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5월만 되면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린이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버이날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어버이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누가 강요를 한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나에게는 어린이날에 받은 선물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채무를 져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이날에 그리 좋은 선물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다행히 부모님은 내 브런치 정체를 모르신다) 어린이날에 뭔가를 받으면 나는 부모님께 대단한 걸 준비하지 않았는데 어쩌나 하며 부담을 한가득 안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어린이날에 뭐 갖고 싶냐고 물어보시면 어버이날의 부담감을 덜고자 필요한 게 없다고 할 때가 많았다.
문구점이나 길 가에서 한 송이씩 파는 코스모스 코사지를 하나씩 사고 편지를 썼다.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을 구구절절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예쁘게 편지지를 꾸몄다. 하지만 나는 그게 성이 차지 않았다. 이걸 받고도 과연 엄마, 아빠가 좋아할까? 매년 똑같은 선물을 받는데 지겹지 않을까? 강한 의심이 들었다.
5월 8일 당일이 되면 나는 더욱 긴장되어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다. 등교하기 전에 빨리 꽃을 달아드리고 편지를 드려야 하는데 도저히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밥 차린다고 정신없고 아빠는 출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쭈뼛거리며 다가가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는데 도저히 내 허접한 선물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결국 두 분이 잘 보이는 곳에 말없이 놔두고는 학교로 도망쳤다. 엄마, 아빠는 분명 내 선물을 보고 실망하시겠지? 부모님께 이렇게밖에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나도 아빠에게 멋진 넥타이핀을 선물하고 싶고 엄마에게 고운 립스틱을 턱 하니 드리고 싶었다.
한 번은 정말 용돈을 몇 달 모아 마트 가판대에서 아빠 넥타이를 산 적이 있었다. 살 때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드리기 전에 보니 그렇게 빈티날 수가 없었다. 이걸 드려서 아빠의 고마워하지만 뭔가 탐탁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주지 말자 싶어 서랍 속에 처박아둔 적도 있다.
애교 있는 친구들은 원래도 애교를 부리지만 이런 날은 더 사랑한다고 표현한다는데 나는 도저히, 죽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뚝뚝한 큰 딸이 갑자기 어깨를 주물러주고 콧소리를 내면 엄마, 아빠는 뭐 잘못 먹었냐고 걱정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만 잘해드리는 게 왠지 가증스러워 보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못 해 드렸다는 죄송함에 그저 몸 둘 바를 모른 채 얼른 어버이날이 끝나길 바랐다.
어제 아이 학교에서 카네이션 카드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줬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감사해요’
분명히 선생님이 색칠했을게 뻔한 꽃그림에 선생님이 뒤에서 잡아서 억지로 썼을게 뻔한 편지글이었지만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아이를 꼭 안아줬다. 받아보니 결코 하찮은 편지가 아니었다. 내 자식이 나를 위해, 엄마, 아빠를 위해 쓴 글을 보니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역으로 선물을 받아보니 기분이 사뭇 이상했다. 선물이 비싸든 뭐든, 작은 손편지든, 꾸깃꾸깃한 카네이션 종이꽃이든 중요한 건 그걸 건네는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니 그동안 잘 키웠으니 그걸 보답받고자 하는 생각은 정말 1도 없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별 탈 없이 지낸 것만 해도 너무 고맙고 벅찰 따름이다.
문득 부모님도 내 선물을 받았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쩌면 엄마, 아빠도 내가 준비한 카네이션과 편지를 보며 코끝이 찡했을 것이다. 난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그 선물을 매년 챙겨 받는다는 행복감에 젖어계셨을 수도 있다. 나도 표현이 서툴지만 더 서투른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처럼 어릴 적의 나를, 고사리손으로 꽃을 건네는 자식을 사랑스럽게 바라봤을 것이다. 어버이날은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는 날이지만 부모도 자녀의 존재로 그날이 더욱 특별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 손주가 만든 카네이션 종이꽃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 가슴에 달아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준후를 와락 껴안아주셨다. 어린 시절 고역이었던 어버이날이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빨갛게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