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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23. 2023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다 지나가리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머지 가족들에게 모두 얘기했다. 그동안 매일 계속되는 사건 사고 속에 반 아이들 몇몇이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기에 가족들은 아무 말도 안했다. 내일부터 특별 휴가라고 했더니, 딸들은 재차 묻는다. 

  "엄마 진짜 내일부터 학교 안가?" 

  "응, 5일간 쉬기로 했어." 

  "그럼 그 다음은?" 

  "글쎄...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아침이면 늘 내가 먼저 출근하던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계속 집에 있는 엄마가 신경 쓰였던지, "엄마 오늘 진짜 학교 쉬는 거야?" 재차 묻는다. 안간다고 답변하면서 책임감이 없는 엄마로 비춰지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끄러웠다.


   혼자 남았다.


  시계를 봤다. 우리반 아이들이 제법 교실에 모였겠구나..... 생각했다. 

  '늘 교실에 있던 선생님이 없어 궁금해하겠지? 1교시 시작할 때 다른 선생님이 들어와서 당황했겠지? 내가 없으니 그나마 잘 하고 있겠지? 반항할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조금은 잠잠하겠지? 쉬는 시간인데 잘 있겠지? 점심 시간인데 밥은 잘 먹었겠지? 집에 갈 시간인데 하교했겠지?'

  오전 내내 시계만 쳐다보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 TV를 틀어놓고 그 소리에 잠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잠시 잊고 답답한 게 조금 풀렸다. 점심 시간에 볼일 보러 나갔던 친정 엄마가 꼭 들어 오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아무 말 없이 점심 같이 먹자고 하셨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밥 잘 챙겨먹어야 한다며 상 차리는 엄마한테 고맙고 미안했다.


  다행히 다음 날은 주말,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여러 일정들로 주말은 바빴다. 마음이 무겁고 표정도 어두웠지만, 외출도 하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면서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월요일, 아이들이 학교에 올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나오지 않는 상황, 아마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거라 짐작되지만 월요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단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수업을 방해하는 몇 몇 아이들로 인해 온전히 피해봤던 아이들이, 내가 안 나감으로 인해도 또 다시 피해를 받고 있단 생각에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이미 신고는 했고, 특별 휴가 중이고....내가 선택할 다른 길은 없었다. 

  '교권 침해 신고한 걸 취소할까? 그럼 신고한 나는 뭐가 되지? 날 더 무시하려나? 태준이는 뭘 잘못했는지 영영 모르겠지? 다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취소하는 게 맞을까? 아니!!! 태준이를 위해서도,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도 신고 하는 게 맞아. 신고하고 교육하는 게 맞아. ' 다시 생각이 정리됐다.


  이렇게 정리되기까지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의 조언과 격려가 컸다.

'태준이를 굳이 신고를 했어야 했을까? 내가 혹시 아이의 인생을 망친 건 아닌가? 이 일로 아이가 더 삐뚤어지는 건 아닌가? 혹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다른 아이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서 그렇지 않아도 자존감없는 아이가 더 자존감이 낮아지는 건 아닐까? 내가 신고를 좀 더 미루고 내 나름대로 더 교육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교산데, 이 아이에게 못할 짓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나를 짖눌렀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단호하게 말씀해주셨다. 

  '분명히 교권 침해 맞고, 그냥 지도해서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신고하는 게 맞다, 신고했다고 해서 그 아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 그 아이를 처벌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교육한다고 생각해라, 생각을 바꿔라! 우리가 교권 보호 위원회를 여는 목적 또한 그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생각을 바꾸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정신과 진료도 몇 차례 보고, 복무로 인해 학교와 여러 차례 통화도 하면서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새벽에 자다가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고, 생전 안 꾸던 악몽을 꾸기도 하면서 처방해준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잠도 좀 편안하게 자고, 시도때도 없이 두근거리던 심장도 잠잠해졌다.


  금요일 오후, 학년 부장님이 우리반 알림장에 다음 주 주간학습 안내를 올리며 '담임 선생님의 병가가 길어질 것 같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동안 아무 안내가 없었던 것에 대한 답답함이 풀리면서도 나의 위치가 안에서 밖으로 밀려났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우리반 학부모 4명이 교무실로 찾아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우리반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며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을 위해 학교 측에서 어떠한 조치라도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하셨다.


  하루하루 답답하고 불안했지만 시간은 흘러 교권보호위원회도 열어 조치가 나오고, 심리검사도 진행하고 담임 교체도 진행되고 있다.


  다 지나가겠지... 이렇게 힘든 시간들도 지나가겠지.... 이 때를 추억하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두근두근 심장 소리를 억누르며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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