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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에서 회장까지 (1)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나

by 작은 브러시

이 글에서는 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과 할머니 아님 이모 정도밖에 없을 거다.

안다고 해도 당사자가 말한 것은 아니니 자세히 알진 못할 거다.

이번에는 조금 분위기가 진지해질 수 있음을 주의해 읽길 바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참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니,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남이 보면 '얘가 말을 못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재잘재잘 잘만 떠들어댔는데, 뒤에서 아는 사람(가족이 아닌 이웃 또는 친구/ 친구 부모님) 이 다가와 날 부를 때면 화들짝 놀라서 입을 꾹 닫아버리곤 했다.


그런 내게 고비는 어린이집에서 7살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그전에도 있었을 수 있지만 너무 예전인터라 기억이 잘 안 난다. 무엇보다 7살이, 내가 침묵을 하고 있으면 힘들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해 준 시기 같다.

나는 반에서 투명인간 같은 아이였다. 그냥 너무 존재감이 없어 공기 같았던 것 같다. 물론 또래의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리본 머리띠 하고 블링블링한 공주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하긴 했다. 그저 너무 아니 거의 말이 없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또 자주 웃지도 않고 무표정이었어서 더욱 존재감이 흐릿했을 거다.


나에게는 말을 꺼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힘들었다.

입을 열고 소리를 내려고 해도, 목 안에 커다란 돌덩이가 뜨거워지고 목소리가 올라오는 것을 막는 느낌이었다.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에 힘을 다 쥐어짜봐야 잔뜩 쉰, 아주 낮은 톤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힘없이 "네..."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러면 또다시 '네', 하고 말하면 뚜렷해지기는커녕 더욱더 옅어졌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이런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 때문에 어떤 여자애가 내 목소리가 남자애 목소리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속으론 꽤나 상처받았지만 굳이 싫은 티를 내진 않았던 것 같다.


놀이 시간이 되면, 항상 신나면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댔다. 신나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큰 긴장감에 휩싸여서 그랬다. 두려웠다. 또다시 혼자 남게 될까 봐.

반에 놀이 영역들이 대여섯 개 있었다. 너무 한 곳이 붐비면 안 되니까 한 영역에서 놀 수 있는 인원 제한이 있었다. 이름 딱지를 붙이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대충 같이 노는 무리는 있어서 그 애들을 급하게 따라가서 이름 딱지를 딱 붙이면 일단 첫 번째 미션은 해결이었다.

두 번째 미션은 솔직히 해결한 적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한 두 번? 좀 억지로 시켜서 간신히 한 거다. 그건 바로 역할 놀이 할 때다. 소꿉놀이 아니어도 동물 모형을 갖고 상황극을 하곤 했다. 그런데 자, 생각해 보자. 역할 놀이는 한 사람 당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그 역할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것'에 주목해 보자.

뭐어?!! 이 투명인간 부끄럼쟁이가 어떻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나로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걸 아는 애들이라 그런지 나에게 거의 말은 많이 안 해도 되는 작은 역을 주었다. 약간 안도감이 들긴 했지만 딱히 크게 좋고 싫고는 없던 것 같다. 나의 소망은 '재밌게 노는 것' 보다는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대사를 해야 할 때면 개미 똥꾸멍만 한 소리로 쪼꼬마게 속삭였다.


그런데, 가끔은 첫 번째 미션마저 못 하고 막혀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내가 아주 열심히 애들을 따라가서 이름 딱지를 붙이려 한들, 더 길게 뻗어진 손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그 영역이 순식간에 다 차버리면, 끝난 거다. 진짜 끝이다. 이리하여 미션 실패!

자 여기서 질문, 플랜 B는?

없는데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순간 내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친구들과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

아무리 내 존재를 알리려고 주변을 서성거려도, 듣는 이는 제로였다. 이미 걔들끼리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축제를 벌이고 있는 판에 나 같은 외계인이 들어갈 구멍은 없었다.

그러면은 반을 몇 바퀴고 빙빙 돌았다. 놀이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럴 작정이었다. 그때쯤이면 누군가 나오겠지. 구멍이 뚫리겠지. 하지만 나오는 애는 없었고, 그렇게 나는 외톨이 신세가 되곤 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럴 수는 없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것'과 '혼자 놀 수 있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혼자 놀 수 있는 것에는, 누군가에겐(날 포함해서)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실 수 있다. 하지만, 내 7살 같던 시절이 있던 분은 이해할 수 있으실 거라 믿는다.


그렇게 빙빙 갈 데 없어 도는 그 시간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곧 선생님이 다가와서 전혀 친하지 않은, 특히 반대 성별인 남자아이와 보드게임을 하게 해 준다. 물론 나도, 그 애도 내켜하진 않지만 떠돌이 신세였던 나로선, 감사할 따름이다.


어린이집이 끝나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신기하게도 묵혀두었던 이야기보따리가 꺼내져 참 쉽게 술술 말이 나왔다. 십 년 묵은 트림을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늘 이렇게 어린이집 생활이 괴로웠단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런 점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단 것뿐이다.

하지만 정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던 하루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꺼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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