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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5. 2024

마감 임박 생활인


마감일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다가 “그날은 마감일이라 안 돼”라고 했더니 “마감일이니까 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뭔 소리야?”

“너야말로 뭔 소리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한참을 더 그러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친구가 걸어가며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마감일이란 결국 업무에서 해방되는 날이지 않냐는 말이었다. 작업물을 넘겼으니 홀가분하게 놀 수 있어서 더 좋지 않냐면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작업물이 한밤중에 넘어가는데?”

“왜?”

“그때까지 작업하니까?”

“왜?”

“마감 시각이 자정이니까?”

“마감날에도 늦게까지 일한다고?”

“마감날이 제일 바쁘고 정신없는 거 아니야?”

“……희한하다.”

“……희한하네.”

“그러니까 월요일은 안 된다는 거지?”


결국 다른 요일로 약속을 잡기는 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감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한다고? 마감일에 약속을 잡는다고? 서로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무래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었다. 이후로도 이 일은 종종 생각이 났는데, 마감일에도 일을 한다는 나를 보고 놀라던 친구의 얼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에 충격을 받는 친구를 보고 나 또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특정 요일에 글을 올리는 것이라 당일에만 하면 된다. 업체와 하는 일이라면 점심시간 전후로, 늦어도 근무시간 안에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보다는 자체 운영인 경우가 훨씬 많아서 스스로 당일 자정을 마감을 잡고 그에 맞춰 일하고 있다. (로맨스 소설 연재 당시에는 이를 너무 칼 같이 지켜서-에브리데이 간당간당 마감이어서- 신데렐라라는 별명까지 붙고 말았다.) 컨디션에 따라 일찍 끝날 때도 많지만, 끝난 뒤라면 모를까, 그전에는 마감시간 안에 다른 일정을 넣지 않는다. 마감일에는 오로지 써야 할 글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몇몇 공모전처럼 지정된 마감 시간이 있는 경우라도 그렇게 일찍 작품을 접수하는 편은 아니었다. 시험 볼 때 종칠 때까지 시험지를 보고 또 보는 학생 같다고 할까? 나 스스로는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써먹는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원고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니었고, 그 정도가 되면 이미 너무 많이 봐서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에, 묵히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활용한다. 묵힐 때까지 묵혔다가 눈에 좀 들어온다 싶으면 최종 퇴고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잠깐이라도(30분이라도) 또 묵혔다가 한번 또 꺼내보고. 그런 짓을 질릴 때까지 하고 나서야 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하며 전송 버튼을 누른다. 그 정도는 해야 확실한 각오(이것이 나의 최선이고, 떨어져도 변명거리가 없다!)가 서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너무 늦게 시작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마감일이 저 멀리 보일 때는 꿈쩍도 않다가 시야에 자꾸 걸릴 지경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움직이게 된다. 이런 내가 답답해 보일지도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가 제일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건 혈액형 같은 거라 바뀌지도 않는다. 12시 마감이라고 11시 59분 42초까지 벌벌거리다가 5초 직전에 올리기 버튼을 누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날 거라는 걸 감수하며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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