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라기 Oct 24. 2023

내가 학급 운영을 실패한 이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일 거야.

  올해로 교직 경력 20년이 되었다. 중간에 육아휴직을 하기도 했지만, 꽤 긴 시간 학교에서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발령받은 지 만 20년이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실패'를 경험했다. 그동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부득부득 우기고 외면했었다. 실패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실패자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젠 내가 겪은 실패와 마주하기로 했다. 고통스럽더라도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목표 달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수업의 목표가 있으면 무조건 거길 향해 달려간다. 사실 옆도 , 뒤도 잘 돌아보지 않는다. 집중력도 좋다.

학급에서 수업할 때도 그랬다. 그래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참질 못했다. 아이들을 돌아보고 상태가 어떤지, 마음은 어떤지 돌아보질 못했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갔던 것 같다. 그게 화근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회복적 생활 교육을 해주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초등의 교실을 잘 알고, 우리 반을 직접 경험해 보신 분인 데다 신앙적 가치관이 맞아서 나를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신 분이다.

  '초등에서 수업 진도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 소통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수업 중 문제가 발생하면, 하던 것을 중단하고 그것을 소재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하셨다.


  수업을 방해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학생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처음에 따로 불러내서 얘기하기도 하고 남겨서 얘기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 사이 방치되는 아이들이 신경 쓰여 조용히 하라고 계속 지적했다. 어느 순간, 이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걸 느꼈지만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지 않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완전히 지쳐있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력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하셨다.

  "아이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적받으면 상처를 많이 받아요. 그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 상처가 무뎌지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받은 상처가 밖으로 향하는데, 그게 공격적인 행동이 될 수 있고, 수업 방해 행동이 될 수 있어요. 지적도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칭찬도 그 아이만 알도록 하는 게 좋아요. 칭찬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 그것도 중요해요."


  10가지 잘못하고 한 가지 잘해놓곤 칭찬해 달라고, 왜 칭찬 안 해주냐고 보채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난 공개적으로 지적하지 않기 위해 교실 밖에서 지도했지만 그것 역시 낙인이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칭찬할 기회도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나중에 그저 힘들고 지쳐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렸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처음엔 그동안 해 왔던 대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이름 불러가며 아침 맞이 인사도 하고 틈틈이 대화도 했었다. 한 여학생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이틀인가 삼일 째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그동안 제가 만났던 선생님들 중에서 제 이름을 가장 빨리 외우신 분이에요. 사실 제가 존재감이 별로 없어서  한참 지날 때까지 제 이름을 잘 모르시거든요."


  하지만, 학기 초부터 시작된 몇몇 학생들의 도를 넘은 수업 방해 행동과 욕하는 습관으로 수업은 엉망이 되었고,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학생들은 온전히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복해서 지적받는 아이들도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나머지 아이들도 수업을 하고 싶건 안 하고 싶건 수업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만들어지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수업 방해하는 아이들이 너무 싫어서, 피해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나 역시 점점 거리를 뒀던 것 같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상처받지 않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발생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둑이 있는데 한쪽에 물이 새요. 어떻게 해야 하죠?"

  "새는 곳을 막아야죠."

  "맞아요. 새는 곳만 막으면 돼요. 전체를 다 공사할 필요 없어요. 학급도 마찬가지예요. 전체를 다 챙기려고 하지 말고 힘든 아이들 몇 명만 잘 관리하면 돼요. 나머지는 놔둬도 잘해요."

  "그런데요, 제 입장에선 25명이지만, 아이 입장에선 어떤 아이든 선생님 한 명만 보고, 그 선생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늘 한 명 한 명 다 챙기려고 했어요. 결과적으론 이렇게 됐지만요."


물론 둑의 새는 부분만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존재감 없이 4년을 지내 온 아이들에게 다가갔을 때 너무 어색해하면서도 좋아했던 경험이 날 혼란스럽게 했다.


조금 샐 때, 초장에 바로 막아야 한다는 말씀은 지당하다. 학기 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잡지 못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기 때문이다.


  덧붙여하신 말씀은,

  "수업을 망치는 게 낫지.  아이들과의 관계를 망치지 마세요. 절대 아이들의 적이 되지 마세요. 내 편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세요. 잘못한  아이를 남겨서 야단치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도와달라는 그 말에 아이는 학급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생겼다고 생각할 거예요. "


  여러 학급 운영 서적을 읽어보면, 학급 내에서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할을 맡는 순간, 책임감과 소속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역할'을 만들어 일 년 내내 하도록 했다. 역할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정하고 선택하는 것까지 모두 아이들 스스로 했었다. 나 역시 소속감과 책임감을 기르기 위해 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저 귀찮아하고 대충대충 하려는 모습에 실망하곤 했었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적했거나 혼을 냈다면 집에 가기 전에 반드시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날 너무 화를 많이 냈다면 하교 인사하기 전 솔직하게 '오늘 선생님이 너무 화 많이 냈지? 미안해. 너무 수업 열심히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네. 용서해 줄 사람, 하트!'"  

이런 식으로 반드시 감정을 풀고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이 얘기도 참 많이 듣던 거였는데 언젠가 이렇게 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엔가 다 잊고 있었다. 잊어버리게 된 이유, 아이들과 거리를 두게 된 이유, 끝까지 관리하지 않았던 이유는 '소진'이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상처받으며 다 소진될 때까지 몰랐다. 지금은 쉬길 잘했다는 생각도 한다.


오늘 묵상한 잠언 말씀 중, 8장 14절 말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counsel and sound judgment are mine.'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counsel과 sound judgment'였다. 한글성경에는 계략과 참지식이라고 나와있지만, 조언(상담)과 건전한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언이나 상담을 하는 능력도,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다.


난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하나님께 있는 counsel과 sound judgment를 제게 주옵소서! 그리하여 또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게 하여 주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위로, 그리고 회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