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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09. 2023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미래의 자화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왜 이 SF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단편적인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단편의 기억들이 삶의 순간을 구성하고 우리의 미래를 이뤄 간다. 김초원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7개의 각기 다른 미래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경험해 본 것과도 같은 기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있다. 이타 매체 안의 기술들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왔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속 시간 여행 자동차, 영화 로봇 캅 속의 로봇 경찰 등과 같이 미래의 기술은 인간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단초가 되었다. 이 소설은 그 기술 이면에 의해 잊히고 소외되는 것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익숙하지 않는 첨단 기술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문제는 여전히 논의 되고 개선해야 할 오늘날의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진정 꿈꾸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기술의 발전은 정말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가져다 줄 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기술의 발전을 이룩해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면, 여성, 장애인, 비혼 모들을 향한 차별을 극복해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미래 인 것인가? 소설이 예리하게 가로 지르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 부분이다. 3g에 이어 lte까지 또 그것을 넘어 5g까지 세상은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고 그에 따라 미래는 우리의 곁으로 점점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차별, 차이 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오늘날의 것만은 아니다. 그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다뤄질 것이며,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발전 된 미래를 다룬 SF는 더 이상 영화 속 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마주할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조금 더 현실 적이고 더 가까운 미래를 체험해 봐야한다. 김초엽의 소설이 이처럼 극광을 받고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야할 가장 직접적인 사회의 문제들을 섬세한 감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현재와 동 떨어진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이 소설의 독자들은 몇몇 일화에서 큰 공감을 받았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렇게 크나큰 공감을 일으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소설이 우리가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데이터화 시키는 기술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포기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웜 홀을 통한 우주 항해를 다루면서도 차별과 멸시를 극복해온 동양인 여성 우주인을 다루며, 우주 정거장과 워프를 다루면서도 우주 정거장에 홀로 남겨진 노인의 그리움에 중심을 맞춘다. 김초엽의 소설은 미래를 향한 낭만 보단 미래 속에서 살아가는 어디선가 존재할 법한 인물을 다룬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나, 사이보그로 재탄생한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보다 더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소설이 미래를 통해 현실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겉 포장지는 미래에 대한 묘사로 그려졌지만 그 안은 현실의 것들로 가득 채워진 이 소설은 SF를 처음 읽는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이 처럼 이 소설은 미래를 꿈꿔 본 이들에게 더 구체적인 상상도를 전해 줌과 동시에 오늘날의 현실을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그럼 이 소설에 담긴 7개의 일화를 확인해보며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시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 소설은 여러 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풀어가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각 이야기 마다 시간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주제를 통해 하나의 줄기로 묶인다. 한 명의 주연을 내세워 시간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는 여타 소설과 달리, 이 소설은 주제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공생 가설]의 경우, 어렸을 적 자신만이 생각하는 행성을 그렸던 류드밀라 라는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소녀가 그렸던 행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며 소설의 시점은 서울시 광진구의 뇌 해석 연구소에서 일하는 수빈과 한나로 이동한다. 이 둘은 인간의 뉴런 활성화 패턴을 통해 신생아의 뇌에서 외계 생명체 간의 교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인물들의 성격이 어떤지 논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제시하고 그 것의 원인을 밝혀내는 하나의 해설로 진행되는 소설의 구조는 마치 소설보다 현실에 존재해왔던 연구보고서를 읽는 듯 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이런 구조는 등장인물들의 회상을 통해서도 들어난다. [스펙트럼]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진행을 위해 택한 것은 노인의 회상이다. [스펙트럼]에선 외계인과 최초로 교신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증거와 정황이 없어 정신질환으로 취급되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선 슬렌포니아로 향하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 정거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을 과거를 통한 회상으로 잊힌 이들을 조명하고 다시금 그들의 사연 속으로 독자들을 주목 시킨다.


