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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4. 2024

쓰다 보면 는다며


하루에 5천 자는 거뜬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뭣 모르고 로맨스 소설을 연재할 때부터 나는 매일 같이 그것만을 바랐다. 5천 자는 웹 소설 1화분의 평균 분량이었다. 하루에 2천 자도 못 쓰고 쩔쩔매는 날이 태반이었던 나에게는 꿈의 숫자이기도 했다. 당시 연재하던 플랫폼의 베스트 순위에 단골로 오르던 작가 중 한 명은 하루에 8천 자를 기본으로 쓴다고 했다. 그는 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였으므로 가사와 육아를 모두 병행하면서 매일 2회차 분의 소설을 창작한다는 뜻이었다. 론칭이나 공모전 준비를 위해 비축분을 쌓아야 할 때면 2만 자 가까이 쓸 때도 있다고 했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2만이라는 숫자는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입을 통해 종종 듣곤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루 2만 자나 되는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걸까? 갖고 있지 않은 능력치에 대해서는 별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면서도, 그에 관해서는 오래 궁금해하고 부러워했다. 2만 자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5천 자만이라도, 하루 한 회차라도 써낼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분수를 아는 듯 굽실거리며 빌다가도 욕심이 그득그득 붙은 시선을 불온하게 굴렸다. 정말 단 하루도 가져볼 수는 없는 걸까? 작업량 시트에 만 대의 숫자를 기입하는 하루를.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아서는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얼떨결에 100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한 후 나의 글쓰기는 불안할 정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제도 오늘도 세 편이나 글을 써서 올렸는데, 글자 수로만 따지자면 5천 자를 훌쩍 넘는다.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글을 시작하고 쓰는 부담감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능력치라고 쌓아왔던 것들이 이제야 조화롭게 잘 맞물려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만 같다. 쓰다 보면 는다는 말을 지겨울만치 들어왔다. 그래서 계속 썼는데 이제는 느는 타이밍인 걸까. 기분 좋은 설레발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1만 자가 넘는 소설을 쓰고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어엿한 작가 같다.




2024.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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