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야겠다
중간에 추석 연휴가 있었지만, 2주가 넘는 기간동안 매일 돌아가면서 한 시간씩 다른 반 선생님들이 수업해 주시면서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불안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나도 상처받았지만, 아이들도 상처받았을 거라 생각하며 회복적 생활 교육을 하시는 선생님이 3시간 동안 우리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시기로 하셨다. 담임도 없는 교실에서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다. 수업 전에 통화를 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이셨지만 너무 따뜻한 목소리와 나를 위로해주시려고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쏟아 놓았다. 내가 느낀 학급의 상태와 문제점도 물으셨고, 어떻게 변화되길 원하는지도 물으셨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학생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듣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죄책감과 미안함이에요. 제가 잘 못해서 이 지경까지 이른 것 같아 자꾸 자책을 하며 죄책감이 생기고, 아이들을 남겨 두고 왔다는 생각에 너무 미안해요. 저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에게도 잘 지도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몇 몇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사실 너무 예쁘고 고마운 것도 많은데 그 아이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미안해요."
말하는 중간 중간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이 말을 마치는데 한참 걸렸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이 제안을 하셨다.
"선생님의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때요? 형식적으로 말고, 속상하고 화난 마음, 미안한 마음, 고마웠던 마음까지 모두 담아 쭉 써보세요. 글로 써보면 선생님의 감정도 정리가 되면서 힘든 마음도 조금 회복될거예요. 수업하면서 선생님의 지금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달해 드릴께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교실을 떠나온 게 내내 마음에 걸렸던터라 나 대신 선생님을 통해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에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처음엔 편지 내용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할지 막막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다 풀어내라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태준이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부터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고대로 담아 A4 두장 짜리 편지를 썼다.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더니, '이번 일로 선생님과 아이들, 공동체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을 믿고 마음을 잘 돌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수업 당일, 우리반 아이들과 3시간의 회복적 생활 교육을 마치고 아이들이 나에게 쓴 편지를 사진 찍어 보내며 연락을 주셨다.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어떤 수업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셨는지 궁금한 마음에 한번 뵙기를 요청했다.
일주일 후,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교장 선생님도 함께 그 자리에 나오셨다. 오전 10시에 만나 잠시 차 한잔 마시며 한 시간 정도 이야기 나눌거라 생각했었는데, 2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처음엔 각자의 일상적인 이야기와 내가 이 일을 겪으며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앙적인 이야기도 했고...... 점심 식사 후 교장 선생님은 가시고 둘만 남았을 때 지난 주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3시간 수업 중에 앞 두 시간동안 아이들이 어찌나 방해를 하고 수업에 집중을 안하는지 선생님이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준비해 간 것들도 제대로 못하고 지켜보시던 교장 선생님도 화가 많이 나셔서 두 시간 끝나고 나가셨거든요." 라고 운을 떼셨다.
"처음엔 선생님도, 선생님을 힘들게 했던 학생들도,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꺼내놓고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지만, 그 누구도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우리는 금쪽이에요.', '그래서 우리 선생님도 도망 갔잖아요.' 비아냥거리는 말과 훼방놓는 행동으로 준비해간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두 시간의 수업 시간이 끝나고, 한 시간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짧은 영상을 하나 보여줬어요. 한 아이가 애쓰고 노력하는데 주변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내용의 짧막한 영상이었어요. '여기서 누가 가장 힘들었겠냐'고 질문을 했어요. 여러 답변이 나왔고, 그럼 우리 교실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겠냐고 물었더니 한 아이가 조그마한 소리로 "선생님"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 내가 교실 안에서 참 힘들겠다고 생각해 준 아이가 있었다는게 너무 위로가 되었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 얼마나 선생님이 힘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서히 아이들이 대화 속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참 힘들었겠다고, 선생님께 너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져왔다는 얘기를 꺼내셨다고 한다. 아이들은 들려달라고 했고, 편지 내용에 대해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선생님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을 약속한 뒤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5학년 5반 친구들에게' 첫 머리를 읽는데 선생님이 먼저 눈물이 나, 안경을 벗고 이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고, 아이들이 편지를 들으며 한 명, 두 명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편지를 다 읽었을 땐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울면서 자신들이 잘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미안함을 전했다고 했다.
아이들 몇 명이 일주일 쯤 후에는 내가 돌아올 줄 알고 박카스와 비타민, 커피 등을 담아 편지와 함께 준비해두었는데, 오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선생님께 전달을 부탁했다며 예쁜 선물 상자 하나를 내미셨다. 10명 남짓의 아이들이 쓴 편지 속에는 '선생님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너무 보고 싶다'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의 수업 말미에 전체 아이들이 썼던 짧막한 편지 안에도 '너무 죄송하다, 다음에 만나면 꼭 반갑게 인사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에게 갖고 있던 미안함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예전과 달리 '다시 돌아가야할까?' 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이제 정말 아이들을 내 안에서 떠나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정해져 그 선생님과 다시 시작할 때여서 내가 더 잘 정리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수업 이야기 후에 나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아이들의 마음도 받았으니 더이상 죄책감 갖지 말고...... 계속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 상대에게 준 감정이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다 잊고 자유해지라고 하셨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지금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앙적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내가 가장 빚진 마음이었던 동학년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하며 이제 진짜 다 잊고 회복하려고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하나씩 보내고 단톡방과 메신저 채팅방을 나왔다. 이제 진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이런 만남을 통해 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