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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ae Jan 20. 2021

Back to the 2015, Oxford

비 오는 옥스포드

비교적 런던 일정을 길게 잡으면서 근교 도시에 다녀오기로 했다. 코츠월즈(Cotswolds)와 옥스포드(Oxford)를 같이 다녀오고 싶었는데 대중교통으로 두 도시를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았고 투어를 신청했으나 투어 일정이 (비용 또한) 맞춰지지 않아서 몇 번의 퇴짜를 맞고 나니 뭐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과감히 코츠월즈를 포기, 옥스포드만 다녀오는 것으로 마음을 비웠다.


많은 근교 도시 중에 옥스포드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예전 런던 여행에서 케임브리지(Cambridge)와 옥스포드를 다녀오고 싶었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케임브리지만 다녀왔던 게 내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해리포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영화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많이 찾는 도시 중의 하나인데 사실 나는 이때까지도 영화는 물론 책으로도 해리포터를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영국의 대표적인 두 명문 대학 도시를 다녀왔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Victoria coach Station에서 출발, 7월 24일 금요일입니다
옥스포드에 가까워질수록 대학과 학생들이 많아진다


어째 하늘이 우중충하더니 결국

비가 온다.

원래도 우산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에서는 카메라에, 핸드폰에, 소지품 담은 가방에 들고 다닐 게 많아서 우산까지 들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의 알 수 없는 이 고집 때문에 여행 시작하자마자 꼬박 이틀 동안 비를 맞았다. 비 오는 날씨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비에 젖은 도시의 분위기는 참 좋다. 축축하게 젖어 채도가 낮아진 옛 도시들은 쓸쓸하기도, 낭만적이기도 하다. 비는 괜찮은데 한 여름 추위가 심상치가 않다. 사람들은 왜 패딩을 입고 다니는 건데? 나만 너무 여름이네. 시내 중심부를 향해 가는 길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니트를 하나 사서 서둘러 입었다.



옥스포드는 작은 도시이다. 도시라기보다는 여러 단과대학(College)들이 모인 거대한 캠퍼스 동네랄까. 정류장에 내려서 모든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였다.

나는 언제나 여행지에서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가느다란 눈으로 잔뜩 긴장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한적한 토요일이라 더 눈에 띄는 관광객일 뿐이었다. 현지인처럼 보이지는 않더라도 여행지에서 그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을 어김없이 또 반성하며 충실한 관광객답게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Christ church college)를 방문했다.

옥스포드 내에 있는 컬리지들은 입장료를 내고 입장할 수 있는 곳과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이 각각 다르며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때나 입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컬리지 입구 경비실에서 내부 관람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허락을 받자.

작은 도시지만 건물은 거대하다
도시의 채도를 높여 주는 건 정원의 풀과 꽃들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학 겸 성당이다. 옥스포드의 컬리지 중에 규모가 가장 크며 귀족적이고 전통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식당 장면과 퀴디치 경기의 배경지로 알려져 있다.

대학 건물 중 관광객에게 공개된 공간, 중정형 구조가 좋다
이곳이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식당의 배경이 된 곳, 한창 식사 준비 중
단출하지만 정갈한 차림새


관광객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흘러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가급적 성당을 많이 들르는 편인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나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것이 이유 중 하나이고 나는 무엇보다도 높은 층고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고딕 양식의 성당들이 정말 좋다. 안에 있으면 황홀해지는 느낌이랄까?

역시나 화려하다
아무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제대 너머의 성가대석. 나에게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성당을 나와 마주한 영화 해리포터의 배경 중 하나가 된 중정, 가슴이 탁 트인다


왠지 의무감(?)에 시작한 관광을 마치고 나는 또 정처 없이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여행지에서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아쉬운 건 방수 기능이 약한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다니느라 사진을 충분히 찍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획 없이 걷다가 마주치는 거리의 풍경, 그곳의 사람들, 순간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의 또 다른 큰 즐거움을 놓쳤다는 생각에 한참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사진으로 미처 남기지 못한 옥스포드의 모습은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맑은 날의 옥스포드를 그리며.

오래된 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압도적이면서 동시에 정감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이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존재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마켓에서 또 한참 헤매다가 런던행 버스에 올랐다.

색감이 좋아서, 사지도 않을 꽃을 한참 봤다


이렇게 아쉬운 듯 알찬 옥스포드 당일치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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