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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04. 2023

바다, 위태로운 곳에 젖어 있는 삶의 고통

-「겨울 바다」-김남조-와 「땅 끝」-나희덕-에 가보다-

1. 바다, 위태로운 곳에 젖어 있는 삶의 고통


 “삶은 고해(苦海)다”라는 말이 있다. “쓸 고”에 “바다 해”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삶의 고통을 바다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수 억 년간의 침식 과정을 통해 형성된 바다는 그 시간만큼의 깊은 상처와 오랜 인고의 역사를 품고 있다. 바다를 통해 지나간 삶을 떠올리거나 삶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 역시 현재 바다의 모습에는 수억 년간 침식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바다는 지나간 날들을 회고하게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오랜 고통을 품고 있는 바다는 고통으로 가득한 허무의 공간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수심의 물줄기가 자리 잡은 곳이다. 또 매서운 파도에 의해 침식되는 위태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 침식을 통해 매일 아름다운 공간이 형성되는 곳이다. 깊은 허무와 인고가 동시에 존재하며 고통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바다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그렇기에 많은 시인들은 바다를 통해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그 곳에서 다시 희망을 찾기도 한다. 본고에서 소개할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와 나희덕 시인 「땅 끝」의 화자 모두 바다를 통해 삶의 고통을 떠올리지만 바다의 다른 이면으로 이를 치유해간다.


  매서운 해풍이 몰아치는 곳이지만 파도가 인사를 건네 듯 땅 끝을 조금 씩 적시는 곳, 그 곳에는 가혹함 속에 설렘이 있고 허무 속에 희망이 담겨 있다. 이 두 시 모두 바다를 통해 이 역설을 말하고 있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는 죽음을 언급하며 허무와 적막의 공간으로 바다를 그리고 있다. 죽음과 상실로 표현된 겨울 바다는 허무와 적막으로 가득 찬 화자의 삶에 대한 회의이다. 하지만 바다에는 허무와 적막만이 남겨져 있지 않다. 바다의 외부가 적막할지언정 그 내부에는 수심 속에 “인고의 물줄기”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화자는 바다 외부의 적막함이 아닌 깊은 수심 속의 인고의 물줄기를 보게 되고 이를 통해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된다.


 나희덕 시인의 땅 끝에서 화자는 어린 시절의 이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는 바다의 매서운 파도로 표현된다. 여기서 이 시가 말하는 바다는 위태로움과 불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하지만 그 위태로운 곳엔 불안과 두려움만이 남겨져 있지 않다. 화자는 그곳에서 “젖어 있는 땅 끝”을 보게 된다. 이 “젖어 있는 땅 끝”은 바다의 위태로움이 땅 끝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젖어 있는 땅 끝”을 통해 화자는 위태로움 순간, 고통스러운 순간도 삶으로 포용해나갈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두 시의 화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두 화자 모두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바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같다. 본고에서는 겨울 바다와 땅 끝을 구조적으로 분석을 해본 뒤 이 두 시가 각각 말하고 있는 바다의 다른 모습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또 바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두 시에서 어떤 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지 말해 볼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속에서 찾은 삶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찾은 아름다움, 이 둘은 완전히 같은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것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두시 모두 바다를 통해 삶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시는 모두 바다의 위태로움 안에서 삶의 고통을 떠올리고 있다. 동시에 이 고통은 위태로운 바다의 모습으로 치유된다. 본고에선 삶의 고통이 어떤 식으로 치유되고 있는 지 알아보고자 한다.



[겨울 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 만도 매운 해풍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서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김남조 「겨울 바다」




2-1.「겨울 바다」에 서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는 계절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겨울을 시의 제목으로 삼았다. 겨울은 계절의 끝이자 모든 생명들이 잠시 숨을 죽이는 적막의 계절이다. 하지만 동시에 봄을 맞이하기 직전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해의 끝임과 동시에 봄의 희망을 품고 있는 계절, 겨울은 적막과 희망을 동시에 품은 시간대이다. 겨울바다에 간 화자는 땅 끝을 적시며 손짓해오는 파도에 설레기도 전에 냉기 가득 찬 해풍에 적막함을 느낀다.


   화자가 있는 장소인 바다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다는 강물의 흐름이 끝을 맺는 곳이지만 동시에 깊은 수심의 공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은 강줄기가 끝나는 지점인 만큼 적막한 공간임과 동시에 수많은 물줄기가 맞닿아 파도를 이루는 생성과 소멸의 공간이다. 마지막 계절임과 동시에 봄의 희망을 품고 있는 겨울이라는 시간, 강줄기의 끝임과 동시에 물줄기들이 서로 맞닿아 파도를 이루는 생명의 공간인 바다, 이 배경과 장소는 시에서 중요한 상징이 된다. 다음은 겨울 바다 안에서 화자의 인식이 어떤 식으로 전환되는 지 주목해보도록 하겠다.


