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안 마신 지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믹스 커피 마시기를 그만두려던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커피 자체를 끊게 됐다. 라떼가 아닌 커피는 나한테 차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우유는 냄새부터 질색을 하는데 커피는 왜 꼭 라떼를 시켜 먹었던 걸까. 어쨌든 이제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소비하지 않기로 했고, 내 관심은 차로 바뀌었다. 나, 차를 샀어.라고 말했더니 먹고 있던 밥수저를 놓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동생이 생각난다. 뭐라고? 그것은 내가 아이패드 프로를 일시불로 질러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표정과 같았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걸까. 소설은 내 동생이 썼어야 더 잘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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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마다 라벤더 차를 마시는 게 루틴이 되었다. 심리적인 효과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정말 편해지는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차들은 그냥저냥이다. 루이보스랑 마테 차 정도 무난하게 먹었을까.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여러 종류의 차가 담긴 차 세트 상품을 다짜고짜 마구 시켜댔더니 엄마 머리에 뿔이 돋는 게 보여서 눈치 싸움 중이다. 남은 차들부터 부지런히 마셔서 없애야겠다. 얼그레이나 다즐링 같은 홍차도 먹어보고 싶은데 가족들이 작작 좀 사라며 만날 때마다 노래를 하고 있다. 원래 모든 일의 시작은 장비빨인데 다들 모르나. 하지만 나는 이미 20종의 샘플러를 결제했고, 엄마가 외출한 사이에 택배를 받아서 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책상 속에 숨겨 두었다가 밥 먹고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마셔야지.
친구에게 선물 받은 호랑이컵이 내열유리였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됐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모른다. 좋아하는 거에 좋아하는 걸 더하면 더 좋아하는 게 된다. 호랑이 컵은 지금부터 사계절 나의 단짝이 된다. 호랑이 컵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데 사진첩에 있는 건 믹스 커피를 마실 때 찍은 사진뿐이라 좀 민망하다. 하지만 그때는 이것이 나의 ‘더 좋아하는 것’이었겠지. 좋아함은 바뀐다.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있는 것들로 저절로 옮겨간다. 자연스럽게. 내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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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02.
내가 기피하는 말 중에는 ‘원래’와 ‘절대’가 있다. ‘나는 원래 그래’, ‘절대로 (안) 맞아’ 같은 말은 차단의 뉘앙스가 있다. 당신이 뭐라고 떠들든 타협할 의지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람은 단언하지 않는다.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을 확신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나이를 먹는 동안 성실히 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람이란 좋은 방향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성격이나 버릇 같은 것을 같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앞세우고 가는 상태이지, 한 사람의 고정적인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인간이어서인지 과거의 일기를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이게 누구야? 하는 내 모습이 툭툭 튀어나온다. 이날의 일기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일주일이나 먹지 않았다니. 카페인이 부족하다고 이 더위를 뚫고 우유를 구해서 들어온 오늘의 나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다. 우유 끊기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 라벤더 차는 여전히 좋아하는데, 솔직히 날도 덥고, 마시지 않은 지 오래됐다. 대신 자기 전에 라벤더 향이 나는 필로우 스프레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은 뭘까. 친구들과 나는 요즘 과도한 영어 사용을 지양하고, 의식적으로 한국어로 바꿔 말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뿌린다. 이것이 오늘자 나의 좋아함. (2024. 08.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