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이 무서운 사람들

말 걸지 마요

by 이현지



예쁜 머리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미용사의 손길을 빌려야만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용실에서 거쳐야 하는 많은 관문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나도 때로는 다른 미용실에 손님신분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머리를 해주는 미용사님이 나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거나, 개인적인 질문들을 쏟아낼 때면 '사람 말고 로봇이 와서 내 머리 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미용사가 저런 이야기나 하고 다닌다고 미용업계에서 퇴출당할 지도모를 일이기에 상상마저 접어두기로 한다.


내가 행하는 말과 행동이 익숙해져 버리면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온도로 비치는지 망각하기 쉽다. 중간중간 멈추어 되돌아보지 않으면 똥고집 단단한 독불장군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때문에 현직 미용사로 종사하면서 굳이 손님의 입장이 되어보려 다양한 미용실을 경험해 본다.




.

.

.




불과 몇 년 전, 1인미용실을 운영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도 내 머리 뿌리염색을 하기 위해 근처의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야만 했다. 늘 고객을 맞이하는 입장이었던 내가 근처에 있는 타 미용실을 찾아가 손님가운을 입고 앉아서 머리를 하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혹시 나를 알아보고 불편해하면 어쩌지'부터 시작해서 괜히 이것저것 염탐하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다. 온갖 말투와 행동에 부자연스러움까지 더해져 고장 난 로봇이 따로 없어 보일 지경이다.


헤어디자이너로서 존재하는 내 모습은 언제나 활기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천운을 거머쥔 나는 평생의 운을 다 끌어고 당겨썼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 조금 모자라 보이는 모습의 손님으로 앉아있으니 서둘러 볼일을 끝내고 내 구역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 날씨 좋죠?' 하며 시동을 걸어오는 그분의 목소리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 나 또한 웃음으로 대면하고 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귀한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미용보조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다가와 본격적인 대화태세로 돌입하는 미용사님께, 집에 가서 머리 감을 테니 안녕히 계세요 말하고 싶다. 멈춰줘요 나 정말 지금 이 순간 머리하면서 쉬고 싶거든요.


뭐든 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미용실이라고 그것이 쉬울까 싶지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우리 미용실 인터넷예약창에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체크해 주세요]라는 체크항목을 만든 것이다. 실행해 본 결과 이 메뉴는 90%의 고객님들이 체크 후 방문해 주시고 있다. 미용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소중한 것은 역시나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인가 보다.



반면, 미용사가 아닌 고객님의 지나친 정보오픈으로 인해 서로가 어색해지는 경우도 있다. 미용사와 손님의 첫 만남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고 겹치는 정보들이 없다 보니 부담스럽지 않다. 이 담백한 거리를 유지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이어 가야지만 꾸준히 허락되는 시간들이기에, 미용사 입장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려 온 힘을 다 해야 하는 고충도 있다.


자칫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거나 어쩌다 보니 미용사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오픈하게 되었을 때,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말해버렸다는 후회 속에 그 길이 마지막이 되었던 뼈아픈 이별 또한 겪어보았으니 말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과하다 싶어 지는 그 순간에 내가 눈치 있게 자리를 잠시 떠나 있을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주기적인 만남으로 마음이 연결된 우리는 머리손질의

목적에 그치지 않고 조금씩 서로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미용실에서 나는 하루하루 인생을 배운다. 굳이 유명한 인생강의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이 공간 안에서 충분히 많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배움을 위해 출근하는 미용사에게는 오늘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새로운 만남이 펼쳐짐과 동시에 우리 모두는 이별의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인연의 유효기간이 다하기 전 주어진 시간 동안 타인의 세상을 통해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내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인연이 떠나고 나서 한층 깊어진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단점을 보며 전전긍긍 화를 낼 게 아니라, 그것조차도 내가 가지지 못한 또 다른 능력이기에 타인의 단점을 통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를 배웠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르침을 얻었다고 본다.


이제는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피부가 좋아졌다 건강이 살아났고 얼굴에 핏기가 돌기시작했다. 타인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고 나니 비로소 지옥 같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다름을 ‘단점’으로 단정 지어 스스로를 힘들게 갉아냈던 나 자신에게, 성숙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다독여본다.


90세의 봄이 내게도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빛이 나는 예쁜 주름과 예쁜 미소를 머금게 된다면, 젊은 날 스쳤던 모든 이들의 향수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만남이던 미리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 나를 예쁘게 키워내주고 있는 오늘 만난 모든 이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알게 해 준 모든 상황들에게. 여러분은 내 생에 가장 큰 스승이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