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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를 상실해도

by 은하육수

2년 전의 일이다. 나는 도시와 농촌사이를 출퇴근하기 때문에 좁은 길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날도 한 차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을 지날 때였다. 맞은편에서 자동차가 오는 게 보였다. 이 길은 먼저 길에 있던 차가 지나가면 그 맞은편 차가 기다렸다가 그 차가 지나가면 가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나는 맞은편 차가 기다리겠구나 싶어 얼른 길을 빠져나올 생각에 속도를 냈다. 갑자기 그 차가 그 길로 진입했다. 이렇게 되면 외나무다리의 염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초행길인가 싶어 어쩌지 하며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갑자기 그 차가 옆으로 살짝 비키더니 논두렁으로 쑥 빠져버렸다. 순식간에 차가 옆으로 완전히 전복해 버린 것이다.


놀란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차에는 운전자 말고도 뒷좌석에 사람이 더 타있었다. 얼른 119에 신고하고 뒷좌석 문을 여니 아줌마와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 쪽을 부딪혔는지 벌겋게 부어있었고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랐는지 엄마 품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얼른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들을 끌어내고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약간의 타박상 말고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다독였고 사고수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줬다. 119와 보험회사 차량이 오고 사고가 일단락이 되어 내가 집으로 가려던 때였다.


“잠시만요.”

갑자기 그 운전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쪽 때문에 사고가 났으니 그쪽도 책임을 지셔야죠.”


갑자기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몰라 나는 아저씨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저씨의 주장은 내가 달려오고 있어 자기가 놀라 논두렁에 빠진 거니 나도 책임이 있다는 거였다. 아저씨 차와 내 차 거리는 수십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내 차가 거의 자기 차를 스쳤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놨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아무 말을 못 하고 있자 하나둘씩 사고구경하러 온 마을 사람들이 쑥덕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그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앞뒤 상황도 모른 채 자기 마을사람 편에 서야 한다고 작당을 한 모양이었다. 사고가 난 논두렁 주인도 마을사람인 아저씨대신 나에게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따져 들었다. 외지인에다 거기선 젊은 연령대에 속한 내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차 블랙박스는 충격 시에만 작동하기 때문에 이 장면이 찍혔을지 알 수 없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을 구하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구나 싶었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을망정 어리숙한 여자에게 피해 보상만 받아먹으려는 사람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인류애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사람을 구하려는 내가 바보 등신처럼 느껴졌다. 그냥 지나칠 걸 후회가 되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인류애가 살아있는 사람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해맑게 웃는 아이뿐이었다.


다행히 상대 보험회사 아저씨가 중재에 나섰고 나도 보험회사를 부르고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천만 다행히도 그 장면이 영상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블랙박스 영상을 내밀어도 상대차 아저씨는 인정하지 않았고 내가 높은 사람 누구 아는지 아냐며 말도 안 되는 겁박을 했다. 결국 경찰 부르겠다는 으름장을 내놓자 그제야 아저씨는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사람이 싫어졌다. 도움아 필요한 사람을 만나도 내가 도와줬다가 나중에 딴 말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악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고 웃는 얼굴 뒤에 드리운 악의를 찾으려 애썼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나의 인류애는 상실했다.


이따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만약 그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내 눈앞에 그 순간이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이제 못 본 척 지나칠 것인가? 어차피 도와줘봤자 가해자가 되는데도 나는 다시 한번 도움의 손길을 줄 것인가? 수십 번을 되묻고 또 되물어봤다.


요즘은 좋은 일을 해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러게 괜히 나서 가지고.’, ‘오해 먹을 바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지.’라며 오히려 도와준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그들을 도울 것인가?


나의 답은 결국 ‘네’였다.


가해자가 되더라도, 등신 취급받아도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을 꺼내 줄 것이다. 인류애가 사라져도 사람은 구해야지 싶다. 내가 인류애를 상실했다 해서 내 안에 있는 인류애를 갉아먹을 순 없다. 그리고 그 아저씨 같은 사람보단 나의 무의미한 행동에도, 작은 도움에도 감사해하고 크게 보답해 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에 바닥을 치던 인류애 게이지는 다시 서서히 차오른다.


그 좁은 길이 이제 넓은 도로가 되어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기며 인류애를 상실하는 순간이 오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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