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도 꾸준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90년 대 듀오 가수는 여러 명이 있다.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두 보컬,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이루어진 전람회, 랩 댄스 특화된 이현도와 김성재의 조화로 이뤄진 듀스, 그러나 본고에서 다룰 패닉의 음악세계는 한마디의 말이나 표현으로 규정짓기 어렵다. 패닉의 음악은 전람회의 노래처럼 감미롭지만, 듀스의 랩 댄스만큼이나 파격적이고 강력한 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랩과 감성보컬의 흔치 않은 조화는 어느새 그들만의 개성이 되었다. 젊은 날의 방황을 그린 1집에서부터 사회를 향한 비판이 담긴 2집, 자신의 내면과 사회에 대해 다룬 3집, 감성과 낭만이 담긴 4집 까지 그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그들만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1집에서부터 4집까지 그들의 앨범은 각자 다른 주제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정규 앨범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 패닉의 음악적 변화는 대중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필자는 이 다채로운 음악에 큰 흥미를 느꼈고 이들의 실험이 한국 음악계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패닉의 음악세계와 변천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그 음악적 성취를 다시 정의하고자 한다.
부드러운 음색의 보컬 이적과 갱스터 랩에 특화된 거친 플로우를 지닌 김진표의 독특한 구성은 여태 한국 대중 가요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조합이다. 두 멤버의 구성은 그 당시 나왔던 다른 듀오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패닉의 음악은 전람회의 노래처럼 감미롭지만, 듀스의 랩 댄스만큼이나 파격적이고 강력한 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앨범엔 랩 댄스, 펑키 락, 감성 발라드 등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들의 1집에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와 같은 빠른 비트의 갱스터 랩이 있으며 <기다리다>와 같은 감미로운 발라드도 있다. 그들의 창작해온 음악처럼 그들을 어떤 장르의 가수라 쉽게 규정지을 수 없다. 때론 락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는 칼 같은 노래를 하며,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포근한 잠 같은 노래를 한다. 이런 그들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패닉의 노래에 끌렸던 것 역시, 한 장르로 구분 되지 않은 독창적인 음악성에 있었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적의 감미로운 보컬이 그들의 음악의 대부분을 이룬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패닉의 음악에서 직접적인 감정과 독백은 김진표의 랩으로 전달된다. 패닉의 음악은 단순한 락, 감성 발라드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이런 패닉의 시도는 그들의 1집 음악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왼손잡이>는 세상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도 된다는 소수자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집의 <UFO>는 자본주의에 무릎 꿇어야 했던 소시민들의 분노를 담고 있다. 이들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그 기반에는 이적의 보컬 중간 마다 삽입된 김진표의 랩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4집에 수록된 <정류장>과 3집에 수록된<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가 그 예시이다.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의 반주는 김진표의 랩으로 채워져 있고 4집에 수록된 <정류장>의 반주 역시 김진표의 랩이 감성을 자극한다. 삶을 사색하는 가사와 읊조리듯 들리는 김진표의 랩은 이 노래가 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는 느낌을 전한다. 이적의 보컬이 그들의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준다면, 김진표의 랩은 고조된 감정 안에서 독백과 고뇌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정류장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이적의 보컬을 통해 묘사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김진표의 랩을 통해 전해진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선 자신의 불안한 내면에 대한 독백이 김진표의 랩으로 전해진다. 이적의 보컬뿐만 아니라 김진표의 랩의 가사에도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나 어릴 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 버려 무릎 꿇어버린 바다, 옛날 너무나도 고운 모래 파다 이젠 모래 위에 깊은 상처 하나 행복하고 사랑했던 그대와 나 생각만으로 웃음 짓던 꿈도 많아 그런 모든 것들 저 큰 파도에 몸을 맡겨 어딘가 가더니 이젠 돌아오지 않아
<내 낡은 서랍 속 깉은 바다>
위의 짧은 랩 안에는 바다 안에 담긴 추억과 쓸쓸함에 대한 독백이 담겨 있다. 노래는 이 짧은 랩의 몇 구절을 통해 자신의 추억과 슬픔과 같은 다양한 감상을 전한다. “바다”,”파다”, “하나” 와 같이 비슷한 모음들을 활용해 라임을 맞추어 박자를 형성하면서 시적인 가사들을 통해 청자들을 노래 속으로 끌어들인다.