  겨울바다에서 화자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새들의 죽음이다. 화자는 겨울 바다에서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이 죽고 없어져 버렸다고 말한다. 새는 다른 시에서도 이상, 순수, 자유로운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에서의 미지의 새는 화자가 꿈꿔왔던 이상 혹은 삶의 가치를 의미한다. 또는 화자가 어쩔 수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김남조 시인은 1950년 6.25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그를 통해 삶의 실존을 고민했다. 새가 상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들의 죽음을 통해 유발되는 화자의 정서와 시의 분위기이다.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어진 현실은 화자의 기대와 소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 이 상황은 화자에게 허무와 절망을 가져다준다. 화자는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상실과 적막을 마주한다. 화자는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허무와 상실의 감정은 슬픔의 온기를 통해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 바다는 슬픔의 온기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연에서 표현된 바다는 죽음을 통한 상실의 공간이며 그 어떤 슬픔의 온기마저 허락하지 않는 적막의 공간이다.


  화자는 겨울 바다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게 된다. 시 속에서 나온 허무의 불은 화자의 삶을 이뤄온 허무와 절망을 상징한다. 문자 그대로의 불이 아닌 “허무의 불”이라 적힌 시어에 주목해 볼 때 시에서 말하는 불은 화자의 삶을 불태운 허무를 상징한다. 화자는 허무와 절망이 그동안 자신의 삶을 불태워 왔음을 알게 된다. 불타는 듯한 화자의 내면의 허무는 겨울바다의 냉기와 공존하고 있다. 겨울 바다의 냉기는 허무의 불이 전해주는 온기와는 상반된다. 상반된 두 대상 간의 공존은 화자의 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화자는 자신 내면의 허무의 불이 물과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문자 그대로의 “물”이 아닌 “인고의 물”로 적혀있는 표현을 보아 “물”은 화자의 삶에 깊게 자리 잡은 인고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이 화자의 삶을 무참히 불태웠던 허무를 상징하고 있다면 물은 인고의 세월 동안 쌓여온 삶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불과 물은 서로를 소멸시키는 관계이다. 불에 의해 물은 기화 되고 물에 의해 불이 소멸되듯 불과 물은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시에서 말한 불과 물은 서로 영향을 받아 소멸하지 않으며 서로를 품으며 존재하고 있다. 물과 불이 공존할 수 없음에도 화자의 내면에서 서로를 품으며 공존 하듯 전혀 다른 것 같은 허무의 세월과 생의 의지는 서로를 품어 가며 화자의 삶을 이뤄왔던 것이다. 물위에 붙어 있는 불은 절망 속에서 의지를 품고 살아왔던 화자의 삶에 대한 비유이다. 이 연에서 화자는 겨울 바다가 허무와 삶의 의지가 동시에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공간임을 알게 된다.


  화자는 자신을 가르쳐 왔던 것은 언제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화자는 시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이 시간은 허무와 절망의 시간일 수 도 있고 인고의 시간일 수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는 화자가 허무와 적막으로 가득 찼던 순간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의 삶 안의 절망과 허무를 극복 하진 못한 채 다시 삶의 유한함을 자각한다.


  인고의 세월 끝에서 삶의 의지를 회복했지만 다시 삶의 유한함이라는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살아갈 날이 유한하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삶의 한계일 것이다. “남은 날은 적지만” 이 구절은 화자 스스로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에 가깝다. 극복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한계는 절대자를 향한 구원의 갈망으로 이어진다. 겨울바다에서 삶의 한계에 직면한 화자의 시선은 이내 절대자에게 향한다. 화자는 유한한 삶 속에서도 더욱 뜨겁게 삶의 의지가 불타길 기도 한다. 유한한 삶은 화자에게 죽음이라는 한계를 주지만 동시에 그 죽음을 극복할 뜨거운 영혼을 갖게 만들어주었다. 이 연에서 화자는 유한한 삶을 통해 회복의 기도라는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 다음 행에서 화자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남은 날이 적다는 것을 언급한다. 시에서 같은 구절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구절이 한 연에 걸쳐서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은 필자에게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첫 번째 구절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유한한 삶을 자각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뒤에 구절은 위의 구절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뜨거운 삶을 향한 기도를 끝낸 후 화자가 바라본 자신에게 남아 있는 날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이전 까지 화자는 자신의 유한한 삶을 통해 한계만을 직면했다. 하지만 뜨거운 기도를 마친 후 화자가 바라본 앞으로의 남은 시간은 더욱 뜨거운 의지를 갖고 살아갈 날들이 되었다. 이후 나오는 구절에서 화자는 뜨거운 의지를 갖고 살아갈 남은 날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같은 구절이지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두 구절은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었음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화자는 다시 자신이 서 있는 겨울 바다를 마주한다. 여기서 겨울 바다의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게 되는 화자의 시선의 변화를 통해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겨울 바다에서 적막한 외부가 아닌 그 내부의 인고의 물줄기를 보게 된다. 겨울 바다를 통해 화자는 절망과 허무로 가득한 자신의 삶의 내면에는 그 고통만큼 깊은 삶의 의지가 요동치고 있음을 확인한다. 겨울바다는 적막과 허무로 화자를 마주해준 곳이지만 그 내부는 적막만큼 깊은 인고의 물줄기가 수심을 이루는 곳이다. 겨울바다는 화자의 삶에 대한 자화상이자 화자의 삶에 대한 위로가 된다.


