(1957년)

https://youtu.be/A0A_rCAtIeM?si=t1odjr2Nsh2DwFFL


전체 3악장인 이 곡은 어린이 행진곡풍의 1악장과 사라방드, 녹턴 선율이 교차되는 2악장 그리고 유쾌한 선율이 빛나는 론도 형식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순이 어린이 행진풍의 음형을 불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함께 장난치려는듯이 끼어들고 피아노가 개구쟁이처럼 은반 위를 생기있게 뛰어다닐 때 발레 무용수들도 댄스 플로어 위를 통통 튀듯이 발랄하게 뛰거나 가로지른다. 피아노가 포르테로 강하게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발레리노들이 힘차게 무대 위를 점프하고 장난기 어린 선율이 유쾌한 코다 부분에서는 행진하듯이 힘차게 걷는 군무가 재미있다. 음악의 다이내믹한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무용수들의 도약이 재미있는 1악장이다.

https://youtu.be/sb5aKgjJeb8?si=m18yS-afOPgzDJtD


우수 깃든 선율로 시적인 낭만이 가득한 2악장에서도 맥밀란의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마치 '발레리노 손은 발레바' 하듯이 발레리나가 발레리노 손을 바처럼 잡고 앞 컴브레, 백 컴프레, 피루엣, 팡쉐, 데벨로뻬 드방의 바 동작을 하는 모습에서 은근히 웃음이 나왔다. 특히 발레레나는 온갖 감정을 다 잡고 바 동작을 하는데 발레리노는 진짜 발레 바가 된 것처럼 무표정이어서 더 웃음이 나온다.

https://youtu.be/LLCh_b8Lu20?si=iReXL7D0fdz4JgD4


2악장과 대조되는 3악장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장난기를 느낄 수 있는 피날레 악장이다. 경쾌한 제 1주제를 지나 제 2주제에서 피아노가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손가락 연습을 하기 위해 배우는 <하농> 2번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피아노 전공자들을 웃음짓게 한다는 이 부분에서 맥밀란 안무가님도 또다시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가 갑자기 하농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무용수들이 음표처럼 우르르 무대 위로 발랄하게 뛰어나온다. 그리고 손가락 연습을 위해 배우는 하농처럼 발레리나들이 번갈아가며 회전하고 나면 발레리노가 점프를 한 번 하고를 반복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나온다. 작곡가의 장난기에 유머 감각을 더한 안무가의 재치가 재미있는 발레 작품이다. 1966년에 초연한 이 발레 작품은 정말 클래식 애호가와 발레 애호가 모두를 웃음짓게 한다.

https://youtu.be/1-VJY1Qgga0?si=1ZG8XoWwqou7mG75


* 김문경 선생님의 음악 설명 참고

(인스타그램@kmk_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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