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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23. 2023

결국, 선택은 나의 몫

바닥으로 떨어지는 교사의 자리

  방학 내내 고민을 했다. 2학기 때 출근을 해야하나 병가를 내야하나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교육청에서 지원해주는 교사 마음 치료 사업(?)을 신청해 집 근처 상담 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한 학기동안 겪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내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담사는 일반 아동들과 다르게 대해야 한다면서 대응 방식에 대해 설명을 곁들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방학 중에 급성 담낭염으로 병원 진료를 갔다가 '담낭 제거 수술'을 진행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의 통증으로 수술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망설여 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수술하면 병가를 낼 수 있으니 공식적으로 학교를 쉴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하며 내심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2학기 개학을 며칠 앞두고, 초음파 상으로 담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의사선생님이 우선 지켜보자고 하셨다. 실망 반, 감사 반이었다. 사실, 출근하기로 결정되면서 아이들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출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학년 선생님들은 다소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괜찮겠냐고.... 괜찮다고 했다. 난 정말 괜찮았다. 다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실패한 것만 같아 오기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변했다고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한 달 사이 서이초 사건으로 인해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아이들도 감지했다. 힘들게 하던 몇 몇 아이들이 앞으로 교권 침해 안할 거라면서 잘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진짜 다짐이라기 보단 장난 섞인 표현이었다. 달라질 수 있겠단 기대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욕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시민이의 활약이 대단했다. 가위 두개를 양 손에 들고 위협하듯이 갖고 놀았다. 가위 바구니는 내 자리 쪽으로 옮겨두었기에 바구니에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몇 번 지시했지만 듣지 않았다. 결국, 난 또 강하게 이야기 했고 시민이는 폭발했다. 가위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복도로 나오라고 했다. 한참을 실랑이했다. 소리도 지르고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도 했다. 교실로 돌아가 가위를 제자리에 갖다두라고 했더니 집어 던지듯이 갖다 두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힘든 것보다 예고없이 터지는 폭탄같아서 참 힘들었다.  


  그러다가 태준이가 등장했다. 원래도 힘든 아이였지만, 2학기 들어 나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시민이에 가려져서 많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아이다. 

  

  개학하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친한 친구 영빈이 짝궁이 결석했다. 빈 자리에 와서 앉고 싶어했다. 수학 시간에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기도 할 겸 조용히 해야한다는 다짐을 받고 앉게 했다. 내 자리 바로 앞이었다. 하지만, 수업 중에 자꾸 떠들었다. 몇 번 주의를 주었다. 결국 6교시 음악 시간, 난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다시 제자리로 가라고 했다. 싫다고 했다. 난 다시 "제자리로 가!"라고 했고, 그 순간 "왜 화내고 지랄이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자기도 놀랬는지, "아니에요. 제 자리로 갈께요. "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갔다. 


  몇 주 뒤,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1층에서 노는 무리의 친구들이 안 올라왔다. 다른 아이들 수업 준비를 모두 해 놓고, 1층으로 가서 "쉬는 시간 끝났어. 얼른 올라 와!" 소리쳤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 끝난지 몰랐다면서 우르르 올라왔다. 그런데, 유독 태준이만 "동생하고 인사하고 있었는데 왜 화내?" 화내듯이 툴툴거리는 걸 봤다. "김태준!" 아이의 이름을 불러 세웠다. 날 한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복도로 나오라고 했다. 여러 번 이름을 부른 뒤에야 나오더니 그 때부터 실랑이가 시작됐다. 문을 쾅쾅 발로 차면서 등 돌리고 서서 절대 내 앞에 오질 않았다. 도저히 복도에서 지도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담실로 데리고 올라갔다. 상담실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다. 다 같이 늦었는데 왜 자기한테만 화내냐고 했다. 올라오면서 너만 툴툴 거리지 않았냐, 그리고 선생님이 이름 불렀는데도 그냥 교실로 들어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씨발', '선생이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눈 앞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내 얘기를 아예 안 들었다. 그 이후엔 상담 선생님이 태준이를 데려다가 지도하고 점심 시간에 내려보냈다. 


