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에 붙이는 스티커

by Nora Vail

이어서 더 높은 차원을 상상해 보자. 4차원은 한 사건을 볼 수 있지만, 5차원은 사건들이 엮이는 구조를 보기 시작한다. 한 번 울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말이 유독 나를 찔렀는지, 그 사건이 내 관계와 자존감과 선택에 어떤 파동을 남겼는지. 5차원은 ‘사건 하나’가 아니라 사건의 인과 전체를 만지는 감각이다. 원인과 결과의 그물망, 서사의 흐름, 패턴과 반복과 변주.

그래서 5차원 스티커는 낙인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단정이 아니라, “이 사건은 이런 인과로 형성됐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라는 이해. 그리고 그 이해 끝에는 늘 한 문장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다른 인과를 넣으면 다른 결과도 가능하다.”


5차원은 운명을 보는 감각이 아니라 가능한 경로들의 지도를 보는 감각이다. 그 지도를 보면 비로소 선택이라는 것이 생긴다. 선택이 생기면, 사람은 조금 덜 절망한다. 나는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감정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바뀔 수 없음’의 느낌으로 무너진다. 그런데 인과를 이해하면, 바뀔 수 있다는 틈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말하면 너무 얇아진다. 좋아함, 설렘, 보고 싶음. 물론 그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남는다. 그 사람의 지금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미래 전체가 덜 아프게 이어지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그건 순간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인과를 바꾸는 일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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