[공생 가설], [스펙트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모두, 인류가 우주로 한발 짝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 단편들이다. 이 단편들은 외계의 존재들과의 조우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와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 지를 묻고 있다. [공생 가설]에선 외계의 존재들이 신생아의 의식 속에 잠시 잠재되어 왔다는 가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과 외계의 존재 간의 차이는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을 통해 이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외계 존재와의 직접적인 조우는 [스펙트럼]에서 본격적으로 들어난다. 우주에 홀로 남겨진 희진이 외계 종족과의 만남을 통해 루이를 알게 되고, 그의 그림과 그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갖지만 결국 그와 교감하고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공생 가설], [스펙트럼] 두 단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외계의 존재와 인간 간의 의사소통이다. [스펙트럼]의 희진은 루이의 삶과 그가 하는 행위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와 10년을 동거하게 되며, 그의 삶과 그가 그리는 그림의 의미를 차츰 깨닫게 된다. [공생 가설]에서 류드 밀라가 그렸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고 또 그곳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외계의 존재를 내세워 결국 소통과 교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류드밀라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 믿으면서도 거기에 공감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타자와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우리 안에 깊게 자리 잡은 편견 때문에 공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희진의 입장에서 색을 바라볼 수 없었던 루이의 그림이 다른 스펙트럼을 통해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는 타자와 다른 스펙트럼을 가지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10년의 기간 동안 루이와 세월을 보내게 된 희진은 루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그의 그림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오랜 시간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희진이 긴 시간을 걸쳐 외계의 존재인 루이와의 교감을 성공하지만 지구에서 바라본 희진의 모습은 정신이상자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가 정상성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공감하고 교감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위의 두 단편은 나와 다른 타자와의 교감이 긴 시간이 걸려도 쉽게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타자와 공감과 교감에 필요한 긴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설은 어떤 식으로 답을 정해줄 까?


이에 대한 소설의 답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서 들어나 있다. 안나는 인체를 냉동 수면하는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그녀는 자식과 남편을 제 3행성 슬렌포니아로 떠나보낸 후 가족들에게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기술은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항해하는 워프 기술로 대체 되었다. 또 그보다 신 능률 적인 웜 홀 통로가 밝혀지자, 우주 연방은 안나가 있는 정거장을 폐쇄시켜야 한다고 통보를 하게 된다. 딥프리징 기술부터 웜 홀 통로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발전은 언제나 효율과 빠른 속도를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은 빛의 속도로 이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도 그러지 못하는 것에 집중한다. 슬렌포니아로 향하고자 100년을 넘게 홀로 우주 정거장을 지켜온 안나와 같이 발전되는 기술이면에는 잊히고 남겨지는 것들이 있다. 그 100년의 기약 없는 기다림과 망각 속에서 안나를 움직였던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자신의 생명 까지 연장해 가면서 까지 도달하지 못할 곳을 기다려왔던 이유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그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간의 연결, 그 접점을 줄이고자 더 빠른 기술을 대체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폐기한다. 안나의 기나긴 시간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은 먼 공간에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연결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빛의 속도로 누군가에게 향하든 몇 광년에 걸쳐 누군가에게 향하든 간에 서로 간의 접점을 만들 기 위한 그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스펙트럼]과 [공생가설]을 통해서는 긴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미지의 존재와의 공감과 교감을 말해주었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그 기나긴 시간과 속도에도 인간은 결국 자신과 연결 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 빠른 소통을 원하는 현재 시대에서 세 단편이 전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타자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며, 더 빠른 소통이 가능해지고 있는 시대에서 왜 아직도 그리움과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소설은 아무리 빠른 빛의 속도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시대가 온다 해도 외로움과 그리움 이라는 단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누군가와의 연결을 원하고 공감과 소통을 원하는 건 우리가 가진 본능이기 때문이다. 초 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도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자신만의 연결점을 찾아가고 있다. 더 빠른 연결과 소통이 가능한 세상에서 왜 아직도 타자와 의 소통에 긴 시간이 필요하며 타자와의 거리가 존재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빠른 속도와 연결이 사람간의 공감과 소통의 벽마저 허물 수 있는 지를 묻고 있다.


