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탄 커피머신

단골손님을 대하는 자세

by 이현지






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7살 때,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를 따라 동네 은행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 놓여있던 어른 키만 한 커피자판기는 나에게 가슴 떨리는 설렘이었기 때문이다. 몇 백 원짜리 코코아와 율무차 중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며, 도착하기도 전부터 행복에 젖어있던 그때의 두근거림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토토로 같았던 미지의 버튼. 동전 넣는 곳에도 손이 닿지 않아 꼿발을 세워야 했던 커피자판기는 어느새 내가 허리를 숙여 종이컵을 꺼내야 할 만큼 왜소해져 있다. 강산이 변해 이제는 흔히 만나볼 수 없는 커피자판기를 어디선가 마주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어, 반가워 안녕' 하고 꼭 한 번씩 웃어주고 가게 된다.


전국 곳곳에는 좋은 재료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코아와 율무차의 성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맛집에 찾아가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고민했던 그때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나는 코코아를 사랑하기 이전에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섰던 그때의 온도와 습도, 자판기를 올려다본 어린 날의 눈높이를 추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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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실력 좋은 미용사는 너무나도 많고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당장 예약할 수 있는 미용실도 천지이다. 코코아맛집이 전국에 널려있듯 뿌리염색도 어딜 가나 비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미용실의 사정에 맞추어 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한 미용실에 정착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곳을 찾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거대한 토토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손님들이 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얻어가는 것이 머리스타일의 변화뿐이었다면 되려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적어도 사람과 사람의 얼굴을 대면하는 직종이라면 결과물에만 한정되어있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머무는 과정이 행복했고 기억에 남을만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공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한 명의 단골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정말 세상에는 인간이 설명하지 못할 전지전능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바쁜 현실에 치여 본질을 잊게 될 때마다 우연한 곳에서 미색의 낡은 커피자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위치까지 그대로인 코코아와 율무차 버튼이, 30년이 훌쩍 지나 어른이 된 나를 반겨준다.


커피자판기의 옆구리에 달린 열쇠홈을 열어보면 그 안에 7살 먹은 어린 날의 내가 웃으며 숨어있을 것만 같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키다리아저씨가 있다니, 그것이 고철덩이 기계라서 유감이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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