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유효기간

by 박하

한 사람에게 갖는 감정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증오와 공포는 짧게, 애정과 사랑은 방부제 처리를 해서라도 길게 가져가지 않을까. 언제나 공포는 잊을만하면 심장을 두드리며 다시 찾아왔음을 알리고 싫어했던 사람의 행동들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한다. 가장 날것의 감정일 텐데, 분명히 음식으로 치자면 가장 먼저 썩어 사라져야 할 것이 분명하지만 감정 속에서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언제나 몸에 좋지 않은 형태로 오래도록 남아 자기 자리를 지킨다. 한 침대에 누워 뜨끈한 숨을 내뱉는 잠이 많은 애인의 체온에 애틋함을 느끼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와 10년이 지났어도 하는 똑같은 레퍼토리의 대화들에 안정감이, 나보다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격려해 주는 직장 동료의 조언에는 따뜻함이 있다. 그 안에서 작게 피어나는 습관 같은 의심들은 애써 무시하고 기분 좋게 웃는다.

널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날 사랑해 주는 널 사랑하지만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난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매 순간 되뇐다. 난 싫어진 사람은 쭉 싫다. 몇 년이 지나도 싫다. 10년 전에 싫어졌던 친구도 지금은 만날 일도 없지만 여전히 싫고 5년 전 끝이 안 좋게 헤어진 전애인도 여전히 싫다. 싫다는 감정으로 관계의 끝을 지어서 그런 걸까, 배드엔딩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 봐도 배드엔딩이니까. 좋게 시작해서 여전히 좋은 사람들은 연락이 멀어지면 애매모호하다. 여전히 좋다고 하기엔 우린 멀어졌고, 싫다고 하기엔 그때의 우리가 좋았다. 그냥 바래진 좋았던 감정만이 남았을 뿐.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에서 싫었던 것들은 선명히, 좋았던 것들은 흐려져가는 게 못내 아쉽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건조한 음식들은 썩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항상 따뜻하고 촉촉하지 않기를, 때로는 그렇게 되더라도, 다시 돌아와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이 감정이 잔존하기를. 여전히 싫은 지난날의 나와 사람들은 눈물에 퉁퉁 불어 곰팡이가 슬어 썩어 없어져버리기를. 잊고 있던 사탕을 주머니에서 우연히 찾아 입에 넣은 날처럼 잊을만할 때 다시 떠오르는 게 너와 웃고 있던 날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항상 따뜻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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