소설 속에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단편은 [관내 분실]이다. 실제로 대중들의 평가를 살펴봤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단편은 바로 [관내 분실]이다. 이 단편에 대해 독자들은 많은 공감을 하였다는 것을 봤을 때 소설에서 이 단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진실을 찾아가는 서사 구조이다. 이런 서사 구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이 [관내 분실]이다. 이 단편 속에선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데이터로 이식하여 수집하는 도서관이 나온다. 망자들과의 소통이 가능하기에 이 도서 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된다. 죽음을 뛰어 넘는 소통이라는 설정은 등장인물로 하여금 잊힌 것들과 마주하게 만든다. 이 단편 속의 미래 기술은 독자들을 발전 된 미래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기 보단 마주하기 힘든 현실적인 이야기로 이끈다. 그 누구도 차마 마주하기 힘든 분실된 이야기, 말하는 것이 불편해서 잊어버린 듯 숨겨졌던 진실들을 향해 소설은 향한다. 주인공 지민은 자신의 어머니의 영혼이 담긴 마인드의 인덱스가 분실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해 그녀에 대한 원망을 키워 오던 지민은 분실 된 어머니의 진실을 알아 가기 시작한다. 지민의 어머니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도중 임신으로 인해 일을 중단하면서 산후 우울증에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단편 속의 분실의 의미는 어머니의 분실된 데이터를 의미함과 동시에 임신 이후 세상으로부터 분실된 삶을 살아왔던 여성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민의 어머니는 마인드는 인덱스가 지워지기 이전에도 이미 세상에서 분실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어머니의 분실된 삶은 지민의 이해를 통해 다시 연결 되고 있다. 다시 어머니와 같이 임산부의 삶을 살아가야할 지민은 어머니와의 연결을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임산부 지민을 통해 어머니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사는 분실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들에게 이해와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이 이야기가 이토록 큰 감정을 불러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미진과 어머니의 만남이 여전히 망자와의 대화에 머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분실된 어머니의 데이터는 찾아올 수 있지만 이전부터 쭉 분실되어 왔던 어머니의 삶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어머니와 미진의 교감이 이뤄지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리지만 결국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소설은 미진과 어머니의 교감을 통해 위로를 전해주지만 현실적으로 분실되어온 어머니의 삶은 돌아오지 않음을 말해준다. 미래의 발전된 기술로도 분실된 그들의 삶을 돌려줄 수 없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두개의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통해 인간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정상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회가 바라는 정상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은 이 소설의 첫 단편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들어난다. 어려서부터 얼굴에 큰 흉터를 가지고 있는 릴리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 아름답고 완전한 인간들만이 존재하는 곳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신체를 개조한다. 그렇게 그녀가 만든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신체를 가진 이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지만 이내 그곳은 개조 인과 비 개조인 사이의 위계질서에 의한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다. 과학 기술은 사회가 정한 정상에 가깝게 우리의 모습을 바꿔 줄 것이고 우리는 사회가 바라는 정상에 가까워진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분명 그 세상은 겉보기엔 이상적이고 유토피아로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시선은 다르다. 사회가 정한 정상에 맞추어 사는 곳이 정말 모두가 차별 받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유토피아 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과 다른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무의식적으로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소설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이 과연 오늘날의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지를 묻고 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도 타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 혼모 여성의 몸으로 인류 최초로 웜 홀을 통과할 기회를 갖게 된 재경은 사회로 부터 다양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백인 남성들 사이에선 그녀를 자격 미달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 이런 차별을 딛고 웜 홀을 가게 될 향후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비 혼모의 몸으로 우주 탐사를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는 기대의 시선이다. 소수자라는 명분 아래 과도한 기대와 걱정을 받은 재경은 결국 우주 탐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가윤은 그녀의 선택을 통해 해방을 느낀다.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과도한 기대와 걱정을 한 몸에 받았던 그녀는 자신 스스로 심해에 떠내려가는 것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외친다. 재경에 이어 다시 비 혼모의 몸으로 우주 탐사를 떠났던 가윤은 그녀가 버텨 왔던 모든 시선과 기대 그리고 걱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재경이 이전에 했던 처럼 그 시선에서 해방될 수 없다. 그녀는 재경과 달리 우주탐사를 성공 적으로 마치게 되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해방감이 아니다. 웜 홀을 통과해 또 다른 우주로 갔지만 사실 상 그곳은 이전의 봐왔던 우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온갖 차별적 시선을 견뎌가며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거봐 거기 가도 별 반다를 거 없어” 라는 대사를 통해 그 허망함과 적막감을 보여준다. 이 단편은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오며 노력해온 누군가에게 이해와 존중을 전해주고 있다. 또 동시에 그 무언가를 이뤘다 해도 사회의 시선과 편견은 변하지 않는 다는 잔인한 현실마저도 전해주고 있다.