나밖에 몰랐었지 어리석게도,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기만 했어도, 모두 한 명씩 나를 떠나가고, 나는 세상과 계속 멀어지고,결국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언젠지 도 모르게 내게 다가온 그대
<정류장>
“석게도”, “했어도”, “나가고”, “어지고” 와같이 라임을 맞추며 전해지는 그의 랩은 형식적인 랩으로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면서도 가사는 마치 독백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빠르게 가사를 읊조리는 다른 랩들과 달리 가사를 곱씹을수록 더 공감이 되는 그의 랩은 가사와 형식에서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의 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공감이 되는 가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준다. 패닉의 노래는 감상적인 멜로디와 그에 대한 자신의 독백이 담긴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이적의 감성적인 보컬을 통해 대부분 패닉의 음악에 접하게 되지만 결국 패닉의 노래에 빠지게 되는 지점은 독백하듯이 읊조리는 김진표의 랩에 있다. 패닉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감성적인 보컬과 랩이 어우러져 청자들에게 여러 감상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정규앨범마다 패닉의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도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패닉을 가장 알렸던 곡은 1집에 수록된 <달팽이>와 <왼손잡이>이다. 원 타이틀곡은 펑키락 장르의 <아무도>이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감성 발라드<달팽이>와 파격적인 가사를 지닌 <왼손잡이>가 엄청난 흥행을 했다. 비록 타이틀곡으로 제시한 <아무도>가 흥행하는 덴 실패했지만 위의 두 곡을 통해 그들만의 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다. <달팽이>는 꿈에 대한 희망을 전해준 감성 발라드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왼손잡이>는 소수자들을 향한 응원과 세상을 향한 반항이 담긴 락 장르의 음악이다. 이들의 초창기 음악에서부터 패닉은 그들만의 특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1집에서부터 확인된 패닉의 음악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잔잔한 어조로 자신의 내면과 사랑을 표현한 곡과 거친 어조로 사회를 비판하는 곡으로 그들의 음악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예에는 <달팽이>, <기다리다>, <강>, <내 낡은 서랍 속 깊은 바다>,<정류장>,<미안해>,<종이 나비> 등이 있고 후자의 예에는 <왼손잡이>, <더>, <혀>, <벌레>, <UFO>, <Mama>, <오기> 등이 있다. 때론 이들은 몽롱한 의식을 표현한 <불면증>과 같은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선보인 바 있다.
이들의 반항의식이 가장 돋보였던 시기는 2집 <밑>을 발매하였을 때 이다. 2집이 발매 되었을 당시 사회비판적인 곡들이 다수 포함된 2집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폭력 교사에 대한 비판이 담기긴 <벌레>, 자극적인 언론에 대한 비판이 담긴 <혀> 등 그들의 비판은 당시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2집 앨범은 여러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이후 패닉의 곡에는 강력한 실험적인 시도들이 있었지만 2집에서 보여준 충격만큼의 시도는 없었다. 3집에서는 <미안해>, <희망의 마지막 조각>과 같이 감성적인 음악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이에 몇몇 대중들은 실망 했다.
2집에서 강력한 독창성과 공격성을 선보인 것과 다르게 이후 앨범에선 점차 감미로운 곡을 선보이는 모습에서 몇몇 대중들은 그들의 음악이 점차 변질되었고 예술가로서 독창성을 잃어간다고도 평가한다. 2집에서 보여준 그들의 패기와 독창성을 잃어버렸다고 평했던 이들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패닉은 그 시작부터 이 두 가지의 색깔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그룹이었다. 1집부터 이들은 실험적인 음악부터 감성적인 음악 모두를 창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2집을 통해 선보인 곡들이 너무나 실험성이 강하고 적나라한 가사들을 많이 담고 있기에 이후 나온 음악에 몇몇 대중들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집에서 드러난 공격적인 가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그들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변화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1집이 세상에 나왔던 1995년부터 마지막 앨범이 나오는 2005년까지 그들은 어떤 식으로 음악적 시도를 해왔을 까? 본고는 1집에서부터 4집까지 수록된 패닉의 음악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음악이 전개된 양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패닉의 모든 곡을 분석할 수는 없다. 본고의 목적은 패닉의 모든 음악을 분석하는 데 있지 않다. 시기별로 패닉의 대표작 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 정리하고, 그들의 음악적 실험의 가치를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랩과 감성 보컬의 조화, 그들의 음악적 시도는 분명 많은 공헌을 했다. 지금부터 작은 듀오 가수 패닉이 한국 대중 가요계라는 바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겠다.
1집 『panic』 젊음, 반항과 꿈에 대하여
패닉은 1집에서부터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 그리고 젊은 날의 꿈에 대한 노래를 하였다. 기성세대에 의해 맹목적으로 심어진 고정관념들을 향한 비웃음은 <다시 처음부터 다시>와 <왼손잡이>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통제되어 온 학생들의 분노를 랩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왼손잡이>는 세상이 만든 고정관념에 대한 반항이 담긴 곡이다.
조그만 애였을 때부터 하던 말씀 내가 뭐 하나라고 해보려고 하면 너는 이렇게 말했었지 그게 뭐야 그건 네게 어울리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 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왼손잡이>
패닉은 그 시작에서부터 매우 높은 저항 의식을 보였고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탈피를 지향해왔다. 이들이 저항 정신이 음악 속에 깃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는 당시 1990년대의 사회적 배경을 들 수 있다. 이 시대는 젊은 세대를 의미하는 x세대가 등장하면서 대중음악의 장르가 더욱 다양해졌다. 그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과 같이 기성세대를 향한 울분을 드러낸 노래나 <발해를 꿈꾸며>과 같이 사회의 문제를 풀어낸 곡들이 흥행을 했던 것으로 보아 대중가요가 점차 현실에 참여하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저항엔 X 세대의 등장에 따라 다양화된 대중음악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인한 세대 비판과 현실 참여 적인 음악의 확장이라는 발판이 있었음을 예측해볼 수 있다.