   이 시가 말하는 겨울 바다는 화자가 살아온 허무와 절망의 삶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절망만큼의 생의 의지가 흐르는 곳이다. 시 속의 겨울 바다는 고된 삶 속 에서 마주한 자화상이자 회고록에 가깝다. 겨울 바다는 화자가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적막하고 황량한 곳이지만 동시에 그 만큼의 깊은 인고의 물줄기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땅 끝]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 에게 잡아 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

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 끝에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 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 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선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곳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오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 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나희덕 「땅 끝」



2-2.「땅 끝」에 서다


  나희덕 시인의 땅 끝에서는 바다가 언급되지 않는다. 이 시는 바다라는 단어 대신 땅 끝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땅 끝과 바다가 주는 어감은 다르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가 허무의 공간임과 동시에 삶의 의지를 찾게 해준 포용과 깨달음의 공간이었다면 나희덕 시인의 바다는 화자를 삶의 끝자락으로 몰아넣는 존재이다. 또 유년 시절의 이상과 현실을 대비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시는 땅 끝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화자는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기 위해 힘차게 발을 굴린다. 노을은 하루의 끝을 상징한다. 하루의 끝인 노을을 보기 위해 발을 구르는 행동은 삶에 끝에 대한 화자의 갈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녹이 슨 것처럼 화자를 태우던 그네는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 품었던 이상과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과의 괴리는 조금 씩 두려움을 낳게 된다. 여기서 시는 어렸을 적 생각한 땅 끝과 어른이 되어 마주한 땅 끝을 대비시킨다. 어렸을 적 찾아 나선 땅 끝은 꿈과 아름다움에 취해 본인 스스로 가게 된 곳이다. 반면 나이가 들어서게 된 땅 끝은 이와는 다르다. 그곳은 파도가 끊임없이 육지를 집어삼켜 화자를 뒷걸음치게 만드는 곳이다. 여기서 바다는 화자를 뒷걸음치게 만드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에 대한 두려움이 바다의 파도를 통해 시각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원치 않은 곳에 선 화자는 뒷걸음 질 치지만 동시에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끝내 발을 디디며 서 있다가 땅 끝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바다는 강한 파도가 육지를 먹어 들어오는 곳임과 동시에 그 침식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반을 만드는 곳이다. 그러기에 바다 주위의 땅 끝은 늘 젖어 있다. 이 젖은 땅 끝은 파도의 위태로움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다. 바다의 위압적인 파도는 위태로운 땅 끝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침식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젖어 있는 땅 끝은 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어린 시절 땅 끝에 대한 이상만을 추구했던 화자는 지금에 와서야 땅 끝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자는 겉으로 보이는 땅 끝의 이상이 아닌 땅 끝 그 자체에 숨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땅 끝이 어릴 적 추구했던 이상과 다르다는 사실은 이제 화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화자는 땅 끝이라는 위태로운 공간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땅 끝은 바다가 만들어낸 위태로운 공간이자 바다를 통해 완성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바다는 매서운 파도를 통해 땅 끝을 깎는 다. 매일 침식되는 땅 끝은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하다. 허나 동시에 그 위태로움만큼이나 매번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것 역시 바다이다. 나희덕 시인이 표현한 바다에는 위태로움과 두려움이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아름다움이 깃든 공간이다.




3.두 시가 말하는 바다


본고에선 두 시에서 제시된 바다의 다른 이면을 보았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는 허무의 삶에 끝에서 바라본 삶의 자화상이자, 고통스러운 삶에게 전하는 위로이다. 이 바다에선 허무와 삶의 의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희덕 시인의 땅 끝은 위태로운 공간이자 무수히 많은 아름다움이 깃든 공간이다. 땅 끝은 바다가 만든 위태로운 변화의 공간이자 이 침식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공간이다.


