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여야 하는 순간
낮잠시간에 들려져 온 작고 소중한 아이가 엄마품에 안겨 미용실에 들어온다. 부끄러움 가득한 얼굴로 처음 만난 아가의 한 달, 두 달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세상 돌아가는 시간의 분침이 이렇게나 빠를까 싶다. 그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고 나면 제법 그럴싸한 고학년포스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나 10대 초반부터는 미용실을 본격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눈에 찌를 듯한 앞머리를 최대한 길게 두고 싶어 하는 아이와, 이를 구슬리는 가족들 간의 긴장감은 전쟁의 서막을 알린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조금은 예민해져 있는 VIP 고객님을 상대하게 되는 것은 지금부터 나의 몫이다.
긴 앞머리로 두 눈을 덮어서 세상을 차단하고 싶은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노라면, 양육자의 따가운 시선이 벽 사이를 비집고 드리운다. 아이의 바람대로 앞머리를 길게 자르고 부모님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의 바람대로 짧게 잘라버리고 작은 소년의 기억에 배신자 같은 미용사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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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오래전 첫니를 뽑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흔들리는 이를 뽑았던 그날, 어쩌면 나는 무섭고 두려운 내 마음을 이해받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울음이 터지고 나서야 달래어지는 토닥거림보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그렇게 공포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란 이해가 더 달콤할 것이다 싶었던 나의 견해는 미용사가 되고 나서도 값진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나는 어린손님의 부모님께, 앞머리 긴 게 유행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아이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에게는 0.5mm씩 앞머리를 다듬고 허락받기를 무수히 반복한다. 헤어질 때는 앞머리가 불편하면 며칠 후에라도 꼭 다시 들러주기를 꼭 약속받는다.
길거나 짧다. 한정된 선택지를 벗어나 또 다른 여지를 전달해주고 나면 날이 선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 수 있었다. 부모도 어찌할 바 모르는 사춘기자녀의 성장과정을 미용사가 긍정적인 분위기로 이어가기까지는 나 또한 수많은 상황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초보미용사 시절에는 양육자의 강한 의견에 짧게 잘라버린 앞머리를 보고 울음이 터진 아이도 있었고, 머리를 자르다 말고 부모자식 간 소리를 지르며 싸우며 나간 적도 있었으니 오늘의 유연함이 얼마나 값진지 모른다.
몇 센티 차이의 앞머리 길이만큼이나 섬세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어린 손님에게, 커트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슬쩍 흘리는 나의 언어들이 잘 전해지고 있는 걸까. 아가야 혹여나 억울함, 배신감, 슬픈 감정들로 가득한 하루를 지냈더라도, 이 또한 깨달음이 되어 평온함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알기에 오늘 하루 힘들었을 네 마음을 다독여주길. 힘듦에 짓눌려 세상이 끝난 것 같아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자면 그만이라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내 마음이 고통스러워도 내가 사는 지구는 무엇하나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되새겼으면 한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만 고통으로 이 밤을 지새우기에는 너무나 큰 손해이니까.
요즘 어때?로 시작되는 어린 손님들과의 스몰토크가 제법 즐겁다. 담담하고 무심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그대들을 향한 내 응원의 메시지가 열렬히 내재되어 있음을 너희들은 알고 있을까? 이 세상에 날개를 펼칠 새싹들이 많이 혼란스럽지 않게 사춘기를 잘 지내길 바라며, 오늘도 앞머리 길게 잘라줄게 좀 웃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