<왼손잡이>가 후에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지만 대중들이 초창기에 주목한 노래는 감성 발라드 <달팽이>이다. 몽환적인 멜로디와 일상을 표현한 가사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저항정신이 담긴 곡 외에도 이들의 앨범엔 <기다리다>와 같은 사랑노래와 <달팽이>와 같은 감성발라드 또한 있었고 이 두 노래는 엄청난 흥행을 했다. 이들의 1집은 그 당시 90년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때론 <왼손잡이>와 <다시 처음부터 다시>의 가사처럼 강한 독기를 품고 세상의 압력에 저항하고, 때론 <달팽이>의 가사처럼 원대한 꿈을 꾸기도 하고 때론 <기다리다>의 가사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며 다시 무너지는 젊은 날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의 앨범은 펑키 락, 힙합,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통해 모든 청춘의 한 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2집 『밑』, 사회의 불쾌한 냄새에 대하여
패닉의 2집은 그들의 반항 의식이 가장 많이 깃든 앨범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앨범이다. 학부모와 교사를 “너”라고 지칭하고 부모를 향한 강한 욕설을 담긴 가사로 인해 방송 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였고 신문의 사회면에 그들의 음악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2집에 적힌 가사들은 현재에 들어도 충격적이고 몇몇 멜로디는 불쾌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1집에서 <왼손잡이>와 <다시 처음부터 다시>에서만 반항 의식을 드러내었던 것 과 달리 2집은 수록된 곡 대부분이 이런 반항 의식을 보인다. 또 형식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보였다. 대표적인 형식 파괴는 <냄새>와 <불면증>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앨범의 인트로, <냄새>는 가사와 일정한 멜로디 없이, 피아노 선율, 내레이션 그리고 숨소리만으로 음악을 구성했다. 불쾌한 숨소리와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를 통해 청자에게 의도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불면증>은 불면증 환자의 의식을 가사와 멜로디로 표현하였다. 이 노래는 장차 12분이란 긴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절반은 보컬의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후렴구가 차지한다. 의도적인 음 이탈과 무의식을 표현한 듯한 장시간의 후렴구는 청자로 하여금 몽롱한 의식 세계를 체험하게 만든다. 또 펑크 락의 형식을 보여주지만 가사에서 기성세대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담아낸 곡들도 주목해 볼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비판의 대상은 썩어가는 사회의 일부분이다. 2집의 인트로에 담긴 <냄새>의 가사에서 그들이 비판하는 대상을 살펴보자.
“"이게 무슨 냄새야?" 뭔가 썩고 있는데 그게 뭔질 모르겠어, (중략) 뭔가 썩고 있는데 그게뭔질 모르겠어 세상 밑에 춤추는 이 냄새가 우릴 병들게 해”
<냄새>
앨범의 첫 인트로로 이 음악을 넣은 것에는 분명한 의도를 보여준다. 냄새를 맡는 코처럼 이들은 사회에 병들고 썩어가는 부분을 이 앨범을 통해 비판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런 비판이 들어간 곡으로 <UFO>,<혀>,<벌레>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 <UFO>는 대중가요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심오한 깊이와 첨예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어느날 밤 이상한 소리에 창을 열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달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그들이 돌아왔다.."고...
왜 모두 죽고나면 사라지는 걸까.
난 그게 너무 화가 났었어.
남몰래 그 누구를 몹시 미워 했었지.
왜 오직 힘들게만 살아온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끝에서
어딘가 끌려가듯 떠나는 걸까.
살찐 돼지들과 거짓 놀음 밑에
단지 무릎 꿇어야했던
피흘리며 떠난 잊혀져간 모두
다시 돌아와 이제 이 하늘을 가르리
(짓밟고 서있던 그들 거꾸러뜨리고 처음으로 겁에 질린 눈물 흘리게 하고
취한 두눈으로 서로서로서로의 목에 끝도 없는 밧줄을 엮게 만들었지..)
<UFO>
노래는 창문에 여러 개의 달들이 떠 있었다고 언급하는 김진표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화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그들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화자는 힘들게만 살아온 이들의 삶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끝나가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화자는 누군가의 거짓 놀음에 무릎 꿇고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의 삶이 우리 곁에 찾아와 밤하늘의 달빛처럼 이 하늘 가르기를 희망한다. 살찐 돼지들의 놀음 앞에서 무릎 꿇고 피 흘리며 죽고 잊힌 이들은 결국 비극적인 시대를 보내야했던 모든 민중들을 상징한다. 김진표의 내레이션에서 언급된 그들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압제와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던 민중, 군중, 노동자, 노예들을 의미한다. 이 노래는 희생된 이들의 삶이 어두운 밤하늘의 달빛과 같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노래의 제목이 달이 아닌 UFO라는 점에도 주목해 볼 만하다. 노래 속 화자는 달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노래의 제목은 이것을 UFO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제목에서도 패닉의 비판의식을 볼 수 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밝은 달을 반길 수 없는 살찐 돼지들에겐 그 달 역시 그냥 미확인 비행 물체로 밖에 보일 수 없는 것이다. 패닉은 이 제목을 통해 핍박 받아온 노동자와 약자들의 삶이 밝은 달로 비춰지기보단 아직까지 하늘 위에 떠 있는 미확인 비행 물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UFO>와 같이 은유적인 표현과 순화된 가사를 통해 사회를 비판한 노래도 있지만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현 사회의 문제를 비판한 음악도 있다. <혀>는 성적인 행위를 묘사를 하는 듯한 자극적인 가사로 당시에 논란이 되었다.
