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어를 할 수 있다면

나를 이루는 내가 아닌 생명들.

by 박하

나를 이루는 것들은 내가 지나쳐온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다.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아주 어렸던 시절 단칸방에서 키웠던 강아지, 한 밤중 새끼들을 데리고 문을 두드려 먹이를 구걸하던 길고양이 가족, 오빠가 주워온 새끼 고양이, 그리고 엄마가 데려온 강아지.

동물들 이야기만 꺼내는 이유는 이 친구들에게는 나빴던 감정이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 순간 행복했다.

단칸방에서 가족이 다 같이 자던 습관 때문인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내 방이 생기고 나서도 오빠 방으로 가서 함께 잤다. 그때에는 엄마와 아빠가 술에 취해 싸울 때마다 오빠랑 언제 나가서 말려야 하나 타이밍을 재는 날이 종종 있었다.

‘오빠, 말려야 되는 거 아냐?’

‘조금만 기다려보자.’

이런 식으로.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렸어서, 그저 울면서 둘 중 하나를 붙들고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는 일 밖에 못했다. 그런 날이면 어떻게 잠에 다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리가 생겼을 때는 항상 나리와 셋이서 자는 날이 많아져 밖에서 시끄럽게 싸우더라도 무시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말리다가 방으로 들어오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리의 표정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어린아이인 나보다도 훨씬 작은 동물에게 마음속으로 참 많은 의지를 했다.

별이는 중학교 입학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오빠와 내가 수련회에 가있는 사이 몰래 데려온 강아지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대뜸 갈색 푸들 사진을 보내며 친구네 집 강아지인데 귀엽지 않냐며 문자를 보내왔길래 귀엽네,라고 하니 앞으로 같이 살 거라길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집에 돌아오니 작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실은 엉덩이를 흔드는 것에 가까웠다. 친구분이 애견샵에서 사셨던 건지 꼬리가 짧게 잘려있었다.) 오빠와 나는 집에 고양이가 있으니 반대했지만 이미 데려온 아이를 다시 내보낼 수도 없으니 지켜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리와 별이는 큰 문제없이 지내주었다.

별이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강아지다. 이상하게 같은 강아지들한테는 사회화가 잘 안 되었는지 친구를 사귈 수는 없었다.(꼬리가 잘렸던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강아지들이 엉덩이 냄새를 맡으려 하면 항상 화를 내며 도망쳐왔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하면 주인보다도 더 접객을 잘해주고 상냥했다. 너무 과하게 쫓아다니긴 했지만 다들 귀여워해 주었다. 별이가 왔을 무렵에는 사춘기 때라 친구 문제에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해가 지기 전 오후 집에 혼자서 울고 있을 때 별이는 눈물을 핥아주거나 그런 동화 같은 일은 없었지만 쭈그려 앉아있는 내 다리에 폭닥한 엉덩이를 대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작은 강아지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했던지. 그 체온이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있다. 이 작은 생물들의 인생은 고작 10년 남짓인데,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큰 힘을 내는지. 녀석들은 알까? 너무 다정한 아이들이라 그런 건 별 신경 안 쓸게 분명하다. 그저 순간순간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거겠지.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작은 친구들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그날이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다. 그날을 고대하며 천천히 추억하듯 걸어갈 것이다. 너무 늦어도 이해해주라..(아직 더 즐기고 싶은 게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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