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각자 티 내지 않지만 우울한 시기가 있는 것 같다. 한창 우울했던 시기에 나는 집에서 혼자 우울감 검사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해보고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우울에 빠지고, 울면 조금은 후련해지던 기분이 이유 없는 눈물에 더 허망해지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그때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방안에 혼자 울적하게 박혀있던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마음이 건강해진 거겠지.
사실 우울한 감정이 본인이 느끼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주변인들에게 내가 우울한 게 맞는 걸까?라고 물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주변인들은 꽤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의 이유 없는 우울감은 주변인들이 어떻게 해준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였던 건데. 친구들과 만나지 않아서 우울했던 것도 아니고 일이 힘들어서 우울했던 것도 아니라 그냥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순간들을 스쳐 보내지 못하고 담아뒀다가 어느 순간 한 번에 감정이 터져 나온 느낌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우울감은 생각보다 사람을 더 크게 지치게 한다.
다행히도 나는 그 우울했던 시간이 길지 않게 왔다 갔다. 왔다 갔다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 와서 왜 우울했냐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이 많은 사람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쉬는 날에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나면 그냥 푹 쉬었다 생각하고 다음날 열심히 살면 그만인 일인데도 나는 푹 쉰날 밤에 오늘 아무것도 못한 게으른 나를 자책하며 늦게 잠들고 다음날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강하지 못한 날을 보낼 때가 잦았다. 기준은 높은데 객관화가 안 돼서 자책이 심한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갓생 살기를 언제나 외치지만 갓생을 살 수 없는 인간이 나다. 요즈음은 우울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탄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에는 여러 가지 걱정들이 저 깊은 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는데 싶어질 때도 있다. 생각이 깊은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쁜 것 같다. 전에는 내가 하는 일이 맞는 걸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걸까에 대해 언제나 골을 썩였는데 요즈음에는 그냥 밥 뭐 먹을지에 대한 고민.. 내 몸 건강과 행복해지는 방향이 어디 일지에 대해 생각의 무게를 더 했더니 세상이 전보다 조금은 심플해진 느낌. 여전히 내가 사는 방식이 맞는 걸까, 내 진로에 대한 고민들은 어느 날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이제는 그 우울감에 오래 잡혀있지 않는 방법을 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이기, 운동하기. 이 세 가지만 해도 사람은 사실 기분이 상쾌해진다. 좋아하는 걸 하면 당연히 좋지만 운동을 하면 사실 그냥 건강을 위해 하는 거라도 뭔가 하루를 열심히 산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서.. 하루를 뿌듯하게 보낼 수 있다. 사람이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곳은 굉장히 사소한 것들에게 서라는 것.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의 내가 어찌 되든, 애를 낳을지 말지, 이 직업이 나에게 정말 맞는 건지, 돈을 얼마나 모아야하는지에 대해 고민은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그저 현생에 집중하며 살아내면 언젠가는 해결될 고민들이다. 언젠가는 해결될 고민들. 지금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들에 골머리를 썩이며 현재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
우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에 잠식당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