날 찾지마 (뭐?) 그 혀를 치워 (왜이래)
너의 비린내 나는 상한 혀가 역겨워
넌 그렇게 (하하) 날 핥다가(너 괜찮니?)
그 혓바닥 곧추세워 나를 찌르지
* 미끄럽게 내게 부끄럽게 내게 부드럽게 다가와(속삭거리다)
내 깊은 곳 핥아주기라도 할 듯 내 몸을 휘감다가(퍼덕거리다)
소리없이 나를 때도없이 나를 끝도 없이 쭉 빨아(너덜거리는)
껍질만 남을 때 혀끝으로 굴려 변기통에 뱉겠지
널 믿었어 (지금은 달라?) 맨 처음엔 (흠..)
너의 혀 미칠 듯한 느낌에 난 녹았어
이젠 알아 (도대체 뭘?) 난 깨났어(너 미쳤구나?)
낼름대는 젖은 혀의 독을 느꼈어
** (날 이해해줘) (나도 원치 않아) 너의 꾸민 눈동자가 두려워
(그게 혀라는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어, 2nd time 결국 너를 위한거야)
그렇다면 내가 먼저 단칼에 잘라버릴 거야
<혀>
<혀> 속의 화자는 혀가 부드럽게 자신에게 다가와 온몸을 감싸주지만 결국 자신을 온전히 빨아 삼킨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자신을 뱉어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부드럽고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혀는 우리를 자극하는 무언가이다. 그것은 당시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대중들을 속이고 각종 루머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언론을 상징한다. 화자는 그 언론의 혀에는 독이 있고 그 혀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찌르게 될 것이란 걸 말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벌레>를 통해 폭력 교사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mama>를 통해 자신을 구속하는 부모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였다. 이렇듯 패닉의 2집에는 <UFO>처럼 은유적인 가사들을 통해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희망을 전한 노래가 있는가하면 <혀>, <mama>, <벌레>처럼 자극적인 가사를 통해 사회를 비판한 노래들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대중들은 표현의 자유가 도를 넘었다고 비난하기도 하며, 패닉의 반골 의식이 극대화된 다시는 없을 앨범이라 재평가하기도 한다. 이 실험적인 시도는 분명 대중들에게 그들의 이름인 Panic(극심한 공포, 공황)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무엇보다 <달팽이>로 인해 감성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로 인상지어졌던 패닉이 다시금 그 나름대로의 개성을 드러낸 큰 의미를 지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수위를 넘어선 자극적인 창작이라는 비판에선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다시는 없을 실험적인 앨범으로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3집 『Sea within』, 내면의 바다에 대하여
2집 발매 이후 2년간의 공백 기간 동안 이들은 패닉이 아닌 각자 독자적인 음악을 하며 그들만의 음악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적은 김동률과 카니발을 결성해 음원을 내었고 김진표는 독집 앨범, 열외를 발표하게 된다. 그렇게 2년간 공백기를 끝내고 『Sea within』이라는 3집을 발표하게 된다. 3집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청춘의 복합적인 모습을 드러낸 1집,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거칠게 짚어낸 2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3집은 자신의 추억과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1집과 2집에서 보여준 반항 의식은 줄어들었지만 가사의 서정성과 음악적 완성도는 한층 더 높아졌다. 1집은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를 2집은 기성세대를 향한 반항을 그리고 3집은 추억과 일상 그리고 내면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중들은 과거 반골 의식의 상징이었던 패닉이 점차, 감성적인 음악만을 만드는 뮤지션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패닉의 퇴화, 변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월이 가면 한 사람의 내면이 성장하듯 그들의 음악도 한층 성장하고 있었다. 1집의 <달팽이>와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 바다> 속 가사의 변화 양상을 통해 이들이 내면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노래 모두 한 없이 작은 존재가 먼 바다를 꿈꾸며 내면의 세계를 돌아본다는 비슷한 소재를 지녔지만 가사 면에서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 바다>가 더욱 발전된 양상을 보여준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이젠 모두 푸른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내게 남아 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줄 바다를 건널거야
<달팽이>
<달팽이>는 삶에 지친 화자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을 열자마자 잠들고 깨어나면 아무도 있지 않다. 화자는 자신을 위로해줄 이들이 아무도 없는 고독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고독한 상황에서 화자에게 달팽이 한 마리가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낸다. 노래 속의 달팽이의 말은 실제 달팽이가 하는 말이 아닌 화자 자신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 달팽이는 머나먼 바다를 건널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꿈을 화자에게 말한다. 마치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 속에 나비의 모습처럼 이 달팽이의 꿈은 너무나 허황되고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게 당연하다. 이 노래는 이런 불가능한 꿈을 꾸는 작은 달팽이를 통해, 거대한 세상의 파도 앞에 무너지는 작은 존재라도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달팽이> 속의 바다는 화자가 꿈꾸는 공간이자, 자신을 치유해줄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화자는 직접 바다를 마주하거나 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치유해줄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을 희망한다.