위 두 시는 바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겨울 바다에서 화자는 죽음을 언급하며 삶의 허무를 말하고 있다. 겨울바다의 죽음은 허무의 불과도 같이 화자의 내면을 불태웠지만 허무의 삶 이면에는 삶에 대한 열망과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던 의지가 서려있었다. 오랫동안 죽음과 허무 속에서 살아온 화자는 겨울바다를 통해 허무와 삶의 의지가 자신의 삶을 이루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바다는 매서운 해풍에 의해 적막만이 남겨진 곳이지만 동시에 깊은 수심 속에는 인고의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겨울바다의 외부에서 내부를 향하게 되는 시선의 전환과 함께 화자의 인식은 전환된다. 화자는 겨울바다의 황량함에 좌절하지만 겨울 바다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인고의 물줄기를 보게 된 후 그곳에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된다. 매서운 해풍이 몰아침과 동시에 수심 속에서 인고의 물줄기가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겨울바다는 화자가 살아온 삶 그 자체이자, 인고의 삶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이다. 땅 끝의 바다는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위기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바다는 매서운 파도를 통해 “땅 끝”을 조금 씩 깎아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매서운 파도는 매일 새로운 형태로 “땅 끝”을 바꿔가며 그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땅 끝”에 대한 이상과 동경만을 추구했던 화자는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땅 끝의 모습에 실망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젖어 있는 “땅 끝”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게 되고 “땅 끝”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바다의 파도는 “땅 끝”을 깎음과 동시에 “땅 끝”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깎여지고 상처 난 곳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이처럼 두 시 모두 바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두 시인의 관점은 다르다. 「겨울 바다」에선 바다를 허무와 삶의 의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땅 끝에선 바다를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위기의 순간으로 그리고 있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의 화자는 바다를 통해 삶을 돌아봄과 동시에 삶의 의지를 회복했다면 나희덕 시인의 땅 끝의 화자는 바다가 지나간 자리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고통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포용해가야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겨울바다의 화자는 바다를 통해 삶의 전체를 회고 했다면 「땅 끝」의 화자는 바다가 지나간 자리를 통해 고통스러운 순간 뒤에 숨은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이다.


두 시 모두 바다의 다른 이면을 통해 모두 삶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겨울 바다」에선 절망과 허무만이 자신의 삶의 전부였다고 생각한 화자가 허무의 바다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물줄기를 보게 되고 절망과 허무를 버틴 삶 속에는 그 시간만큼의 의지가 요동치고 있음을 확인한다. 오랜 고통의 세월이 만들어낸 바다의 외부는 황량하며 적막하다. 하지만 그 적막의 시간 동안 바다의 내부에선 깊은 수심의 물줄기가 요동치고 있었을 것이다. 화자는 바다의 이런 모습에서 고통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바다는 고된 삶에서 바라본 자신의 삶에 대한 자화상이 된다. 절망과 의지가 동시에 요동치는 바다의 모습은 허무하게 살아온 세월만큼 남은 날을 더욱 뜨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화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땅 끝」에선 어릴 적에 바라본 바다의 모습과 성인이 되어서 바다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어릴 적에 바라본 바다는 닿을 수 없는 이상이나 꿈에 가까웠다. 허나 성인이 되어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은 다르다. 바다는 매서운 파도를 통해 화자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곳이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는 말 그대로 육지의 끝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바다는 매서운 파도에 의해 침식의 과정이 반복되는 곳이다. 화자는 이 모습을 통해 막연한 이상만을 추구해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렸을 적 화자가 추구해온 이상은 멀리서 바라본 “땅 끝”과도 같이 막연한 것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는 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저 막연한 이상만을 보기 위해 힘차게 발을 굴리는 곳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화자의 이상은 이와는 다르다. 그것은 화자가 꿈꿔온 이상과는 달리 매일 같이 화자의 삶을 삼키며 침식 현실이었다. 바다의 침식은 육지를 깎음과 동시에 바다를 매일 새로운 형태로 바꾼다. 화자는 이 바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이상이 어릴 적 꿈꿔온 것처럼 막연한 것이 아닌 매일 침식 과정을 통해 변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화자는 “땅 끝”이 가져다주는 막연한 이상이 아닌 매일 변화되는 “땅 끝”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품어가게 된 것이다. 


바다에는 고통의 시간들이 담겨 있기에 더욱 우리의 삶을 떠오르게 하고 매일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기에 더욱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고통의 시간을 통해 매일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바다는 희망과 아픔을 담은 삶의 초상이다.




-마치며-

바다, 그중에 겨울 바다는 저에게 더 많은 감상을 전해줍니다. 때론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작게 만들지만,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삶을 살아갈 희망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물위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태양은 추운 겨울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과도 같으며, 그 의연한 모습에 괜스레 희망을 품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작은 바다에 영감이 가득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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