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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Mar 28. 2024

갈등보다 소중한 것들

크리스탈 파이트의 <바디 앤드 소울>


캐나다 출신의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의 작품들 중 <베트로펜하이트>와 <바디 앤드 소울> 단 두 편만을 봤지만 안무가 자체가 타고난 심리전문가라고 느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작품안에 트라우마에 직면하면서 심리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거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집단과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가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과 통찰력이 들어간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촘촘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에서 안무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했겠지만 안무가 자신이 매우 뛰어난 관찰자이자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짜임새 있는 무용 대본을 비롯해서 치밀하게 배치한 무용수의 동선과 춤이 감상자의 마음을 매료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탈 파이트는 무용 대본가 조너선 영과 협업하여 '트라우마'라는 뜻을 지닌 <베트로펜하이트>를 만들어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무용과 연극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 작품은 무용 대본가로 참여했던 조너선 영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 휴가중에 큰 화재로 딸과 두 조카를 잃은 조너선 영은 대본 뿐만 아니라 무용수로서 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여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도의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린 주인공은 자신의 심리상태에 직접 마주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그 심리를 공유한다.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이 상실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면서 정서적인 지지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책을 하던 주인공은 친구들의 정서적인 지지에 힘입어 점차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수용하고 삶에 대한 용기를 갖는다.

 https://youtu.be/Xfs-SEx1nCU?si=NklRSCXNyc7aODeg



감상하기에 따라서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는 이 작품은 그만큼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그 감정을 직면해야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내용이 전개됨에 따라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따스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친구들의 마음 따뜻한 모습과 그 상처 속에서 걸어나와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동참하게 된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보고 큰 위로를 받은 감상자들도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무용이 아름다운 춤을 보기 위한 공연 예술이었다면 이제는 무용에 연극이 결합되어 인간의 상처받은 심리를 치유하는 무용 치료의 시대가 것이다.


<베트로펜하이트>로 큰 호평을 받은 크리스탈 파이트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바디 앤드 소울>이라는 작품을 창작했다. 육체와 영혼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은 개인과 개인의 대립, 개인과 집단과의 갈등, 집단과 집단과의 충돌을 그리면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밀도있게 묘사한다.

크리스탈 파이트, <바디 앤드 소울>


전체 3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역시 무용과 대본, 추상 발레를 오가며 현대음악과 쇼팽의 전주곡, 재지한 팝송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에 따라 인물들이 움직인다. 그 내용과 움직임은 개인간의 싸움이 되기도 하고, 집단과의 갈등과 충돌이 되기도 한다. 음성에 의해 영혼없이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체에 의해 로봇처럼 통제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아우라를 느끼게 하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https://youtu.be/1l5kTOeGw1g?si=OjAKeWLwgDnaIcae


남녀 무용수의 파드 되로 시작하는 2막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쇼팽의 전주곡들과 함께 무용수들의 춤은 파드 되와 군무를 오가며 음악이 주는 감정들을 추상적인 몸짓으로 표현한다. 그 감정의 기류와 몸짓은 거대한 파도소리와 함께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며 거세게 물결치기도 하고 그 물결이 집단 충돌로 이어지면서 집단 무의식과 같은 춤사위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인물이 죽기도 하며 감정의 격랑이 개인을 뒤덮기도 한다.

https://youtu.be/1rA6E9IpVGA?si=oUiK3aEbDJWIJjCL

https://youtu.be/MQ3MCJdMC78?si=cm78jR8SVB_TbC5f


외계인같은 무용복을 입고 춤을 추는 3막에서는 살벌한 무기(?)까지 들고 무용수들이 등장하지만 1, 2막처럼 갈등과 대립, 충돌을 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간장감을 가지며 서로 탐색을 하지만 결국에는 조화를 이루면서 이 작품 중 가장 폭팔적인 흥을 보여준다.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면서 파격적이다 못해 외계인처럼 입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의외로 이 작품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발레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팝송 'Body and Soul'에 맞춰 구사하는 발레 테크닉은 파격적인 의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심각한 갈등과 대립, 충돌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결국에는 인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기분좋은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관계'야말로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의 행복은 바로 그 소중한 것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공존, 공생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열한 경쟁이나 대립, 갈등보다는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안무가는 말하고 있는듯 하다.

 https://youtu.be/fWGB66UdxQY?si=lb5VCZLT9nU7chcx

(9분 51초부터 3막)



안무 : 크리스탈 파이트

출연 : 파리 오페라 발레단

음악 :

1막 - Interpretation de vessela pelodska

2막 - 쇼팽의 전주곡 op.28 중 1, 2, 4, 18, 7, 8, 12, 13, 14, 15, 20, 24번 (연주 : 마르타 아르헤리치)

3막 - Teddy의 'Body and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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