패닉은 1집의 <달팽이>에서 바다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했지만 그 바다를 직접적으로 그려 내진 못했다. <달팽이>에서 보여준 바다는 알 수 없는 꿈과 같은 곳일 뿐 정확히 바다가 화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주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그들은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 바다>에서 <달팽이>에서 언급한 바다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바다 속에는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 회오리치네
그 바다 위에선 불어 닥치는 세상의 추위 나를 얼게 해
때로 홀로 울기도 지칠 때 두 눈 감고 짐짓 잠이 들면
나의 바다 그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다 나를 바라보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의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
나 어릴 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버려 무릎 꿇어버린 바다
옛날 너무나도 고운 모래 파다 이젠 모래위에 깊은 상처 하나
행복하고 사랑했던 그대와 나 생각만으로 웃음 짓던 꿈도 많아
그런 모든 것들 저 큰 파도에 몸을 맡겨 어딘가 가더니 이젠 돌아오지 않아
바다 앞에 내 자신이 너무 작아 흐르는 눈물 두 손 주먹 쥐고 닦아
많은 꿈을 꾸었는데 이젠 차마 날 보기가 두려워서 그냥 참아
그때 내가 바라보던 그 드라마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아
나의 낡은 서랍속의 깊은 바다 이젠 두 눈 감고 다시 한 번 닫아
때로 홀로 울기도 지칠 때 두 눈 감고 짐짓 잠이 들면
나의 바다 그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다 나를 바라보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의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분가
RAP)
나 어릴 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버려 무릎 꿇어버린 바다
옛날 너무나도 고운 모래 파다 이젠 모래위에 깊은 상처 하나
행복하고 사랑했던 그대와 나 생각만으로 웃음 짓던 꿈도 많아
그런 모든 것들 저 큰 파도에 몸을 맡겨 어딘가 가더니 이젠 돌아오지 않아
바다 앞에 내 자신이 너무 작아 흐르는 눈물 두 손 주먹 쥐고 닦아
많은 꿈을 꾸었는데 이젠 차마 날 보기가 두려워서 그냥 참아
그때 내가 바라보던 그 드라마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아
나의 낡은 서랍속의 깊은 바다 이젠 두 눈 감고 다시 한 번 닫아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속 바다는 <달팽이>에서 언급한 바다와 같이 막연한 꿈과 희망의 공간이 아니다. 그 바다는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이 회오리치는 곳이기도 하며 세상의 추위가 화자를 얼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 고요한 바다 속에서 폐허밖에 남지 않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바다는 결국 <달팽이>에서 말한 꿈과 희망의 공간이 아닌 고통과 슬픔이 서려 있는 곳이며,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들이 쌓여 있는 곳이다. 화자는 바다에서 폐허로밖에 남지 않는 추억들도 버릴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화자는 이젠 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파도를 타고 옛 추억들은 떠나갔지만 떠난 그 자리에는 다시 새로운 날들이 자신의 내면의 바다를 완성시켜 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노래 속 바다는 나희덕의 시 <땅 끝>의 바다와 유사하다. 시 속의 화자는 어린 시절 아름다움이 가득한 땅 끝을 동경하며 바다로 나아갔지만 나이가 들어 그 곳은 바다가 육지를 집어 삼키며 자신을 몰아세우는 곳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젖어 있는 그 땅 끝을 통해 젖은 곳에 깃든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바다의 침식 과정은 땅 끝을 바꿔가는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화자는 그곳에서 삶의 끝에도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노래 속의 화자도 어린 시절 바다와 지금의 바다가 다른 것을 깨닫고 절망하지만 이내 다시 희망을 찾게 된다. “나 어릴 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 무릎 꿇어버린 바다 옛날 너무나도 고운 모래 파다 이젠 모래 위에 깊은 상처 하나” 어린 시절 끝도 없는 바다를 달려가지만 결국 그 바다의 크기에 가로 막혀 무릎을 꿇게 되고 어린 시절엔 고운 모래가 좋아 바다에 가지만 이젠 모래 위에 상처만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화자는 그곳에서 다시 희망을 찾게 된다. “난 이리 어리석은 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의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그렇게 자라나면서 한 없이 작아지고 좌절한 시간들이 결국엔 자신의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었고 화자는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성장해왔다는 걸 깨닫는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는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젊은 날에 보내는 찬사 이자 위로이다.
