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지하철을 잘못 탄다. 신도림역에서 주로 그런다. 신도림역에서 1호선을 타는 일은 완벽히 습득되지 않는다. 습득된 것처럼 별일 없이 지나가다가도 방심하는 어느 날 나를 낯선 열차 안에 싣고 제멋대로 덜컹거린다. 그때 듣는 전철 소리는 나를 삐딱하게 만든다. 놀라서 덜컹 주저앉는 건 내 마음인데 왜 제가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린다. 그러면서 돌아가는 방법을 다급하게 찾아본다. 일종의 허세 부림이다. 살면서 발음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역의 이름을 검색하는 동안 나는 손가락이 떨린다. 안 떨리는 척하려고 지하철의 흔들림을 따라 휘청거리는 춤을 출 준비도 되어있다.
처음 지하철을 잘못 탔던 날을 기억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비가 내렸으니 아무래도 지쳤을 것이다. 그런 날에 왜 외출을 했던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이것만 타면 끝이라고, 남아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서 지하철 안으로 발을 들였는데 얼마 후 선득한 예감을 느끼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본능적으로 노려본 전광판에는 태어나서 처음 본 말이 떠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훑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온 역, 지나가는 역, 도착할 역 모두가 뜻 모를 부름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튕기듯 지하철에서 내렸다. 휴대폰 배터리는 11% 정도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본 후 올바른 노선의 플랫폼을 향해 뛰었다. 비를 맞지 않았는데도 쫄딱 젖은 꼴이 되었다. 귀도 기운도 축 처져서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다행인 건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는데, 이번 열차가 막차이기 때문이었다. 열차는 족히 20분을 기다려야 왔다. 그 열차를 타고 역에 내리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없겠구나.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막막한 기분에 빠졌던 걸 기억한다. 더 늦기 전에 내려서 다행이라고, 막차까지 놓쳤으면 어쩔 뻔했냐고, 그래도 아는 동네까지는 갈 수 있으니 거기서는 또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배터리가 7% 남은 휴대폰을 꼭 쥐고 그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심장은 계속 뛰고, 옷이 자꾸 젖어들었다. 빗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꿈에서 재연한다.
모르는 이름 사이에 덩그러니 던져지던 기분을.
공교롭게도 오늘은 장우산을 들고 나온 날이었다. 낯선 역에서 머리를 쥐어 박히듯 빗소리를 듣던 그날처럼 우산은 내 왼쪽 어깨에 턱을 얹은 듯 안정적으로 매달려있었다. 조금 열린 창 너머로 새까만 하천이 인공조명을 예술적으로 바른 얼굴을 바르르 떨며 쏴아아 소리를 냈다. 비가 오는가 싶었는데, 그냥 바람에 긁히는 중이었다. 길게 뻗어 있는 플랫폼 안에는 나를 제외하곤 딱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끝과 끝을 차지하고 앉은 두 사람의 중간쯤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조작했다. 그 순간을 기록할 만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실수를 해봐서 좋은 건 비슷한 실수를 또 하게 되었을 때 처음처럼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역 이름을 중얼거리며 메모장 앱을 실행했다. 어쩌면 지금의 기분에 대해서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문장을 마구잡이로 받아 적다 보니 이것은 퍽 작가적인 자세가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러니까 이건 조금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고 빡빡하게 살아가는 나를 위해 선로가 제멋대로 몸을 틀어 앉는 그런 것. 뭘 써야 할지 몰라서 못 쓰겠다는 나에게 이렇게 쓸 것이 많다고 세상이 직접 안경을 씌워주는 것. 조금 곤란한 방법이긴 하지만. 걔들은 원래 짓궂은 애들이니까.
의도적으로 반대편 지하철을 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집으로 가는 열차 안에 앉아서 나답지 않은 생각을 해봤다. 덩그러니 놓이는 게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면. 모르는 이름들 사이에서 내가 주도권을 잡는다면. 이름마다 신고식을 하라고 시켜야지. 꼰대가 되어서 쫄지말고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지나 말하라고 윽박질러봐야지. 당한 만큼 돌려줄 테다. 가랑이 사이에 세워두었던 우산이 바닥에 탁 떨어지는 바람에 흠칫거리며 눈을 떴다. 우산을 주우면서 전광판을 보자니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삼십 분이 더 남아있었다. 이 기분에 대해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메모장을 켜면 정말 작가 같을 텐데, 생각하며 뒷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알이 뻑뻑했다. 운 것도 아닌데 운 것 같은 피로감이 눌어붙어 있었다.
2022년 6월 6일
2년이 지난 지금도 곧잘 헤맨다. 전보다 실수가 줄기는 했지만 아주 고쳐지지는 않았다. 극복하는 듯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함. 그런 것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 큰 비를 만났다. 1호선에서 그 소리를 듣자니 맨몸으로 맞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1호선에서 비를 만나는 일은 비 오는 날 신도림에서 열차를 잘못 타고 헤매던 날로 이어진다.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위기의 날은 더는 위협적이지도 생생하지도 않다. 그런 날이 있었지, 그땐 그랬지 편한 마음으로 되새겨볼 수 있다. 실패하던 모든 날을 그런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더기 만든 듯 해온 과거가 빗줄기의 개수만큼 내 가장 여린 피부에 빗금을 친다. 나는 그보다 많은 수의 팔을 가지고 싶다. 포옹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될 수 없다면,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이라도 써보고 싶다. (2024. 08. 01)