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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 ‘신호등’ 개사

by 작은 브러시

<수학아 들어봐>


이제야 문제집을 폈지만

첫 장부터 꽉 막히네

난 갈 길이 먼데

점수를 보고만 엄마 얼굴

영혼이 가출했지

이제야 숫자 몇 개 썼지만

선생님 날 재촉하네

더 이상 무린데

울먹울먹 수포자를 꿈꾸던

친구가 뇌에 맴돌자

머릿속을 뒤집어버린

수많은 개념 공식들 모두 다

데굴굴 굴러 말을 참 안 들어

어떡해 끝이 안 나요

수학아 수학아

지금부터 내 말 좀 잘 들어봐

일차방정식인지

일식 한정식인지

내 머릿속을 팡 Turn off 하네

내가 바볼지도

x값이 보기에 No

그저 눈앞이 깜깜할 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1조차 몰랐던

신생아 때 넘 좋았었던 것 같아

정, 반비례 따위 알 게 뭐야

문제가 없었으니

미로처럼 꼬인 계산식

째깍째깍 시계는 쿵쿵쿵 내

심장 벌떡 일으켜 달리게 하지만

아직도 초짜란 말야

수학아 수학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봐

y=ax 정비례라

외워도 소용없지

No easy 문제 No 매너 너무하네

네가 못된 거야

난 죄 없어 암 illegal

내 뇌에 네가 switch 껐잖아

IQ 150인은 물론

보통인도 문제가 없는

1번 문제의 보기 중에

찍잖아 방해하지 마

수학아 수학아

왜 자꾸 날 빙글빙글 돌려

힘들어 죽겠는데

왜 갈수록 산이야

그만 좀 K.O 시켜 이미

수차례 쓰러져서

이젠 눈물도 안 나네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괴롭혀




어젯밤 문뜩 새로운 종류의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 에세이, 시 말고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다가

노래 가사를 써보자 결심했다. (노래 가사도 일종의 시지만) 처음부터 아예 하나의 곡을 작사하기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간단히 노래 개사로 시작하기로 했다.

왠지 이무진의 ‘신호등‘ 노래가 떠올랐다. 가사 중 ’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려 ‘라는 구절을 보고, 정말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리는 걸 생각했다. 바로 수학이었다.

그렇게 수학에게 그만 좀 괴롭혀달라 하소연하는 이상한(?) 새 노래로 재탄생되었다. 수학에 대한 짜증을 정성껏 갈아 넣어 보았다.


수학이 만약 살아있다면 불평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또 매일매일이 노래 듣는 일상이니 금방 쓰겠거니 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써보고 고치고 고치다 보니 40분 정도가 훌쩍 지나가 있었더란다.


허접한 실력으로 개사 한 곡 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곡을 직접 만드는 건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걸까. 작사 작곡하는 분들 모두 대단하시다.


그래도 노래 속에 감정과 생각을 담는 일이 꽤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에는 어떤 노래를 개사해 볼까, 왠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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