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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가루 May 19. 2022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해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겸손한 인간에게 미래 예지는 많은 창작물의 동기가 되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미래 예지와 항상 동반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아까 브런치에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인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한 권 저의 집 거실 책장에 구비되어 있어서 그 책을 읽고, 오늘 브런치에 글을 하나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지금 글을 쓰는 행위에는 저의 자유 의지가 반영되어 있을까요?


  작가는 SF 소설의 형식을 통해 흥미로운 사고 실험을 하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고 실험의 주제는 위에서 말한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


  작품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비범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언어학자이지만, 어쨌든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인과론적으로 받아들이며 선형적인 시간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쉬운 말로 풀이한다면, 그녀에게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흘러가는 비가역적인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살고 있는 지구에 헵타포드라고 불리는 외계인들이 방문합니다. 그들은 목적론적 우주관, 비선형적 시간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을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페르마의 원리를 빌려옵니다. 우리 우주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이 물을 통과할 때 꺾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과론적 우주론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에(원인) 빛은 물을 통과할 때 꺾인다(결과).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빛은 최단거리로 움직이기 위하여(목적) 물을 통과할 때 꺾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최단거리로 움직이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출발점과 도착점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헵타포드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의 언어체계에 반영되어 있으며, 그들의 언어를 학습하는 루이스는 점점 비선형적 사고방식 역시 체득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사고 실험을 위한 절반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그녀를 테스트하는 것뿐입니다. 소설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헵타포드를 만나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현재의 루이스에 대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 루이스가 본 미래에 존재하는 그녀의 딸 이야기입니다. 루이스가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그녀의 딸에 대한 서술이 딸의 죽음부터 딸이 태어나는 시점으로, 인간 기준에서는 반(反) 시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고도로 근사합니다. 여기서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작가는 슬픈 장치를 하나 준비해 두었는데,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딸의 죽음입니다.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딸은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게 됩니다(작가인 테드 창은 남자인데도 딸에 대한 이야기에서 상당히 모성애가 느껴지도록 묘사하는데 성공 했습니다). 루이스는 딸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딸의 죽음이 적혀있는 그녀의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녀를 낳습니다. 자유의지에 관한 책의 표현을 하나 적어 두겠습니다. "미래를 아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이 책은 영화화되어 한국에서 「컨택트」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서 저는 생각이 나면 보곤 합니다. 아마 다섯 번 이상을 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본 케이스인데, 참 다행입니다. SF는 작가와 독자가 경기하는 일종의 상상력 대결이라고 생각하는데, 테드 창의 상상력이 너무 기발해서 저는 책을 먼저 읽었다면 헵타포드의 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이미지를 절대 소설의 묘사만으로는 상상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의 영어 제목은 Story of Your Life,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소설 내내 루이스가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쩌면 "네 인생의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되었을 것 같습니다. Your life에서 you는 루이스, 그녀의 딸, 그리고 우리 모두일 수 있으니까요. 술술 넘어가고 분량도 길지 않고, 읽기 편한 재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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