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학년 아이들과 함께했던 추억 소환
우리 반은 보통 교실에서 하는 1인 1역을 '의미있는 역할'로 바꾸어서 하고 있다. 학급 경영에 탁월하신 한 선생님의 아이디어를 빌려 활용 중이다.
2학년 아이들과 함께 먼저 교실 안에서 필요한 역할을 정하고, 역할의 이름도 같이 정했다.
우리 반은 창문 열고 닫는 사람, 매일매일 시간표 바꿔주는 사람, 날짜 적어주는 사람, 칠판 지우는 사람, 선생님 심부름해주는 사람, 바닥 쓰는 사람, 바닥 닦는 사람 등이 있다. 각 역할의 이름을 지을 때는 아주 치열하다. 거의 1인 1개씩의 의견을 내 다수결로 3개 정도로 추리고 최종 선정을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창문 열고 닫는 사람은 '창이', 시간표 바꿔주는 사람은 '시간이', 날짜 적는 사람은 '햇님이', 칠판 지우는 사람은 '예쁜이', 선생님 심부름 해주는 사람은 '도우미쌤', 바닥 쓰는 사람은 '바닥이', 닦는 사람은 '두땅이'이다. 무슨 논리로 정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순전이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정하고 선택한거라 참 좋아한다.
한 달을 살고 나면, 다음 달에는 역할을 바꾼다. 역할을 바꾸기 전에
"혹시 해봤더니 이건 필요 없는 것 같으니 없애자, 내가 생활해보니 이건 꼭 필요하니까 새로 만들자 하는 의견 있으면 얘기하세요."라고 하면 또 아이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줄줄이'와 '물통이' 이다. '줄줄이'는 매일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 서랍이 잘 비어져있는지 검사하고 책상 줄을 맞춰주는 역할이다. '물통이'는 급식실갈 때 개별로 가져가는 물통을 한 곳에 모아두고 식판을 들게 되는데, 식판을 가져다 놓고 다시 물통을 가지러 앞으로 나와야하니 너무 번거롭다며 물통 옮기는 역할을 누군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생겨났다.
참고로 우리 반은 돌봄 교실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돌봄교실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와서 생활한다. 그래서 서로의 편의를 위해 서랍을 비워준다. 번거롭긴 하지만, 교과서가 몇 권 안되기도 하고, 서랍에서 물건을 넣고 빼는 연습을 통해 정리하는 습관을 기를 수도 있어서 계속 훈련 중이다. 급식실 가는데 무슨 개인 물통을 하나씩 들고 가냐고 하겠지만, 코로나 시대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그림이다. 정수기 사용이 금지되고, 아이들이 개인 물통을 사용하여 위생적으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반 친구들은 매달 새로운 역할을 만들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가고 있었다.
오늘, 9월의 마지막 날이라 자리도 바꾸고 의미있는 역할도 바꾸는 날이었다.
한 아이가 며칠 전에 전학가는 바람에 역할이 하나가 줄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없애도 좋을 것 같은 역할로 '창이'와 '딸기에 빠진 솜사탕'이 후보에 올랐다. '창이'는 창문을 열고 닫는 사람으로 시작했다가 아이들이 키가 작아서 창문까지 손이 안 닿아 공기 청정기 전원을 켰다가 꺼는 역할로 변경되었고, '딸기에 빠진 솜사탕'은 속상한 친구를 위로해 주는 역할이었다. '창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한 친구가 말했다.
" 그런 간단한 것을 역할로 넣지 말고, 일찍 온 친구가 켜면 될 것 같아요."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교실의 공기가 더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창이는 꼭 필요해요."
" 창이를 없애면 자기 역할이 아니라며 켜지 않을테고 그럼 우리반 공기가 더러워 진다고요."
의견이 너무 팽팽해서 가볍게 결정할 수가 없어 의견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창이를 없애고 딸기에 빠진 솜사탕을 유지하자는 사람이 6명, 창이를 유지하고 딸기에 빠진 솜사탕을 없애자는 사람이 5명이었다.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요구했다.
"너희들, 창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왜 없애야한다고 생각하는지 친구들을 설득해 봐. 창이를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설득해 봐. 인원수가 바뀌는대로 결정하자."
그랬더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거의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창이는 필요 없어. 그냥 아무나 전원 누르면 되지. 딸기에 빠진 솜사탕이 꼭 필요해. 친구들이 싸우면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하잖아."
"무슨~ 요즘 아이들 잘 싸우지도 않고, 9월 달에 딸기에 빠진 솜사탕 맡은 친구가 아무도 위로 안해줬어. 필요 없어."
"그럼, 너희는 싸우고 아무도 위로 안해주면 좋겠냐?"
"넌 뭐 안 싸우냐?"
"너 지난 번에 경희랑 싸웠잖아."
이야기가 산으로 가면서 서로 공격하려고 하길래 '중간 점검을 하자'고 했다.
"혹시 친구들 중에 생각이 바뀐 친구가 있는지 한번 볼까? 자, 손 들어 보자."
그 사이 한 여자 아이의 생각이 바뀌었다. 5대 6!!
창이를 유지하자고 했던 친구들은 "아싸!"를 외치고, 창이를 없애자고 했던 친구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 때, 한 여자 아이가 화를 버럭 냈다.
" 창이는 필요 없다고!! 없애야 한다고!!"
"왜 화를 내고 그러냐?"
" 지은아,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지 말고, 친구들을 설득해야지."
"아니, 애들이 내 말을 안 듣잖아요."
금방 자기 생각대로 될 것 같았는데 안되니까 순간 성질이 확~ 났나 보다.
그래도 금방 마음을 다잡고,
"그러니까 창이는 너무 일이 간단하니까 없애고 친구가 싸우고 속상할 때 위로해주는 사람으로 하자고..."
힘을 다해 서로를 설득했지만, 딱 한 명 설득이 되어 결국, '창이'를 유지하고 '딸기에 빠진 솜사탕'을 없애는 걸로 결정되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써서 내라고 했더니 '창이'를 유지하자고 했던 6명의 친구들 중에서 3명이나 창이를 지원했다. 편~한 창이를 하고 싶어서 손을 들어주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설득을 한 친구도, 설득을 당한 친구도, 설득에 실패한 친구도 모두 배움을 경험한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9살에 경험한 설득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오늘도 또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