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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ae Jan 16. 2021

Back to the 2015, London 1

출발과 도착, 런던의 마켓들

여행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3주간의 짧은 여름방학을 맞이하기 직전 시험에서 하위 10% 정도 인원은 재시험을 치르게 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결국 그 소문은 현실이 되었으나 다행히 본인은 재시험에 걸리지 않았고 다음 학기에 치러질 중요한 시험도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잘 받아 두었으니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사실 여행 계획은 이미 지난 학기에 일찌감치 세웠다. 2~3주 이상의 시간이 나기만 해 봐라 그냥 확 떠나버릴 테니!라는 마음으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그때이다. 떠나기로 결심하는 그 순간.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내가 한창 여행을 다닐 때에는 우리나라 국적기로, 심지어 유럽 직항 항공기를 이용한다는 것은 나에게 심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주로 에어프랑스나,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탔는데 에어프랑스는 와인 리스트가, 루프트한자는 맥주 리스트가 훌륭하다.

기내에서 먹이고 재워지며 도착한 런던 히드로 공항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는데 바로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좁은 좌석에 앉아 재워지고 먹여지는 12시간 동안 얼굴은 번들거리고 속은 부글부글, 다리는 퉁퉁 붓기 일쑤. 그냥 서울에서 맛집이나 찾아다니고 빈둥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된다. 이번에도 환승을 기다리며 뮌헨 공항에 앉아 잠시 잠깐 후회를 했더랬다. 하지만 그까짓 후회쯤 얼마든지 해주마. 매번 후회를 하면서도 나를 계속 비행기에 타게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이번 여행의 시작, 런던에서의 숙소는 빅토리아역 근처 호스텔로 잡았다.

여행에서 숙소를 정할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단연 ‘위치’이다. 워낙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특별히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웬만한 거리는 걷는 편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시간은 아낄 수 있지만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것만 같아서 그게 더 아쉽기 때문이다.

런던의 숙소는 버킹엄 궁전과 템즈강 중간 정도라서 위치 자체도 좋지만 근교 도시로 가는 버스터미널도 가까워서 최적의 위치였다. 저렴한 도미토리라서 밤에 다소 소음은 있었지만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니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볼만한 숙소이다. (강력 추천까지는 못하겠다.)

런던 숙소가 위치한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



이번 여행 전 런던을 방문했을 때가 2006년이었는데 그때는 박물관, 미술관, 궁전 이런 기본적인(?) 여행지에 출석 체크를 하느라 런던의 거리나 마켓의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한 것이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과감히 이전에 가봤던 곳은 최대한 배제하고 새로운 곳을 많이 다니기로 마음먹었는데 런던의 마켓이 그중 하나이다.

어느 도시, 어느 지역이나 마켓은 있고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지만 유명한 마켓들은 식료품을 주로 파는 곳, 골동품이나 장식 소품이 주류인 곳 등 저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는데 그래서 어느 한 마켓만 방문하기보다 최대한 많은 마켓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영화 ‘노팅힐’로 유명한 그 노팅힐(Notting Hill) 지역에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이 있다. 없는 게 없는 마켓이지만 빈티지 의류도 많고 토요일에는 앤티크 샵도 열리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꼭 방문해 보길! 나에게는 하루 잠깐 들르는 관광지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인 이곳.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팔 물건들을 늘어놓는 모습이 활기차고 밝았다.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다. 들뜬 마음에 하루를 너무 일찍 시작했나? 아직 장사 준비 중인 시장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아침 준비가 한창인 마켓 모습, 색감이 좋다


다음은 캠든 마켓(Camden Market)으로 가보자. 런던의 마켓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큰 마켓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캠든타운역(Camden Town station)에서 리젠트 운하(Regent’s Canal) 주변까지 쭉 이어져 있다. 총 네 개의 작은 마켓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관광객 입장에서는 마켓을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 역에서 나와 길을 따라 운하까지 주변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바뀌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켓 입구에서 운하까지

역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분위기는 마치 10년 전 홍대 같다. 크게 울리는 음악과 다양한 패션샵이 눈에 띈다. 운하에 가까워질수록 킁킁,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케밥, 핫도그부터 파스타에 디저트까지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었다.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지만 워낙 악명 높은 영국 음식에 선뜻 도전장을 내밀기가 엄두가 안 났다. 결국 아무리 맛이 없어도 본전은 할 것 같은 핫도그로 허기를 달랬다. 역시 맛보다는 분위기다!

운하에 다다르니 비로소 펼쳐지는 음식 좌판들


다음 소개할 마켓은 런던시청사 근처에 있는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

시청 앞 광장은 런던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현대적인 시청 건물 자체도 마음에 들지만 그 앞에 앉아서 간식거리를 먹으며 타워브리지(Tower Bridge)와 런던탑(Tower of London)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날씨만 좋으면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멍 때리기 좋은 명소이다!

시청 앞에서 한참을 보낼 작정으로 가기 전에 버로우 마켓을 들러 주전부리를 사기로 했다. 런던에서 신선한 식재료가 모두 모인다는 이곳. 다양한 과일, 채소, 치즈 등이 가득했고 바로 먹을 수 있는 빵이나 컵케익, 구이 같은 음식도 팔고 있다.

이 넓은 마켓이 거의 식재료로 채워져있다


이번엔 시 외곽으로 나가볼까?

이번 런던 여행에서 야심 차게 일정에 넣은 곳 중에 하나가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가 위치한 그리니치(Greenwich)이다. 현재 천문대 본부는 케임브리지에 있고 현재 이곳에는 옛날 천문대 건물만 보존되어 남아있으며 관람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었다. 천문대도 천문대지만 그리니치 역시 마켓이 유명하기 때문에 시내에서 멀지만 꼭 와보고 싶었다. 캠든 마켓처럼 휴무 없이 매일 열리는 곳도 있지만 휴무가 있는 마켓들도 있기 때문에 방문 전에 확인해보고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역에서 내려 천문대로 가는 길에 마켓 위치만 파악하고 얼른 천문대부터 올라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고 하늘은 맑았고 나는 혼자였으므로 쫓기는 일 없이 그저 멍하니 그 앞에 앉아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혼자 떠난 여행은 이래서 좋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이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다는 것. 가끔 문득 외로운 것만 빼면.

한 때 세계의 기준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이 보이는 듯


슬슬 맥주가 생각나서 마켓으로 서둘러 갔다. 그리니치 마켓도 여느 마켓 못지않게 넓었고 많은 부분이 앤티크 샵으로 채워져 있었다. 예쁜 아이템들이 많아서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던 기억.

자유로운 분위기, 내 취향인 것도, 아닌 것도 그저 재밌다



하루 날 잡아 마켓만 돌아다닌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하루 종일 마켓만 찾아다녀도 재밌고 색다른 일정이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면 그저 관광객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그들의 생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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