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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04. 2023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의 역사

<사랑의 역사>-이병률 시인- 을 읽고..

<사랑의 역사>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 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 데 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의 역사


 

1.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이 시의 제목을 듣고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왜 제목을 사랑의 역사로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대중가요 사랑의 노랫말부터 영화 속 사랑이야기 까지 우리가 접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 시의 제목 그대로 사랑의 대한 역사를 정리하는 글을 쓴 다면 그 분량은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야기와 여러 노랫말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사랑의 첫 시작 그 두근거림을 노래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랑 영화와 노래 가사 말들은 사랑의 한 단면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벗어나 사랑의 시작되는 순간을 그린 제인 오스턴의 “오만과 편견”, 사랑의 아픈 기억을 그리고 있는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 사랑 이후 남겨진 것들에 대해 위로하고 있는 이와이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이 세 작품 모두 사랑을 말해주었고 각기 다른 사랑의 단면들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위 작품 모두 사랑의 전체적인 단면을 담아내진 못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의 시작되는 그 단면만을 , 클래식은 아픈 사랑의 끝맺음만을, 러브레터는 끝맺음 이후의 회한 만을 그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 세 작품이 절대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한 사랑은 각자 마다 다르고 그 형태도 다양하기에 사랑의 모습을 단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세 영화는 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사랑을 다룬 여러 작품들 중에서 그 전체적인 단면을 다룬 작품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설렘의 과정을 함축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상당한 통찰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룰 이병률 시인의 사랑의 역사는 사랑의 모든 시간들은 감각적인 이미지와 함축적인 표현으로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음에도 상처입고 아파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시를 논하는 데 있어 연인간의 사랑을 경험을 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병률 시인의 시는 상처받아도 다시 시작되는 만남에 설레는 우리 모두를 이야기 하고 있기에 그저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다시 시작되는 만남에 한번 즈음 설렜던 사람이라면 이 시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인간의 사랑만을 사랑이라 국한 시키는 것은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하나의 뜻으로 국한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겁니다. 따라서 저는 넓은 관점에서 이 시를 접근하려 합니다.




2. 음하고 깊은 자리

( 시에 대한 분석)


 이 시는 우리의 심장이 왼편쪽에 존재한다는 걸 말하듯 사람의 마음을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심장이 마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사람의 왼 쪽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심장을 통해 이 시는 사람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구부러진 길에 막다른 벽에는 긁힌 자국이 여럿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할 시어는 막다른 벽입니다. “막다르다”는 더 나아갈 수 없도록 앞이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에서 보여준 길은 앞이 막혀있는 길입니다. 막다른 벽이라는 시어는 두 가지로 해석 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람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입니다. 시 속에는 구부러진 길 끝에는 막다른 벽이 나옵니다. 이 막다른 벽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막다른 길은 더 깊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막다른 벽은 사람 마음의 깊숙한 곳, 가장 진실 된 곳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깊숙한 곳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든 사랑을 특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막다른 벽을 통해 폐쇄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폐쇄적인 이미지는 사랑이 갖는 구속성으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사랑 역시 시작할 땐 가슴이 설레고 쉽게 빠져들게 되지만 한번 이별을 겪고 그 슬픔에서 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시는 사랑은 한 번에 쉽게 빠져들 것처럼 설레고 달콤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폐쇄적인 벽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봐야할 시어는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긁히다”는 무언가의 충격으로 인해 쉽게 지워지지 않은 자국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쉽게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화자의 마음 깊숙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시의 구절을 통해 시의 화자는 사랑을 통해 상당히 많은 상처를 입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긁힌 자국 역시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보여주듯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온 사람이 겪었을 아픔을 긁힌 흔적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것이죠.