그저 꿈에 대한 희망과 위로만을 전했던 1집의 <달팽이>와 달리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는 젊은 날의 이루지 못했던 꿈과 지나간 추억들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젊은 날의 꿈과 너무 나도 다른 현실에 대한 슬픔은 <태엽장치 돌고래>와 <희망의 마지막 조각>의 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가끔 어린 시절 생각나요 태엽장치 돌고래 헤엄치던
작은 대야에 띄워주면 그저 멤을 돌며 물장굴 쳤었죠
그때 난 생각없이 웃기만 했죠
태엽이 풀리면 가라앉는 힘없는 돌고래 내가 될 줄은 상상 못했죠
오 나 이제 눈물이 흘러요 그 속에 매일같이 멤돌아요
풀어진 태엽 누군가 감아주면 하루가 되풀이 되겠죠
때론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태평양을 누비는 꿈을 꾸죠
그 순간만은 온 세상이 내것 같아요
영원할순 없나요. . . . 이대로 멈추길 빌죠. . . .
정말 나는 그 바다는 잊혀져 버린지 오래죠
잠자는 장난감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죠
정말로 생각도 못해 이곳에 이렇게
나만이 남겨졌네 하지만 이제 난 포기해
내 꿈들 산산히 깨져 내 두눈엔 눈물만 맺혀
나 지쳐 걸어도 내가 서있는 곳 언제가 같죠
너무도 힘이 빠져 눈 앞이 희미해져
지금은 아무리 꿈꿔 봤자 이젠 이미 늦어 접기
<태엽 장치 돌고래>
<태엽 장치의 돌고래>는 어린 날의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 말하는 곡이다. 화자는 어린 시절 작은 대야에 띄워서 놀던 태엽장치 돌고래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화자는 이 장난감 돌고래를 보고 웃기만 하였지만 현재의 화자는 이 장난감과 자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화자는 누군가가 감아주는 태엽에 의해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만 태엽이 풀리는 순간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고 다른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장난감의 모습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화자는 젊은 날에 꾸었던 바다를 향한 꿈이 영원할 수 없으며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손길에 의지하게 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현실에 슬픔을 느끼게 된다. 이런 패닉의 정서는 <희망의 마지막 조각>에서도 이어진다.
해질 무렵 여우비가 오는 날
식탁 위의 작은 접시엔
메말라버려 파리가 앉은 희망의 조각
눈 비비고 취한듯이 다가가
창문 밖에 던지려다가
높은 빌딩 숲 끝에 매달려 이 노랠 불러
왜 난 여기에 왜 난 어디에
작은 몸을 기대 쉴 곳 하나 없을까
꿈은 외롭고 맘은 붐비고
내 피 속엔 무지개가 흐르나봐
달아나고파 날아가고파
이제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고파
내 몸 안아 줄 저 허공의 끝엔
또 하나의 삶이 기다릴 것 같아
(중략)
이렇게 살아오며 여지껏 하루 가도 안오면 까짓거
내일 오면 그땐 오겠지 생각하며 편안히 침대에 누워 꿈을 꿔
꿈 꿨던 모든 것 빠짐없이 지워 정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다 미워
이젠 이런 생각만 하고 지내는 내가 정말 내가 너무나 싫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난 후에 나는 무슨 일 있어도 절대로 후회
안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지금 나의 모습 너무나 추해
이제 나는 정말 어떡해? 모두 다 정말 모두 너무해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닌데 아무 기대 없이 그냥 허무해. .
< 희망의 마지막 조각>
화자는 식탁 위의 접시에 담긴 작은 희망의 조각을 보게 된다. 이젠 메말라버려 파리가 내려앉은 이것은 화자의 어릴 적 꿈과 희망이라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며 화자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에게 있는 꿈과 희망을 하나 씩 버리게 되었고 이젠 그의 앞에 작은 꿈의 조각 하나만이 남겨져 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희망의 조각을 창문 밖으로 던지려는 순간 화자는 잠시 멈춰 노래를 부르게 된다. 화자는 자신의 몸속엔 무지개와 같은 꿈이 흐르지만 이것을 풀어낼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이후 화자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소리치게 된다. <희망의 마지막 조각>은 나이가 들며 점차 꿈과 희망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한탄이다. 이렇듯 패닉의 음악은 점차 현실에 가로막혀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말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패닉은 더 이상 사회를 향한 반항과 젊은 날의 꿈을 노래하는 가수가 아닌 지나간 추억과 자신의 내면에 대해 노래하는 가수가 된 것이다.
4집 『PANIC 04』, 그들이 전해준 희망과 감사
2집 이후부터 독자적인 예술 활동을 해오던 이적과 김진표는 3집 이후로 7년간 각자의 음악을 하게 된다. 2005년 기나긴 공백기를 거쳐 다시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1집과 2집에 수록된 노래의 가사에서 드러난 젊은 날의 꿈과 반항 의식은 4집에서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한 앨범 안에 발라드, 힙합, 메탈 등 다양한 장르를 수록한 그들만의 색깔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4집에서는 <눈 녹듯>, <종이 나비>, <정류장>, <추방>과 같은 서사를 갖춘 발라드 장르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렇다 해도 <나선 계단>과 <뭐라고?> 같은 강렬한 비트의 헤비메탈 또한 선보여 그들의 반골 기질이 죽지 않았음을 드러내었다.
