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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04. 2023

헤어질 결심을 보고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사랑은 자신을 붕괴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애인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일정을 조정하고, 애인을 위해 자금을 털어 선물을 사준다. 즉 사랑이란 내가 가진 시간과 돈 혹은 노력의 일부를 떼어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다. 혹자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따위 것이든 얼마든 지 줄 수 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과해지거나, 지속될 경우 결국 사랑은 지치고 변질된다.


해준의 사랑은 서래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살인 사건을 취조 하기위해 서래의 삶을 바라본 그는 그녀의 삶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녀의 곁에서 잡복근무를 이어가며, 편안함을 느끼고, 평소와는 달리 수면도 제대로 취하게 된다. 죽은 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봐야만 했던,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했던 그에게 살만한 이유가 생겼다.


수사는 마치 사랑과도 같아서, 한 사람을 관찰해야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미지의 사건은 마치 헤어진 연인처럼 머리에 영원히 각인된다. 위에서 죽은 사람을 내려다보는 앙각의 구도엔 죽은 사람이 지닌 원망, 죽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해준의 시선을 상징한다. 바로 눈앞에서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함, 그것이 해준을 속박해온 것이다. 서래는 그의 수사를 방해한 이였으나 동시에 미결난 사건의 무기력함을 잊게 만들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가 서래에게 빠진 이유에는  그녀의 외모, 행동양식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살인 사건 앞에서도 눅은 사람보다 산 사람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일정을 이어가는 서래는 그에게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눈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이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전혀다른 이에 대한 호기심은 관찰로 이어지고 관찰은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식후 담배를 피는 서래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고 이 연민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서래를 만난후로 유능한 경찰로서의 해준의 삶은 붕괴된다. 그녀를 위해 사건을 종결시키고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경찰으로서의 책임감마저 져버린다. 해준은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유능한 경찰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이 붕괴된 것을 안 것은 서래가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해준의 사랑이 끝나자.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다.


“내 삶은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해준의 말에 서래는 붕괴가 무슨 뜻인지 찾아 본다.  붕괴: 부서지고 무너짐, 이때 서래는 해준이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면서 까지 자신을 사랑해왔음을 깨달았다. 서래는 이후에도 해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불렀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예전과 같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와 진하게 키스를 나눈 이후에도 그는 자신을 의심했고, 피의자와 경찰의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더이상 그의 곁에 머물수 없던 그녀는 그의 마음 속에 미지의 사건으로 영원히 남고자 헤어질 결심을 한다. 서래는 해준이 예전에 말해줬던 방식으로 바다에 자신을 버리게 된다. 서래로 인해 삶이 붕괴된 해준은 바닷가에서 서래를 찾는다. 그의 삶에 있어 서래는 영원히 미지의 사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수 있다는 연인간의 서약은 영원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했던 누군가라고 하더라도 내가 연인으로 부터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깨닫게 된다면, 배신감이 들 뿐이다. 사랑은 한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움과 동시에 붕괴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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