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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ul 26. 2024

11살 한글 떼기 도전기(4)

포기하지 않는 끈기과 노력하는 용기가 만났을 때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고 나면 그제야 한숨 돌리고 잠시 쉴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팽팽하게 얽혀있던 심리적인 끈들이 조금 느슨해지며 긴장했던 마음이 느긋해지는 순간이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찾아오는 쉼의 시간은 꿀 같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도 해방감을 느낀다. 책가방을 메고 회장의 신호에 맞춰 하교 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간다.


  하교 시간, 지윤이는 오늘도 아이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앞으로 나와 묻는다. 

  "오늘  책 읽어요?"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한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굳이 앞에 나와 질문하는 지윤이. 

  매일 같은 답을 들을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지윤이. 

  "그럼, 읽어야지."


  '오늘 하루만 쉴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마음 속 깊이 꾹꾹 눌러가며 대답한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월~금요일까지 매일 방과 후에 30분씩 한글 공부를 했다. 갑자기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거나 회의가 잡혀 5분이라도 일찍 끝내면 그저 좋아하는 지윤이를 보며 매일 남아서 공부하는 일이 나만 힘든 게 아님을 새삼 느낀다.


  공부하다보면, 분명 어제까지 잘 읽던 글자를 엉뚱하게 읽거나 이미 다 익힌 글자를 틀리게 읽는 일이 자꾸 반복됐다. '안되는 걸 억지로 끌고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솔직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매일 남아 한글을 배우겠다고 애쓰는 지윤이를 보면서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이제 지윤이는 받침없는 동화책 한 권을 읽는 데 30분쯤 걸린다. 책 한 권을 띄엄띄엄 읽는 데까지 오는 데 꼬박 한 학기가 걸렸다.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내 마음과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애쓰고 있는 지윤이의 노력이 만나 생긴 결과물이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받침있는 글자를 익혀야 하는데 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지윤이가 교과서를 읽을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꾸며 지윤이와 함께 끝까지 걸어가 보련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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