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책좀 읽어보자'는 마음에 책 추천하는 '네이버 밴드'에 가입했다. 올라오는 책제목만 눈팅하다가 요즘 책 읽는 열심에 빠져 올라는 책에 대한 설명도 읽어가며 관심 가는 책들을 찾곤 했다. 독서에 진심인 분들이 참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다고,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책들만 주구장창 읽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만, 깊이 있고 폭넓은 독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난 몇 장 못 넘기고 포기할 것 같은 꽤 어려운 철학 책들도 감명깊게 읽었다는 분들의 소감을 읽으며 도전받기도 하고, 12월쯤 되서는 올해 읽은 책이 100권을 넘어섰다는 분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어제는 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올리신 분이 있길래, 문득 책장에 꽂혀'만' 있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 시집이 생각났다. 한참을 책장 앞에 서성이며 찾았다. 누가 사서 꽂아둔 건지, 어딘가에서 얻어 온 책더미에 딸려 온 건지, 누군가 선물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책장의 책들에 관심 갖고 제목을 훑어보는 버릇이 생긴 덕에 찾아낸 책이었다.
몇 년 전에 이사 오면서 짐정리 한다는 핑계로 20년 이상 지난 책들은 버리고 와서 책장을 많이 줄였는데도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른 채 도서관을 전전하고 있는 것 같아살펴보기 시작했다.이쯤되면 내가 책을 사는 사람은 아니라고 짐작할 것이다.남편이 책을 좋아해서 관심 가는 책들을 종종 구입한다. 한번씩 책 택배가 오면주문했나 보다, 생각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내가 산 책이 아니다 보니 잘 기억하지 못하고 중복해서 사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요즘 책장을 훑으며 읽고 싶은 책들을 한쪽에 따로 모아두기도 했는데, 시집은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가장 어려웠던 게 시였다. 단어 몇개 안에 무슨 심오한 뜻이 그렇게도 많은지 열심히 필기하고 외우던 기억밖에 안 났다. 성인이 되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300쪽짜리 소설이 낫지, 시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의미를 알려주면 시에서 말하고 싶은 게 이거구나, 역으로 이해했지만 혼자 읽는 시는 어렵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내려놓곤 했었다.
그래도 '류시화'는 워낙 유명한 시인이라 호기심에 책을 찾아내 집어 들었다.
읽다 보니 류시화 시인이 쓴 시가 아니라 류시화 시인이 좋은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거였다. 나중에서야 류시화 '엮음'이란 글씨가 보였다.구멍이 많은 사람인 걸 들킨 것 같아 혼자 부끄러웠다.
책장을 넘겨 첫 번째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슴이 뭉클했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지난번에 '좋은 글은 관찰-성찰-통찰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나만의 개똥철학을 주제로 글 쓴 적이 있는데, 통찰의 극치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슬픔의 돌'이라는 시는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슬픔의 돌
'슬픔은 주머니 속에 깊이 넣어 둔 뾰족한 돌멩이와 같다.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당신은 이따금 그것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자신이 원치 않을 때라도.
때로 그것이 너무 무거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 때는
가까운 친구에게 잠시 맡기기도 할 시간이 지날수록 주머니에서
그 돌멩이를 꺼내는 것이 더 쉬워지리라.
전처럼 무겁지도 않으리라.
이제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돌멩이를 꺼내 보고 놀라게 되리라.
그것이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손길과 눈물로
그 모서리가 둥글어졌을 테니까.
(작자 미상)
정말 그랬다. 너무 아프고 불쑥불쑥 찔러대서 참 힘들었는데, 많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가 더해져 어느새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지난 몇 달간 경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손길과 눈물로 그 모서리가 둥글어졌다'는 표현에 깊이 공감하며 마음에 일렁이는 감동을 느꼈다.
이어지는 시 한 편, 한 편을 통해 절절히 느껴지는 삶에 대한 통찰력이 나를 매료시켰다. 내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무엇이 나를 바꿔놓았을까?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긴 인생에서 볼 때 고난이 유익하다는 걸 빗대어 설명한 표현이다. 예고 없이 내게 닥친 고통의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내 영혼을 갉아먹어 치울 듯 달겨들던 죄책감과 수치심이 나를 더 이상 아프게 찌르지 않으며,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해 달라'는 타고르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었다.
시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바뀐 나를 발견한다. 시를 통해 위로받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 나를 한층 성장시킨 것은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던 고난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길지 않은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