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라도 한걸음씩 떼는 기쁨을 맛보다
지윤이의 한글 공부 기록을 좀 더 자주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새로운 글자를 배우는 것보다 배운 글자를 복습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아주아주 천천히 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글자 하나를 '기억'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지윤이를 보면서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받침 없는 글자만이라도 모두 익히는 걸 목표로 했다. 여기서 '기억'의 기준은 '어제 배운 글자를 오늘 기억해 내고 읽는 것'을 말한다. 어제 배운 글자를 한번에 읽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 3일 연속 배우면, 4일째 되는 날은 기억해 내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씩 간격이 짧아지더니 이중 모음을 배울 때 쯤에는 바로 다음 날 기억해 내는 일이 생겼다. 이게 뇌의 신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암기도 자꾸 하다보면 암기 실력이 늘어 더 잘 외워지는 것처럼, 한글 역시 처음에는 글자 하나를 외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꾸준히 하면서 시간이 줄어드는 걸 경험했다.
지윤이도 잘 표현하진 않지만 신기해 했고, 스스로 글자를 읽어내려가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듯 보였다.
ㄱ,ㄲ,ㅋ /ㄴ,ㄷ,ㄸ,ㅌ/ ㄹ,ㅁ,ㅂㅃ,ㅍ/ㅅ, ㅆ /ㅈ,ㅊ,ㅎ/ 자음을 알고, ㅏ,ㅓ,ㅗ,ㅜ,ㅡ,ㅣ를 배운 후에 ㅑ,ㅕ,ㅛ,ㅠ를 익혔다. ㅐ,ㅒ,ㅔ,ㅖ,ㅚ,ㅟ, ㅞ,ㅙ,ㅢ까지 모두 읽는데 꼬박 두 달 반이 걸렸다. 1학기 말까지 받침 없는 글자 떼는 걸 목표로 했는데 아직 한달 반이나 남았다.
한글떼기에서 중요한 요소 두 가지는 정확성과 유창성이다. 얼마나 정확하게 읽느냐, 얼마나 유창하게 적절한 속도로 읽느냐로 판단한다. 정확성과 유창성을 바탕으로 문해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ㅣ와 ㅡ를 헷갈려 하고, ㅈ를 ㅊ로 읽는 오류가 발견되긴 하지만, 정확성은 괜찮은 편이라고 판단했다. 오류는 계속 연습하면서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중 모음까지 모두 배우면서 계속 앞에 내용을 복습했기 때문에 유창성이 좋아졌을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4월 말에 읽기 검사했을 때 4분 30초 나왔던 검사를 똑같이 했는데, 4분 정도 나왔다. 처음에 실망했지만, 어느새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천천히 가다보면 우리가 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지.
천천히라도 포기하지 말자.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