4집의 음악들은 대개 삶의 희망과 감사한 마음을 청자에게 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설 『돈키호테』를 기반으로 창작된 <로시난테>와 일상을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 <정류장>이 있다. 이 두 곡은 4집에서 가장 많은 흥행을 함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곡이다. 이 두 곡은 그동안 사회에 대한 반항을 보여준 패닉의 음악이 점차 일상과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시난테>는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당나귀 로시난테의 이름에서 따와 제목을 지었다. 이 곡은 소설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통해 불가능한 꿈을 향해 나가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전 노래 <달팽이>와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그 꿈을 노래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달팽이>는 삶에 지친 화자가 바다를 건너겠다는 달팽이의 모습을 통해 다시 희망을 갖게 되는 서사를 보여주지만, <로시난테>는 자신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뤄질 수 없는 꿈을 향해 달려 나가겠다는 돈키호테를 통해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죽는 순간까지 꿈을 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곡이라는 점에서 지친 일상에 대한 위로를 전하는 <달팽이>와는 다르다. <로시난테> 속 화자의 꿈은 그에게 위로만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를 지쳐 쓰러지게 하고 언젠가 그를 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가 감동을 전해준다.
난 바람을 맞서고 싶었지
늙고 병든 너와 단 둘이서
떠나간 친구를 그리며 무덤을 지키던
네 앙상한 등위에서
가자 가자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 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라- 휘날리는 갈기 날개가 되도록
라- 모두 사라지고 발굽소리만 남도록
낡은 창과 방패 굶주린 로시난테
내겐 이 모든 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
절대 포기하면 안 돼 모든 걸 할 수 있는 바로 난데
이제 와 너와 나 그만 멈춘다면 낭패
하늘은 더없이 파래 울리자 승리의 팡파레
누구도 꺼릴 것 없이 이글거리는 저 뜨거운 태양 그 아래
uh 너와 나 함께 힘을 합해
지금이 저기 저 넓은 벌판 향해 힘껏 달려나갈 차례
가자 지쳐 쓰러져도
가자 나를 가로막는데도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 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라- 휘날리는 갈기 날개가 되도록
라- 모두 사라지고 발굽소리만 남도록
라- 내가 걸친 갑옷 녹슬어도
세월의 흔적 속에 내가 늙고 병들어 버려도
라- 나의 꿈을 향해 먼 항해 나는 떠나가네
성난 풍파 헤치는 나는 기사라네
라- 끝없이 펼쳐진 들판 지나
풍차를 넘고 양떼를 지나
라- 낡은 방패 부서진대도 나의 무뎌진 창끝에
아무도 겁먹지 않는대도
<로시난테>
“휘날리는 갈기 날개가 되도록 라- 모두 사라지고 발굽소리만 남도록” 휘날리는 갈기가 날개가 된다는 표현은 결국 화자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달리다가 지친 화자는 결국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간다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모두 사라지고 말발굽 소리만 남는다는 표현은 그의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잊히고 그의 모험담만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라는 걸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말발굽 소리는 세상에 전해지는 그의 모험담이라 볼 수 있다. 그의 흔적은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지만 세상에 그 모험담은 소설과 소문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는 화자의 의지는 청자에게 큰 감동을 전해준다. 패닉은 불가능한 꿈을 향해 죽기 전까지 달려간 돈키호테의 모습을 통해 삶의 끝에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일상을 함께 해준 누군가를 향한 감사가 담긴 <정류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류장>은 일반 사랑 노래와 달리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 쉽게 규정할 수 없다. 이 곡은 후회로만 가득 찬 화자가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위로를 받는 간단한 서사를 지닌 채, 그 누군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는다. 이 누군가가 애인을 말하고 있는지 가족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순 없다. 그러나 그저 애인에 대한 감사한 마음만을 드러낸 곡이라고 보기엔 이 곡의 가사는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이 가사는 단순히 남녀 간에 사랑에도 접목시켜 볼 수 있고 부모님이나 고마운 친구에게 접목시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가사는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감정을 담아내기보단 일상을 함께 해준 누군가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에 가깝다.
해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창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 어쩌지도 못한 채
난 그저 멍할 뿐이었지
난 왜 이리 바본지 어리석은지
모진 세상이란 걸 아직 모르는지
터지는 울음 입술 물어 삼키며
내려야지 일어설 때
저 멀리 가까워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결국 난 혼자라고 누구든 그렇다고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손 잡아주던 그댈 잊어버린 채
생각하면 그댄 나와 함께였는데
고집을 부리고 다 필요 없다고
나 혼자 모든 것들을 감당하려 했었지만 나
그댈 마주쳤을 때 눈물이 흐를 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네
낙엽이 뒹굴고 있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까치발 들고 내 얼굴 찾아 헤매는
내가 사준 옷을 또 입고 온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나밖에 몰랐었지 어리석게도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기만 했어도
모두 한 명씩 나를 떠나가고
나는 세상과 계속 멀어지고
결국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언젠지 도 모르게 내게 다가온 그대
세월이 모든 걸 변하게 해도
그대 손을 놓지 않는다고
<정류장>
해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 창가에 앉은 화자는 멍하게 서서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세상을 너무도 몰랐던 자신에 대한 한탄과 슬픔을 참아가며 버스에서 내리려 할 때 화자는 자신을 기다려주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 없고 자신만을 찾는 그 누군가를 보며 화자는 다시 위로를 받고 그 사람이 존재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세상과 멀어지고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화자는 세상 모든 사람이 혼자 듯 자신도 혼자라고 말했지만 그 누군가를 통해 이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닌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정류장>은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렇게 패닉은 극적인 사랑이야기나, 고조된 감정을 전하기보단 일상을 함께 해준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진심을 전하는 곡을 만들었다.
