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AI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AI.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 써보질 않아서 나에겐 낯설고 새로웠다. 강사는 그 유명한 chatGPT며 Gemini를 어떻게 쓰는 건지 가르쳐줬고 나는 신기해서 “내일 날씨 알려줘.”, “지루할 때 넌 뭐 하고 놀아?”등 식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큰 유행이었던 지브리 이미지를 생성하기도 했다. 말만 하면 원하는 걸 뚝딱 만들어주는 게 희한하고 기특하게까지 느껴졌다. 할머니가 “세상 차암 좋아졌따아~!”하는 말씀이 실감 날 때였다.
한참 강의를 하던 강사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AI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에게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다들 AI, AI 하니까 배우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강사가 내 옆 사람을 지목했다.
“지금 AI 시대이기도 하고 미래엔 AI 없인 안 돼서 배워야죠. A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기 때문에 필요하고요.”
그렇다. 요즘은 AI가 안 들어간 곳이 없다. 가전도 AI 기능 탑재로 되어있고 내가 방금 배운 chat GPT나 대화 전문 인공 지능 앱으로 리포트를 작성하고 궁금한 것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다. 노래와 그림, 글까지 만들어 사람들의 직업을 위협하네마네 말이 많고 AI를 기반한 사업육성까지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AI로 연애까지 한다 하니 AI가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많이 녹아들었는지 알 수 있다.
AI가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봤다. 솔직히 아직까진 내 삶에 꼭 필요할까 의구심이 든다. 물론 써봤을 때 아주 요긴하고 빠르게, 편리하게, 쉽게 쓸 수 있지만 내가 수고를 들이는 과정이 아직까진 별 불편함이 없다. 그리고 난 아직 아날로그적 마인드인지 그걸 쓰다 보면 너무 의존적이 될 것 같고 저작권 문제, 개인정보 등도 두려워서 거부감도 살짝 든다. 그런 나에게 AI가 필요한 순간이 올까?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면서 무릎을 탁 내리쳤다. AI는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우리 아들을 위해서 말이다.
장애인 부모들의 공통된 소원은 뭘까? 바로 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고 나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기에 자녀를 두고 떠나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불안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먼 훗날 준후를 두고 과연 눈이나 제대로 감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술을 마시고 딥해지고 센치해지면 한 번씩 먼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애는 누가 돌봐주지? 시대가 흐르면서 지원 체계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은 부족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장애인 돌봄 시설에서 폭행 사건이 한 번씩 터지면 공포는 극에 달한다. 결국 우린 같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나 하는 암울한 결론에 도달하고 남편은 쓰디쓴 술잔을 기울이고 나는 눈두덩이가 뜨거워진다.
하지만 AI가 발전해서 우리 아이를 평생 돌볼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그전에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교육하고 훈련시키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돈관리라든지, 사기꾼이 접근했을 때 분별 있게 판단할 수 있는지, 선택하는 기로에 처했을 때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등이다.
AI가 나와 남편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여 배우고 AI의 무한한 데이터와 처리능력까지 합쳐져 준후의 곁에서 잘 돌봐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나마 편하게 이 아이를 놔두고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준후는 우리가 사라진다면 죽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을 놔두고 멀리 떠났다고 생각해 불안해할 것이다. 죽는다는 걸 안다 쳐도 부모를 잃어서 슬프다기보다는 자신의 불편함 때문에 우리의 부재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AI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건 어떨까. 내 말투와 생각과 편견과 생활양식을 러닝한 AI는 제2의 엄마가 되어 준후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세상의 보호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정말 실현된다면 뉴스에서 나오는 장애 자녀와의 동반자살, 비관살해 소식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과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펼쳐줬고 무한한 기회와 편리를 제공해 줬다. AI도 이런 발전을 기대하며, 그중에서 발달 장애인을 위한 발전에 큰 이바지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