3.왜 이 작품을 선정하였는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 은 2018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평단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았던 책이다. 또 작가 김초엽은 2017년에 관내 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으로 제 2회 한국 과학 문학상 중 단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또 이후에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도 2위를 차지하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소설의 단순함에 있다. 이 소설을 읽어 가다 보면 소설이 주는 밋밋한 문체에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 배경을 묘사함에 있어 어떠한 수사적인 표현마저도 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단순함은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장 호 불호를 갈리게 할 부분인데, 실제 평을 읽어보면 불호는 거의 없다. 사실상 소설에서 들어나는 표현력, 연출력으로 점수를 준다면 이 소설이 받을 평가는 좋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풍부한 문장 표현과 배경 설명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김초엽의 소설은 문체의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읽게 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각 단편 마다 각기 다르게 전해지는 감정의 결이다. 각 단편들은 저마다의 주제를 갖고 나아갈 곳을 향해 이야기를 비틀기도 하며,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기도 하고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비틀어지며 인물들도 바뀌고 시점도 바뀌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감정은 바뀌지 않는다. 우주 정거장에서 홀로 남겨진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다 과거의 시간대로 이야기는 흐르지만 여전히 그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 이라는 감정을 유지한다. 류드밀라의 삶을 다루고 난 뒤 곧바로 서울 시 광진구의 연구원들의 이야기로 넘어가지만 인간의 뇌와 기억을 공유하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의문을 유지한다. 이 소설은 가장 섬세한 표현들로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위를 묘사하기 보단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소설의 문체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큰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소설이 감정을 기반으로 둔 서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던 단편은 [관내 분실]이었다. 평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도 [관내 분실] 속 어머니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또 이 소설을 평가하고 읽어왔던 부류는 20대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를 통해 실제로 20 대 여성들이 [관내 분실] 속의 어머니의 삶에 공감을 하며 큰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실이라는 소재를 단순히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잃어버린 어머니의 삶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어머니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공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공감할 만한 소재를 바탕으로 미래의 풍경을 담아낸 작가의 섬세한 감각이 현대인들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었다.

이제 다른 독자들의 평이 아닌 필자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 소설을 선택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에는 가독성에 있었다. 이 소설의 문체나 표현 방식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몇 가지 과학 기술과 이론 들이 나오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만 안다면 쉽게 내용을 알 수 있다. 사실 SF장르의 콘텐츠를 소설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이나 영화와 같은 콘텐츠들은 사용자에게 미래의 기술들을 시각적으로 묘사해서 설명해줄 수 있으나, 소설은 모든 걸 글로 말해주어야 한다. 그 이유 때문에 필자는 영화와 달리 SF소설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초엽의 소설만큼 읽기 쉬운 SF소설은 처음 접해보았다. 편안한 문체와 독자들의 감정에 기반을 두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매우 놀라웠으며 이 소설이 전해주는 감정에 큰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SF소설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큰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만큼 이 소설에 대해 언급을 하고 싶었다.


4. 이 소설에 대한 개인 적인 감상

문득 10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영화에서 나온 것과 같이 발전 된 기술이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이고 인간의 일을 기계가 대신할 세상이 올 거라는 상상은 이미 많은 매체 속 이야기를 통해 접한 바가 있다. 이런 상상 들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고 그것에 대한 낭만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살아가는 각 개인의 모습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대부분 극적인 이야기들이 다뤄지며, 사소한 일상보단, 큰 갈등 들이 담겨있을 뿐이다. 극적인 갈등이나 서사 없이 사소한 개인의 삶과 일상을 담은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 까? 김초엽의 소설은 바로 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자극적인 표현과 감정의 큰 표출 없이 누군가의 삶을 묘사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와 더 공감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SF영화들과 달리 특별한 갈등과 극적인 묘사가 없어 너무 심심한 소설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유는 그동안 내가 극적인 갈등이 해결되면서 막을 내리는 소설이나 영화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기록들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 소설의 구성은 아직은 필자에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익숙하지 않은 구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갈등 요소를 집어넣고 좀 더 극적으로 소설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왜 사건을 늘여 놓듯이 말하는 진행을 선택하였을 까? 심지어 이야기 중 몇 개는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말을 보고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김초엽 작가는 도서관 안에서 책이 분실되면 찾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관내 분실]의 이야기를 구성하였다고 한다. 또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독일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즉 작가가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현실의 일상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분실된 어머니의 삶에 대해 다루고 홀로 남겨진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현실 세계의 사건과 일상은 절대 소설 속의 이야기로 끝맺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현실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그 과제들은 온전히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소설은 오늘 날 우리가 해결해야할 너무나 많은 과제들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 정상에 대한 사회의 집착, 소통과 공감의 문제들, 이 소설을 읽고 자연스레 이런 문제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최근에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보여주고 문제를 제시한 소설이었다. 그러기에 현재까지도 소설의 문제의식이 기억에 남는다. 근래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읽기 편하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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