패닉의 음악이 점차 감성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반항 의식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일부는 패닉의 이런 모습을 보며 퇴화했다,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했다고 평한다. 하지만 패닉이 감성적인 음악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퇴화를 했거나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것으로 단순히 폄하할 순 없다. 패닉은 그 주제와 방향은 다르지 앨범마다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 메시지가 2집과 같이 사회비판적인 방향으로 향하기도 하였고 3집과 4집처럼 삶과 일상의 방향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1집에선 젊은 날의 불완전한 반항과 막연한 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고 2집에선 자신과 세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의 불편한 냄새로 향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3집에서 그들은 내면과 일상을 향해 메시지를 전한다. 자신 마음속의 깊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젊은 날의 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4집에 와서 그들은 대중들에게 감사와 희망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게 된다.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순간을 포착해내고, 잊고 살아온 소중한 것들을 말해주게 된다. 그들의 4개의 앨범에서 전했던 주제와 메시지는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음악은 모두 우리 주변을 향해 있었다. 다소 과장된 이별 노래나 사랑이야기를 그린 노래들과 달리 그들의 음악은 사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어줬다. <달팽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태엽장치 돌고래>, <마지막 희망의 조각>과 같은 노래들은 모두 감성을 자아낼 뿐 아니라 삶에 대해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2집의 <UFO>, <혀>, <냄새>와 같은 노래들은 우리를 둘러싼 주변 사회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패닉의 앨범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사회를 향한 비판이 담겨있다. 각 앨범이 갖고 있는 주제는 달랐지만 모두 자신의 삶과 주변 사회에 대한 그들만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각 앨범의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그들이 전하는 주제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앨범이 퇴화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날의 꿈과 반항에서 시작해 내면의 세계와 일상의 소중함으로 패닉의 음악은 그렇게 변화되고 청자들과 함께 성장했다. 2006년 4집 활동을 끝으로 패닉의 활동이 중단 되었다. 지금은 1집에서 보인 젊은 반항아의 이적과 김진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의 삶의 일부분을 노래하는 중년의 이적과 김진표를 만나볼 수 있다.
패닉의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지금 이적과 김진표는 개인 활동으로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김진표는 힙합 계에서 다양한 명곡을 내었고 이적은 <다행이다>와 같은 감성적인 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가요계의 거대한 파도를 거치며 이들의 음악은 많은 성장과 변화를 거쳤고 후에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불리기도 하였다. 투 개월의 <달팽이>, 종현의 <왼손잡이>, 버스커 버스커의 <정류장>, 박정현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등 이들은 그들만의 음악을 하면서도 다른 음악인들 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보여준 기성세대를 향한 반항은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패닉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 역시 긍정적이지 만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패닉의 음악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용되고 불리며,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많은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음악의 가사가 오늘날의 세대에도 큰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와도 같이 일상에 지친 자신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곡도 일상적인 삶의 부분을 다루고 있고 <정류장>과도 같이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는 곡 또한 일상과 삶 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것들에서 소재를 찾는다. <왼손잡이>와 같이 반골의식을 보여주는 곡도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왼손잡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낸다. 간단한 소재이지만 그 것이 전하는 감성과 주제는 깊고 심오하다.
패닉은 일상과 사회를 노래하는 가수였다. 사랑과 이별을 주로 다루는 가수들과는 달리 살면서 한번 즈음 느껴봤을 감정들을 가사로 적고 적절한 멜로디와 함께 곡을 만들어 내었다. 패닉의 음악이 현재에도 꾸준히 불리는 이유는 공감이 가는 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면증>,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와 같이 다소 난해했던 일부 곡들과 달리 그들의 히트곡들은 대부분 공감이 가는 가사로 이뤄져 있다. <왼손잡이>, <달팽이>, <눈 녹듯>, <정류장> 과 같은 노래들의 가사는 모두 일상적인 소재와 한번 즈음 느껴봤을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 패닉의 반골의식이 담겨있는 곡이 현재까지 불릴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왼손잡이>가 만약 왼손잡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하지 않고 사회를 향한 직설적인 반항만을 표현했다면 그렇게 까지 흥행하진 못했을 것이다.
패닉은 자신들만의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사회를 다루고 있었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삶의 이야기를 그렸다. 태엽장치 장난감 돌고래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이야기하고 낡은 서랍 속을 통해 추억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이 가사를 통해 보여준 삶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있기에 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 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이적이 작곡가 겸 가수로 인정을 받고 김진표가 랩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음악이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패닉이 한국 대중가요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공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댄스곡과 후크송이 가요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에서 이들의 음악은 공감과 반항을 통해 그 자리를 지켰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쳤다. 머지않아 패닉의 음악이 다시 세상에 울리길 희망하며 본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