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계절이 싫었다.

by 박하

여름을 싫어했었다. 여름의 뜨거운 습기와 피부가 따가워지는 햇볕을 쬐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찜통 안에서 익고 있는 느낌이라 항상 여름의 나는 숨 쉬는 것 마저도 불쾌해했다. 어렸을 때는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를 찾고자 하지도 않았다. 습한 공기에 땀을 흘리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다. 전기세가 비싸다고 집에서는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오빠와 나는 더위를 참기 힘들어지면 차가운 물로 서로 등목 해주거나 냉동실에서 얼음을 퍼 세숫대야에 담아와 같이 얼음물에 발을 담그며 티브이를 보곤 했다. 아, 겨울에도 기름 값이 비싸 아침마다 10분씩 일찍 일어나 가스레인지에 물을 직접 끓여야만 더운물로 머리를 감을 수 있었는데, 왜 겨울은 싫어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일은 한국의 가장 뜨거운 계절 8월이다. 엄마는 이따금씩 나를 가졌을 때의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당시 우울증이 심해서 밥도 제대로 먹고 있지 못할 때 할머니는 시장에서 수박 한 통을 사 와 엄마에게 먹였다.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미지근한 수박을 끌어안고 숟가락으로 통째 퍼먹었다고 한다. 엄마가 먹은 미지근한 수박은 뱃속에서 무슨 맛을 냈을까? 수박은 여름마다 우리 집 냉장고에 한 칸씩 차지했지만 수박을 좋아했던 적은 없다. 그저 여름에 내가 태어난 것처럼 수박도 언제나 여름마다 나타났다. 내 인생의 첫 수박이 차가운 수박이 아니라 미지근한 수박이어서 그런 걸까, 엄마의 눈물이 묻은 짭짤한 수박이어서 그런 걸까. 수박은 정이 가지 않는다. 경상도에서는 동생이 생긴 첫째가 자기 사랑을 뺏길까 봐 본능적으로 불안해하는 것을 아시탄다고 말한다. 나를 임신한 상태로 분식집을 하던 엄마는 오빠가 등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 만삭 때까지 등에는 오빠를 업고, 부른 배를 안고 김밥을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해하던 오빠는 어디를 가든 엄마와 함께 가려고 땅바닥을 구르며 발작하듯 울었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이를 안고 급하게 화장실을 뛰어갔다 오는 갓 30대가 된 만삭의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기보단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여름을 싫어했을까? 친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 뭐냐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더워서 싫은 게 전부라고 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최근에는 한여름에 야외에서 그렇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놀 일이 없지만 어린 나이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까맣게 탄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놀이터의 모래 바닥과 빨간색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아놓고 놀았다. 더위는 싫어했지만 노는 건 싫어하지 않았나 보다. 뜨겁게 달궈진 숯을 물에 담그는 것 마냥 뜨거워진 나를 차가운 물에 풍덩 빠뜨려 열을 식히는 건 좋아했다. 무서운 것도 모르고 항상 발이 닿지 않을 만큼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가 헤엄쳤다. 그래서 그런가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물이 무서워지지는 않았다. 정수리를 까맣게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있어도 깊은 물속에 고여있는 내 몸만은 시원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은 여름뿐이다. 20년을 가까이 여름을 싫어했지만 결국 기억나는 건 여름 속의 나다. 싫은 감정과 그리운 감정이 뒤섞여있는 애증의 여름. 반팔티 길이로 남은 그으른 살의 자국처럼, 여름은 지나고 나서야 그리움을 남긴다. 한때는 엄마에게 내가, 내가 싫어했던 뜨겁고 불쾌한 여름 그 자체였던 것 같아서, 너무 더운 계절에 태어난 게 미안해서 내가 태어난 계절이 미웠다. 이제야 뜨거움 뒤엔 나를 식혀줄 차가운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 시원함이 나를 두렵지 않게 한다. 내가 엄마의 여름을 견디게 할 무언가였기를, 그래서 엄마의 여름이 물 위로 자잘하게 비치는 빛이 됐다면 나는 이제 8월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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