더 주목해서 봐야 할 시어는 “깊다 못해 음한 자리” 입니다. 긁힌 상처 자국이 여럿 있는 데도 불구하고 몇 군데는 깊다 못해 어둡게 되어있습니다. 수차례 부딪혔다는 것 역시 이 상처가 결코 한 번 겪은 상처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같은 상처를 겪고 깊게 파인 화자의 마음은 화자가 겪어온 사랑의 기록들입니다. 이를 통해 아픔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랑을 반복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맥없이 부딪히다.” 라는 표현을 통해 사랑이 남긴 상처들에 쉽게 무너지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챙겨가는 행위 역시 사랑이 남긴 상처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화자의 모습입니다. 화자 역시 그런 일들을 괜한 일들의 증표라 말하지만 상처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이별을 겪은 사람들에게 흔히 시간 지나면 잊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우리가 겪는 이별은 시간 지나면 잊어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별을 겪은 당사자는 그 괜한 일에 미련을 갖고 그 이별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사랑에 대한 상처를 미련으로 남겨두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 도 모르게 미련을 남겨두는 사람의 심리를 이 시는 적절하게 묘사했습니다. 다만 왜 그 일에 미련을 겪는 지는 이 시에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미련이 그리움에 의한 것인지, 후회에 의한 것인지 시에는 표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좋았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사랑에 겪는 미련을 어느 하나의 원인에 있다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미련이 쓸데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결국 붙잡게 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별 후의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별의 미련이 무엇으로부터 온지도 모르고 그것을 붙잡는 게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결국 그 미련을 갖게 되는 모습, 이는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겪어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벽 뒤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은 상처받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기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화자는 상처투성이인 벽 뒤로 가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그 벽을 붙잡고 있었을 겁니다. 벽 뒤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화자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만남으로부터 도피를 했다라고 보기 보단 벽을 통해서 그 상처를 어떻게 든 버텨왔다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또는 오래라 믿고도”라는 표현에서 화자는 상처 받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랜 기간 동안 버티고 버텨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의 핵심은 그 다음 행에 있습니다. 화자는 굳을 만하면 받치고 다시 굳을 만하면 받치는 일이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말합니다. 상처를 버텨내고자 마음을 통제해도 결국 다시 무너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반복 하다 이 상처들이 결국 자신의 소관이 아니란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화자는 이전에는 지나간 사랑에 미련을 두고 상처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것을 통제했지만 이것을 알게 된 이후 더 이상 마음을 통제 하지도 지나간 사랑에 미련을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처로부터 마음을 통제하지 않자, 화자의 마음에는 금이 가게 되고 천장마저도 헐게 됩니다. 마음이 아닌 벽에 상처를 새기고 그것을 참고자 오랜 시간 벽을 붙들던 화자가 벽을 놓자 마음의 금이 가게 된 것입니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통제해주었던 벽이 사라지자 찾아오는 것은 아픔입니다. 그 아픔에 자신의 마음이 부서졌는데도 불구하고 목덜미에선 여름 냄새가 나고 다시 심장은 뛰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의 아이러니라 생각합니다. 분명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그 마음마저 갈기갈기 찢어 놓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가슴이 뛰게 해주는 것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그 벽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 분명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을 겁니다. 그러나 이 성숙 역시 마음의 상처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전에도 사랑의 아픔을 겪었음에도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가슴이 뛰는 것 역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사랑의 상처, 그것을 어떻게든 버텨왔던 시간들, 성숙, 설렘 을 모두 하나의 시에 함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사랑의 역사라는 시의 제목은 사랑을 해왔던 시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상처입고 그것을 버텨보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무너지고 결국 그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한 단계 성숙해져 가는 사랑의 시간들을 하나의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시는 여타 작품들과 다르게 달콤한 사랑의 단면만을, 이별의 슬픔만 을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들 모두 사랑의 시간들이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시를 단순히 연인들의 사랑으로만 해석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위의 시 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시가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사랑이라는 주제 이외에도 만남과 이별 그리고 상처를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의 모습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가 말하는 역사라는 제목 역시 만나고 헤어지고 상처 입는 것을 반복하는 우리의 모든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개인적인 소감)

이 시는 결국 아픔과 설렘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항상 달콤하지도 슬프지도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린 상처를 견디기 위해 마음을 감추거나 괜찮다는 생각으로 버텨내고자 합니다. 상처와 이별의 시간들을 지워버리고 그 시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벽 뒤로 가 사랑의 상처들을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던 시 속의 화자처럼 이별을 슬픔으로만 기록할 뿐입니다. 사랑에는 분명 그 시간들이 존재하고 그 기록들은 가슴에 남습니다. 상처 입은 시간, 이별했던 시간 모두 각기 다른 감정으로 기록됩니다. 이 시는 그 기억들이 때론 아프고 슬플지라도 그것이 사랑의 시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상처 입는 것이 아프다 해도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가슴이 뛰게 될 만큼 사랑의 시간들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세 개의 다른 감상으로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상처를 위로하는 시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저 사랑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시로 감상했습니다. 두 번째는 시인이  경험한 사랑을 기록해놓은 자전적인 시로 감상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랑의 시간들을 함축해 놓은 시로 감상했습니다. 이 시에 대한 저의 결론은 위의 세 감상 모두 맞다는 것입니다. 이 시에는 사랑의 상처를 위로하고 있으며 또 사랑에 대한 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고 사랑의 모든 순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 하면 받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제 소관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그 괜한 일들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두게 되는 이유는 그 시간들이 소중한 기억들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어왔기에 제 마음에 받치는 일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벽에 긁힌 상처들은 절대 사랑의 상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통해 생긴 모든 상처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 깊은 만남일수록 더 뜨거운 사랑일수록 그 상처는 더 깊게 새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아팠던 시간만큼, 견뎌왔던 시간만큼, 설레는 만남이 다가온다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된 만남이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픔을 끝으로 더 성숙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어제 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만남, 헤어짐, 상처, 성숙 그리고 다시 만남이 반복되는 것, 이것이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저는 이 소중한 역사들을 버텨내려고도 슬픔으로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프더라도 더 성숙한 만남 위해,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해 그 시간을 소중한 순간들로 기록하고자 합니다. 깊다 못해 음한 자리가 마음에 생기게 되더라도 더 좋은 만남을 만들 기 위해 매 순간을 소중히 받아들이려 합니다.






-마치며-

이 글은 대학교 2학년에 적어두었던 과제입니다. 당시 이병률 시인의 <사랑의 역사>라는 시를 읽었고 묘하게 그 시에서 눈을 뗄수 없었습니다. 만남은 이별의 약속이라는 말처럼, 사랑 또한 아픔의 약속일 것입니다. 사랑에 아파한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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