  점심 식사 후 5교시는 칼림바 강사 수업 시간이었는데, 태준이가 교실에 안 들어오고 복도에 앉아 있었다. 들어와서 수업에 참여하라고 했더니 의자에 앉아 발을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조용하게 수업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용히 발을 내리라고 했다. 싫다고 버텼다. 몇 번 실랑이 하다가 다시 데리고 상담실로 올라갔다. 감정이 너무 올라와 있어 더이상 지도가 어렵겠다는 생각에 상담 선생님께 맡기고 내려 왔다. 도가 지나친 행동과 말투로 어떻게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며칠 잠잠 하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비오던 날이라 점심 시간에 함께 놀던 아이들이 비를 맞고 놀았다. 옷이 젖어서 5교시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도 화장실에서 계속 옷을 말리고 있었다. 수업 준비해 놓고, 화장실로 찾으러 갔다. 그만 말리고 교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잠시 뒤, 아이들이 들어 와 이미 시작된 수업 분위기를 흐리기 시작했다. 자꾸 떠들고 웃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수학 한 단원을 잘 공부했는지 알아보는 문제를 풀어보고, 수행평가를 한 후 바로 아이들이 하교해야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바빴다. 

  "태준이 조용히 해!" 했더니,

   "왜 저한테만 그래요? 시민이도 떠드는데요?" 하길래 한번 더, 

   "조용히 해!" 하니까 날 쳐다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욕을 했다. 

  "너 방금 누구한테 한거니?" 

  "시민이한테 했는데요." 정황상 나한테 한게 뻔하지만 더이상 소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이때 브레이크를 걸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창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한번 더 참자'는 마음으로 넘어갔던 게 잘못이었다.


  교과서 문제 풀고 난 후, 수행 평가지를 나눠주었다. 문제를 풀면서 잉크펜으로 장난을 쳐서 태준이 짝궁 책상에 잉크가 많이 묻어 있었다. 평가가 시작되었는데도 짝궁과 태준이는 같이 물티슈로 닦는다고 소란스럽게 했다. 아이들이 모두 집중해서 시험지를 풀고 있는 상황이라 조용히 하라고 했다. 어느 정도 닦은 후에 짝궁은 문제를 풀기 시작했지만, 태준이는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듯 하더니 짝궁 시험지를 슬쩍 보는 것이었다. 

  "태준아! 너 내가 다 봤어. 컨닝하면 노력 요함이야!"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 진짜 제가 풀게요."라고 말하면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사이 반대쪽 편 책상에 앉은 학생이 "선생님, 태준이가 컨닝해요."하길래 "컨닝했어? 노력 요함이야."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말에 태준이가 화를 내며 "컨닝 안했다고요!" 큰 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조용히 해." 다른 아이들이 모두 조용히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 있는데 큰 소리를 내길래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문제 푸는 걸 멈추더니 연필로 시험지를 구멍 뚫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시험지를 찢어 바닥에 버렸다.


  그 사이 평가 시간이 끝났고 아이들에게 평가지 제출 후, 가방 싸서 하교 준비 하라고 했다.


  모두 가방 메고 인사하려고 하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 길래 봤더니 태준이 책상과 의자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발로 차서 쓰러뜨린 것이었다. "똑바로 세워 놔!" 했더니, "싫은데! 명령하지 마!" 하는 것이었다. "똑바로 세워!" 했더니 "개새끼" 하는 것이었다. 순간 심장이 벌렁 벌렁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충 아이들이 인사하고 모두 간 뒤, 둘만 남았다. 책상이랑 의자 똑바로 세우고, 욕한 거 사과하면 이대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창가로 가서 계속 딴짓만 하며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씨발, 지가 뭔데"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해대며 창문을 보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교무부장님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정리 후, 아이를 보내 놓고 엄마와 통화했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있는 데서 교사에게 '개새끼'라고 욕하고 결국 내 지시에 따르지 않았던 상황들이 계속 생각나면서 앞으로 더이상 '지도'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또 그냥 넘어가고, 내일 아무렇지 않고 출근해서 또다시 수업을 시작한다면 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주변의 아이들은? '그렇게 해도 아무 일이 안 생기는구나. 별 거 없구나. 그렇게 해도 되나 보다. 나도 짜증나는데 한번 대들어 봐?' 아이들의 생각의 흐름들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순간, 내일 아이들 앞에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권위도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이 상황에 교실에서 나의 입지는 어느 정도일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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